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정상에 올라서는 방법만 열심히 연구했다. 하지만 내려가는 방법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은퇴한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어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했던 말이다.
야구선수로서 부와 명예의 최정점에 올랐던 박찬호는 누구보다 가파른 추락도 경험해봤다. 잘 나갈 때는 하나같이 열광하고 환호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손가락질을 하며 돌아서는 모습을 직접 체험하며 박찬호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최근 자살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 고
조성민은 박찬호와 92학번 동기기도 하다. 조성민 역시 박찬호처럼 당대의 스포츠 스타로서 삶의 굴곡을 누구보다 극적으로 체험했던 인물 중 하나다. 뛰어난 기량·훤칠한 외모·미모의 여배우와 결혼에 이르는 극적인 이야기까지. 행복하던 시절에는 신이 모든 축복을 허락한 것 같았지만 추락할 때는 역설적이게도 그 축복이 저주가 돼 남들보다 훨씬 더 잔인한 고통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조성민은 박찬호와 달리, 야구도 인생도 끝내 추락의 아픔을 딛고 재기하진 못했다.
한국야구 '92학번 황금세대' 이끌었던 조성민조성민은 흔히 한국야구 '92학번 황금세대'를 이끈 주축으로 거론된다. 박찬호·정민철·임선동·
박재홍 등 동갑내기 선수 중 한국 야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화려하게 두각을 나타내는 이는 단연 조성민이었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194cm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직구와 모델 뺨치는 외모로 프로선수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아마추어 시절만 해도 조성민은 박찬호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학 졸업 이후 진로를 놓고 미국과 일본을 저울질하던 조성민은 결국 일본을 택한다. 동기인 박찬호가 먼저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은 게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 당초 메이저리그를 꿈꿨던 조성민이지만 '박찬호 다음'이 아닌, 첫 발을 내딛는 선수로 인정받고 싶어 일본 최고명문 요미우리에 입단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한국인 '영건'에게 요미우리가 7년간 계약금 1억5000만 엔, 연봉 1200만 엔의 파격적인 대우를 했다는 것은 조성민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조성민의 공은 일본에서 통했다. 1997년 1승 2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듬해인 1998년부터는 선발로 전환해 전반기에만 7승(6패) 평균자책점 2.76을 올리며 올스타에 선발됐다. 빼어난 외모로 주목을 받았던 조성민은 2000년에는 당대의 톱스타이던
최진실과의 드라마 같은 연애 스토리로 혼인하며 또 한 번 세상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부상과 평탄하지 않은 가정사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역설적이게도 감독 추천으로 나갔던 올스타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내림세를 걸었고, 이후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조성민이 일본에서 남긴 성적은 53경기 출전 11승 10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2.84. 부상 이후에는 3년간 2군을 전전하다가 결국 2002년 퇴단했다. 고교와 대학시절 누적된 혹사가 근본적인 원인이었지만, 성적에 따라 철저하게 외국인 선수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일본 야구에서 체계적인 관리와 보살핌을 받지 못한 용병의 한계도 조성민을 좌절하게 했다.
