시(詩) 818

첫 마음 ,정채봉

첫 마음 정채봉(丁埰琫 1946-2001)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 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

시(詩) 2020.12.04

12월의 기도

12월의 기도 윤영초 마지막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시간 저 멀리 지나가 버린 기억 차곡차곡 쌓아 튼튼한 나이테를 만들게 하십시오 한 해를 보내며 후회가 더 많이 있을 테지만 우리는 다가올 시간이 희망으로 있기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십시오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 안부를 띄우는 기도를 하게 하십시오 욕심을 채우려 발버둥쳤던 지나온 시간을 반성하며 잘못을 아는 시간이 너무 늦어 아픔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하십시오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아는 우리 가슴마다 웃음 가득하게 하시고 허황된 꿈을 접어 겸허한 우리가 되게 하십시오 맑은 눈을 가지고 새해에 세운 계획을 헛되게 보내지 않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모두가 원하는 그런 복을 가슴마다 가득 차게..

시(詩) 2020.11.30

白鹿潭/정지용

백록담(白鹿潭) — 한라산 소묘(素描) ― 정지용 1 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목아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옷 내다본다. 花紋처럼 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咸鏡道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八月 한철엔 흩어진 星辰 처럼 爛漫 하다. 山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2 巖古蘭, 丸藥 같이 어여쁜 열매로 목을 축이고 살어 일어섰다. 3 白樺 옆에서 白樺가 髑髏가 되기까지 산다. 내가 죽어 白樺처럼 흴것이 숭없지 않다. 4 鬼神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모통이, 도체비꽃이 낮에도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 5 바야흐로 海拔六千尺 ..

시(詩) 2020.08.31

水仙花에게 - 정호승

水仙花에게 - 정호승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空然히 오지 않는 電話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空然히 오지 않는 電話를 기다리지 마라 山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 번씩은 마을로 向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空然히 오지 않는 電話를 기다리지 마라

시(詩) 202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