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퇴계 이황선생의 입춘(삼도헌의 한시산책 271)

含閒 2013. 2. 14. 11:12

퇴계 이황선생의 입춘(삼도헌의 한시산책 271)

 

正月二日立春 [입춘]                    이황(李滉)

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른 서책 속에서 성현을 마주하며

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밝고 빈 방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서 또 봄소식을 보면서

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      거문고 줄 끊어졌다 탄식하지 않노라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이른 봄을 알리는 입춘. 이 때 꽃 중에서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매화이다.

매화를 애호한 사람 가운데 조선시대 퇴계 이황선생은 유별나다.

그는 매화를 보면서 지은 시 100여 수를 따로 모아 ‘매화시첩’을

꾸밀정도로 매화를 아꼈다.

이 시는 퇴계선생이 52세 때 지은 입춘시 2수 가운데 한 수로 퇴계집에 실려있다.

사람들은 이 시를 두고 퇴계선생이 단양군수 재임 때 만났던 두향이란 여인을

그리워하면서 지은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퇴계선생은 48세 때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18세 된 관기 두향과

9개월 남짓 함께있다 풍기군수로 옮겼면서 이별했다.

풍기로 옮길 때 두향은 오래된 고매화분을 선물로 전하였고,

퇴계는 이 화분을 마치 두향을 대하듯 애지중지 키웠다고 전한다.

 

이 시에서도 그 마음이 잘 전달되고 있다.

입춘 즈음에 허전한 빈방에서 오래된 서책을 읽노라니

매화는 개화시기가 되자 변함없이 다시 하얀 속살을 드러내면서 피어오른다.

그 매화를 보니 아련히 거문고를 치면서 정담을 나누었던 두향이 생각난다.

두향이를 향한 진한 그리움이 싯구 속에 묻어난다.

임종을 앞두고 매화에 물을 주라고 말한 퇴계의 매화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바로 두향이를 그리워하는 말없는 그리움이었던 것이다.

올 봄 매화를 보면서 다시금 그들의 절절한 마음을 회상해 본다.

 

이황(李滉) 1501(연산군 7) ~ 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성리학자.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 등 주리론적 사상을 형성하여

주자성리학을 심화·발전시켰으며 영남학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좌찬성 식(埴)의 7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12세 때 작은아버지 우(堣)로부터 〈논어〉를 배웠으며,

1527년(중종 22)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이듬해 사마시에 급제했다.

1534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등용된 이후

박사·전적·지평 등을 거쳐 세자시강원문학·충청도어사 등을 역임하고

1543년 성균관사성이 되었다.

1546년 낙향하여 낙동강 상류 토계(兎溪)에 양진암(養眞庵)을 짓고,

이 때 토계를 퇴계라 개칭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1548년 단양군수가 되었다가 곧 풍기군수로 옮겼다.

1560년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이로부터 7년간 독서·수양·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제자를 길렀다.

그 뒤 그의 학문의 결정인〈성학십도 聖學十圖〉를 저술하여 선조에게 바쳤다.

이듬해 낙향했다가 1570년 병이 깊어져 70세의 나이로 죽었다.

삼도헌의 한시산책 271 / 2013년 2월14일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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