조성민은 이후 2005년 5월,
한화 이글스에 복귀해 잠시 활약하기도 했지만 주로 중간계투와 패전 처리 투수로 기용되며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영광은 재현하지 못했다. 그가 남긴 성적은 3시즌 통산 35경기에서 3승 4패 평균자책점 5.09. 2007시즌을 끝으로 그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야구계에 발 들여놨지만... 불투명한 진로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 최진실과의 결혼 생활도 파경으로 끝났다. 2002년부터 악화된 감정의 골은 폭행사태와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고 결국 법정공방으로까지 치달았다. 이 과정에서 유명인이었던 두 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이 선정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낱낱이 공개되며 서로 적지않은 마음의 상처를 겪어야 했다. 2004년 9월, 두 사람은 합의 이혼으로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후 야구해설위원과 개인사업 등에 전념하며 비교적 조용한 삶을 꾸려나가던 조성민은 2008년 전처 최진실의 급작스러운 자살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떠오르게 됐다. 조성민은 두 아이의 양육권 문제 등을 두고 최진실의 유족들과 갈등을 벌이다 사회적 비난 여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조성민은 결국 친권만 유지하고 모든 것을 최진실의 친모인 정옥숙씨에게 양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2011년 두산 재활 코치로 다시 야구계에 돌아간 조성민은 한때 자녀들을 데리고 야구장에 나타나는 등 다정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성민의 삶은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0년 처남 최진영까지 자살하면서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지인들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폭행 시비에 연루되기도 했다. 코치로 활약하던 두산으로부터 다음 시즌 재계약 불발 통보를 받으면서 불투명한 진로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민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낙인'이 남긴 외로움, 그를 죽음으로 내몰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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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된 고 최진실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의 빈소가 서울 안암동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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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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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살아야 했기에 그만큼 더 불행해야만 했다. 조성민이 차라리 야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일본으로 진출하지 않고 미국으로 가거나 차라리 한국에 남았다면, 혹은 연예인 같이 화려한 외모가 아니었더라면, 유명 톱스타 여배우와 교제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과도하게 세상의 이목을 끌면서 힘들게 살지 않았어도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잘못 들어선 길과 훼손된 이미지는 조성민의 인생을 족쇄처럼 얽매고 놔주지 않았다.
조성민은 오랜 시간
애증의 관계를 유지했던 전처 최진실씨와 같은 나이·비슷한 방법으로 안타깝게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말았다. 당대의 톱스타였던 최진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세상의 삐딱한 편견과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최진실은 생전에 친분이 있었던 또 다른 유명 연예인의 자살과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루머에 휩싸이며 악플러들의 비난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최진실이 떠난 이후 이번에는 그로 인해 가장 많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려야 했던 이가 바로 조성민이었다. 손가락질하기는 쉽지만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고인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세상의 차갑고 이기적인 '낙인'이 남긴 외로움 때문 아니었을까.
故 조성민, 굴곡많은 인생사 뒤로 하고 한줌의 재로
고(故)
조성민 전 두산2군 코치가 영면에 들었다. 굴곡 많은 삶이었다. 8일 오전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하며 마지막 길을 갔다. 지난 2008년 생을 마감한 고(故)
최진실의 화장이 거행된 곳이기도 한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에서 한 줌 재로 변한 뒤
분당 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안치됐다. 유가족과 지인들의 눈물과 통곡속에 영원히 가슴에 묻혔다. 고인은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투수로 세상에 이름을 널리 떨쳤으나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거두었다. 두 아이를 이 세상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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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故) 최진실씨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의 발인식이 8일 오전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정민철(왼쪽), 홍원기 코치가 맨 앞에서 관을 들고 나오고 있다. 2013. 1. 8 박성일기자sungi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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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지인들의 슬픔속에 시작된 발인태양이 어둠을 완전히 몰아낸 오전 8시 발인식이 엄수됐다. 이날 발인에서 고인의 친지가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섰다. 환희와 준희 남매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고인의 유해가 운구차에 이르자 이내 눈물바다가 되었다. 아들을 찾는 모친의 절규가 메아리 쳤다. 휠체어를 타고 온 고인의 부친도 눈물로 아들과의 마지막을 슬퍼했다. 맨 앞에서 운구하던 92학번 동기 홍원기 넥센코치와 정민철 한화코치도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고(故)최진실의 어머니도 곁에서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자리를 잡으려던 영상기자들의 고성이 오갔다. 그리고 두 아이의 얼굴에 방송용 조명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크게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던 아이들은 더욱 주눅 들었다. 그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더욱 가슴이 먹먹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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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故) 조성민의 운구차량이 화장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고인의 시신은 화장 절차를 거쳐 경기도 분당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됐다. 2013. 1. 8 박성일기자sungi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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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인생사 뒤로 하고 영면.발인식이 끝난 후 고인은 운구차에 실려 영생사업소 화장장으로 이동했다. 194cm에 100kg이 넘는 당당한 체격의 고인도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고려대 졸업 후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으며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의 간판투수로 성장했고 톱배우 최진실과의 결혼 등으로 전성기를 보냈지만, 화려한 빛 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이혼 후 사업실패와 폭행사건 연루 등으로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빛과 그림자 모두 한 줌의 재와 함께 사라졌다.
