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사히 개봉하겠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 시사저널
- 김진령 기자
- 입력 2012.01.26 13:38
ⓒ 시사저널 박은숙
이 사건을 다룬 < 부러진 화살 > 을 만든 정지영 감독은 "문성근씨가 재미있다고 추천해서 르포집 < 부러진 화살 > (서형 지음)을 읽었는데 진짜 재미있었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추천하고 바로 김명호씨 면회를 갔다"라고 말했다. 정감독은 1982년에 데뷔작을 만들고 1990년대부터는 < 남부군 > < 하얀전쟁 >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 등 사회성 짙은 영화로 전성기를 보냈다. 이후 대중의 눈에는 현장에서 멀어진 듯이 보이지만 정작 정감독은 "계속 영화를 준비하며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정감독은 이 프로젝트를 상업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영화 제작사에서 사법부를 건드리는 영화는 투자받기 힘들다고 하는 바람에 '아예 독립영화로 가자'고 마음을 바꿨다. 개런티 비싼 좋은 연기자를 캐스팅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때 캐스팅 디렉터가 김명호 역에는 안성기밖에 없고 안성기가 < 페어 러브 > 라는 2억원짜리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 부러진 화살 > 의 시나리오가 안성기에게 건너갔고 안성기는 김명호 역을 욕심냈다. 그러면서 나영희, 박원상, 김지호 등 좋은 배우가 가세했다. 그래도 순제작비가 5억원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지난가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뒤 일관되게 호평을 얻었다.
공백이 길었다.
영화를 떠난 적이 없다. < 아리랑 > 을 8년 준비했는데 보류했다. 중국 혁명을 그린 것이라 중국 현지 촬영을 하려면 중국 당국의 검열을 통과해야 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 은지화 > 라는 작품은 캐스팅 단계에서 엎어졌다. 또 다른 사극을 하나 준비해서 시나리오까지 나왔는데, < 부러진 화살 > 을 먼저 하게 되었다.
왜 이 사건이 영화적인 소재라고 보았나?
르포집을 읽었는데 '석궁 사건을 제대로 몰랐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다른 사람도 잘못 알고 있겠다 싶었다. 두 번째로는 재미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김명호라는 원칙주의자가 굴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현실에서 그가 감방에 다녀와서 기운을 잃었다면 비극일 텐데 그가 굴하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다.
이 영화에서 픽션은 무엇인가?
공판 장면은 기록에 의해서 90% 이상 그대로 재현했고, 픽션은 구치소 운동장 장면이나 변호사와 기자와의 관계 등 코믹한 에피소드 등이다.
영화에서 변호사도 역할이 크다.
김 전 교수를 도왔던 박훈 변호사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막연히 생각했는데 자료 확보를 위해 그를 만나보니까 '한 물건' 하더라.(웃음) 그래서 영화가 투톱으로 가게 되었다.
김 전 교수도 시나리오를 보았나?
안 보여주고 싶었지만 찍는 중간에 한 번 보여주었다. 편지를 써서 함께 보냈다. '영화는 정지영의 시각으로 석궁 사건을 그린 것이니까 자질구레한 문제 제기는 하지 말아달라'라고 했다. 영화 플랜에 혼선이 오면 힘드니까. 다행히 김교수도 흔쾌히 좋다고 하더라.
영화화하면서 사법부 쪽의 의견도 들었나?
사법부는 아니고 변호사의 의견은 들었다. 재미있다고 하더라. 의외로 석궁 사건에 대해 변호사들이 모르더라. 사법부에서는 걱정은 하고 있더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판사들이 소송을 걸 가능성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을 최대한 고려해서 만들었다. 소송을 거는 것이야 누구나 가능한 것이니까. 영화를 보고 사법부의 많은 판사가 기분은 나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양심적인 판사라면 '우리 사법부에 저런 측면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판사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이브한 기대도 한다.
< 부러진 화살 > 의 주인공은 죄가 없나?
내가 영화에서 꾸민 것이 없다. 공판 기록대로 만든 것이다. 그가 죄가 있다면 판사 집으로 석궁을 들고 찾아갔다는 정도이다.
실제 김명호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짜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원칙을 중시하고. 그의 재임용 탈락도 원칙대로만 하면 그럴 이유가 없었던 것이었고, 재판도 원칙대로만 했다면 그가 이기는 것이었다.
데뷔는 멜로 영화로 했는데 사회성 강한 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내가 멜로에 별로 안 맞는데 1980년대에는 검열 때문에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이 불가능했다. 영화감독을 하고 싶어서 타협한 것이다. 1987년작 < 거리의 악사 > 도 데모 장면을 상징적으로 처리했음에도 10분이 잘려서 스토리가 연결이 안 되는 상태로 개봉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거쳐왔다.
요즘에는 적어도 그런 것은 없지 않나?
영화에서 못 다루는 것은 없어졌다. 하지만 < 부러진 화살 > 이 무사히 개봉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아직도 정치적 검열을 의식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요즘 나오는 영화도 보나.
후배들이 영화는 잘 만든다고 보는데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듯하다. 2000년대 초반의 한국 영화는 다양하고 개성이 넘쳤다. 그런데 점점 개성이 없어지고 있다. 경쟁이 없어지고 한쪽에서 독점하면서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좁아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지난해까지 2년간 한국 영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가다가 한국 영화가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한국 영화가 장사가 안 된다고 CJ가 포기하고 미국 영화만 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고민이 들었다. 기업은 이익이 안 되면 포기하니까. 많은 영화인이 그런 말을 하더라. 한국 영화인에게는 누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이 에너지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이렇게 영화를 하고 있다. 저예산 영화이지만.(웃음)
영화계에서 미국 영화 직배 반대 운동을 했는데 뚜껑을 열자 미국 영화가 힘을 별로 못 썼다.
< 부러진 화살 > ⓒ 아우라 픽쳐스
< 부러진 화살 > 은 상영 시간 100분 동안 날렵하게 날아간다. 사법부의 역할과 정의를 논한다는 점에서 얼마 전 흥행에 성공했던 < 도가니 > 를 떠올리게 한다. < 도가니 > 에서는 '착한 교사'가 덫에 걸린 아이들을 구해낸다. 하지만 < 부러진 화살 > 에서 김 전 교수는 결국 '사법 피해자'가 된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출구가 없는 것일까. 정감독은 "출구는 국민이다. 국민이 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권력을 위임한 사법부가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진령 기자 / jy@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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