이날 발인식에 참석한 허구연 MBC해설위원은 "후배를 먼저 보내는게 참 기막힌 일이다. 내가 이런 마음인데 가족들은 오죽하겠나. 하늘나라에 가서 야구에 대한 한을 다 풀었으면 좋겠다"며 비통해 했다. 악플의 폐해도 지적했다. "유명인에게 가해지는 악플이 한 인간을 얼마나 고틍스럽게 하고 또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각했으면 한다. 이번 기회에 악플의 폐해를 되새기고 바로잡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남은 아이들이 슬프다. 아이들이 꿋꿋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조성민 유서 발견 “환희 준희야, 날 용서 마라”
일간스포츠 “전 에이전트 손덕기 씨 발견”
부모님·두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 전해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 2013.01.14 09: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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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조성민의 유서가 공개됐다. ⓒ 연합뉴스 |
지난 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조성민의 유서가 발견됐다.
일간스포츠는 “전
에이전트 손덕기 씨가 13일
고인의 짐을
정리하다
배낭 속에서 유서를 발견했다”고 14일
단독 보도했다. 유서는 가로 9cm, 세로 15cm 크기의 수첩에 3페이지에 걸쳐 자필로 작성됐으며 ‘유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민은 유서를 통해 부모님과 자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우선
아버지 어머니께 죄송합니다”라며 말문을 연 조성민은 “못난 자식이 그동안 가슴에 못을 박아 드렸는데 이렇게 또다시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드리고 떠나가게 된 불효자를 용서하세요”라고 적었다.
이어 “이젠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아쉬움도 가져갑니다”며 자살 결심을 암시한 그는 “이 못난 아들 세상을 더는 살아갈 자신도 용기도 없어 이만 삶을 놓으려고 합니다.
행복한 날들 가슴 뿌듯했던 날들도 많았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이 드네요”라고 삶이 고통스러웠음을 내비쳤다.
남겨진 두 자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자책감도 드러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조성민은 “사랑하는 우리 아들 딸 환희 준희야. 너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상처를 아빠마저 주고 가는구나"라고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어 “불쌍한 우리 아이들…. 이 모자란 부모를 용서하지 말아라”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마지막으로 조성민은 재산을 둘러싼 법적분쟁을 우려한 듯 “저의 재산은 누나 조성미에게 전부 남깁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유서를 발견한 손 씨는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날짜나 서명은 없지만, 18년 동안 봐온 고인의
글씨가 맞다. 자살을
시도한 당일에 쓴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한편, 고 조성민은 지난 6일 박 씨의 집
욕실에서
허리띠로 목을 매 숨졌다. 국립과학수사대는 부감 결과 사인을 자살이라고 밝혔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한철 기자]
조성민 누나-어머니 마침내 입열었다 “최진실 사망후 쏟아진 비난..” 2013-01-25 09: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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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러 주부생활'에서 조성민 누나와 어머니 인터뷰를 독점 공개한다. 조성민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오해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한 가족들 마음이 전해졌던 인터뷰로 다소 예민한 질문에도 담담하고 솔직하게 진행됐다. 누나 조성미 씨는 동생 고(故) 조성민이 자신을 유산 상속자로 지정한 것에 대해 “내가 경제적으로 좀 힘들어 해서인지 성민이가 하루는 어머니에게 지나가는 말로 ‘내가 남겨 줄게 얼마 되지 않으니까 환희, 준희는 이거 필요 없겠지. 없어도 살진 않을까?’ 말한 적 있다. 성민이 재산이 지금 부모님 사는 집과 땅이 전부다. 나에게 남긴 건 아버지 어머니 잘 부탁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고 밝혔다.
누나 조 씨는 조성민이 최진실 사후 쏟아진 비난에 무척 힘들어했다고 털어놨다. 조씨는 “비록 좋지 않게 헤어졌지만 둘은 정말 좋아했다. 서로 너무 좋아해서 더 싸웠던 것 같다. 어쩌면 모진 비난에도 묵묵히 견뎌냈던 것이 자기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성민이가 종종 ‘(최진실이) 좋은 데 잘 가야 되는데 좋은데 가라고 나 이렇게 많이 빌고 있는데’하는 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는 “유서 공개 이후 최근 우연히 인터넷 댓글 보게 됐는데 충격 받았다. 좋지 않은 이미지인건 알지만 망자보고 잘 죽었다고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며 ‘성민이는 죽어도 욕을 먹는구나’ 싶어 속상했다”고 고백했다. 또 재혼했다 이혼한 심모씨와 호적 정리가 안 된 상태라고 알려진 루머에 대해 조씨는 “이미 (호적)정리 다 됐고 집에 들어와서 산지 3년이 넘었는데 사람들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성민이는 자기 이야기가 자칫 상대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늘 조심스러워했다”며 불쾌해했다. 조성민 어머니는 “환희, 준희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난 것이 너무 안타깝다.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할 때 도쿄돔에서 성민이가 던지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멋있었던 아들을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도 더 기도 많이 하고 더 열심히 살 것”이라며 심경을 전했다.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다”며 그간 조성민에게 쏟아졌던 오해의 시선을 거둬달라고 부탁했다. 이혼 후부터 많은 짐을 안고 살았던 조성민에 대한 가족들의 솔직한 심경은 '스타일러 주부생활' 2월호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스타일러 주부생활) [뉴스엔 하수정 기자] |
故 최진실 자녀 환희-준희 '사춘기 근황' 훈남중학생-165cm 숙녀 '폭풍성장'
출처 스포츠조선 | 작성 이유나 | 입력 2015.05.26. 13:26 | 수정 2015.05.26. 13:35
故 최진실 자녀 환희-준희 '사춘기 근황' 훈남중학생-165cm 숙녀 폭풍성장
고 최진실 조성민 자녀 환희와 준희의 최근 폭풍성장한 모습이 공개됐다.
25일 방송한 휴먼다큐 사랑 마지막 예고편에는 2015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마지막 편 '진실이 엄마 II 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방송분이 일부 공개, 환희와 준희의 근황이 포착됐다.
어느새 최진실의 엄마 정옥숙 씨의 나이는 일흔. 할머니가 늙어가는 만큼 아이들도 자랐다. 환희는 수염이 거뭇거뭇 자라며 남자가 되어갔고, 키 165cm를 훌쩍 넘어선 준희는 어엿한 숙녀티가 난다. 할머니는 청소년이 된 아이들이 무탈하게 이대로만 자라길 바라지만 환희와 준희에게도 어김없이 사춘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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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아들 딸 환희 준희 '사춘기 폭풍성장' 엄마아빠 외모-끼 붕어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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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는 2년 전 할머니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제주도의 국제 중학교에 입학했다. 통통하던 볼살은 사라지고, 어느새 부모의 수려한 외모를 고스란히 닮은 채 성장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환희는 얼마 전부터 입을 꾹 닫아버렸다고. 예전에는 할머니에게 좋아하는 여자 친구 이야기는 물론 고민도 재잘거리며 털어놓더니, 이제는 두 번 물어야 겨우 한 번 대답을 돌려주는 게 전부다. 사실 환희는 요즘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한 것.
환희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사춘기라고, 친구들도 똑같이 이런다고 설명해 드려도 할머니는 늘 걱정만 하시니 답답하다"며 "가끔씩 할머니가 계속 똑같은 걸 물어보시고 그러니까 짜증 날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어서 요즘은 별로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열세 살 준희는 첫사랑을 시작했다. 준희는 "할머니 마음 잘 알죠. 제가 좋은 학교 가서 좋은 남자 만나서 좋은 대학 가고. 그런 건 할머니 바람이겠죠. 그런데 저한테는 공부가 너무 버겁다고 해야 되나? 그런 느낌"이라며 웃었다.
고 최진실 최진영 모친 정옥숙 씨는 "정말 훌륭하게 잘 성장해야 된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내가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떠나는 날까지 정말 잘해주고 싶어요. 우리 환희, 준희한테"라며 "그리고 하늘에 있을 딸 진실이에게 '내가 이 아이들만큼은 꼭 지켜내겠다고, 그러니 부디 우리를 지켜달라고' 약속하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환희와 준희의 사춘기 근황을 담은 '휴먼다큐 사랑 2015'는 6월 1일 밤 11시 15분 탤런트 김유정의 내래이션으로 방송된다. <스포츠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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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아들 딸 환희 준희 '사춘기 근황 폭풍성장' 엄마아빠 외모-끼 붕어빵
[결정적장면]故최진실 딸 최준희 "악플에 상처, 가수 꿈도 포기" 출처 뉴스엔 | 입력 2015.06.02. 07:13
고(故) 최진실 딸 최준희 양이 "수많은 악플에 상처 받았다"고 털어놨다. 6월1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랑 2015-진실이 엄마Ⅱ-환희와 준희는 사춘기'에서 최준희는 악성댓글로 인해 가수 꿈을 포기한 사연을 공개했다. 최준희는 "인터넷을 통해 들으면 안 됐던 말들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 상처받은 게 아직 마음이 아프다"고 운을 뗐다. 제작진은 "무슨 이야기 들었는지 물어봐도 되냐. 말하기 싫으면 말 안해도 된다"고 말했고 최준희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최준희는 "엄마도 그 댓글들을 참기 힘들어 그런 건데 난 얼마나 더 힘들겠냐. 그래서 그게 속상하다"고 밝혔다.
최준희 할머니 정옥숙 씨는 "준희가 '할머니 나 아기 아니거든? 나 인터넷으로 다 봐'라고 하더라. 엄마 아빠에 대한 걸 다 본다고 하더라. 보지 말라고 했는데 어떻게 안 보냐고 하더라"고 말했다. 최준희는 "교실 사물함에 쪽지가 있었는데 '엄마 없는 X, 나대지 말아'라고 하더라. 치사하게 내 앞에서 이야기 하지 않고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게 화가 나더라"며 "예전에 나도 꿈이 가수였는데 포기했다. 알 걸 알게 돼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크면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냐. 지금은 어리니까 그런 거지"라고 악플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놨다. 한편 이날 방송된 '휴먼다큐 사랑 2015-진실이 엄마Ⅱ-환희와 준희는 사춘기'는 2011년 방송된 '휴먼다큐 사랑-진실이 엄마' 후속작이다. 고 최진실은 2008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났다.(사진=MBC '휴먼다큐 사랑 2015-진실이 엄마Ⅱ-환희와 준희는 사춘기' 캡처) 故 최진실 딸 최준희, 퇴원후 이모할머니와 지낸다(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2017-08-12 13:14 송고 | 최준희 인스타그램 © News1 |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가 병원에서 퇴원한 후 '이모할머니'로 불리는 지인과 지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스타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준희는 지난 11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퇴원했다. 지난 8일 입원한지 3일 만이다. 그의 퇴원 절차는 최진실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방송인 이영자가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준희는 퇴원 후 외할머니가 아닌 이모할머니와 지내기로 했다. 이모할머니와는 친족 관계는 아니지만 최진실의 생전부터 최진실의 가족과 친분을 맺은 인연이 있다. 최준희는 어린 시절 이모할머니에게 자라며 가족에 가까운 정을 쌓아왔고, 외할머니와의 갈등을 폭로할 당시 외할머니가 이모할머니와 자신을 억지로 떼어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4일 최준희와 외할머니가 정씨가 크게 다퉈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최준희는 자신의 SNS에 외할머니의 폭언 및 폭행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서초 경찰서 관계자는 "최준희와 상담을 진행하고 불법 사실이 나오면 수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최준희는 지난 8일부터 9일 오전까지 아동심리전문가가 동석한 가운데 병원에서 경찰 면담 조사를 받기도 했다. 당시 면담에서 최준희는 외할머니의 친권을 박탈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서울 서초 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11일 "최준희 양의 면담 결과와 내용의 공개 여부에 대해 내부 논의 후 (공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알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