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김정일 사망' 김일성-김정일 가계도, 北권력구도 우려

含閒 2011. 12. 20. 12:29

生也一片浮雲起!

좋은 일 많이 했으면 좋은 곳으로 가고,

나쁜 일 많이 했으면 나쁜 곳으로 가시오

 

'김정일 사망' 김일성-김정일 가계도, 北권력구도 우려

기사입력 2011-12-19 15:29:50

 


 

[TV리포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 17일 급병으로 사망한 가운데 그의 가족 관계가 주목받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이다. 두 사람은 북한 통치이념인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의 뿌리라 볼 수 있다.

김 주석은 1912년생으로 1945년 광복 후 50년 쯤 북한 지도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김 위원장은 이런 배경 때문에 국가정책에 관심을 갖고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성장했다.

김 위원장은 만경대혁명학원, 남산고급중학교, 김일성종합대학 등 정규교육을 마쳤으며 1960년대부터 후계자 수업을 했다. 또 김 주석의 힘을 얻어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김 위원장은 김 주석 사망 후 신격화에 가까운 우상화로 주민의 충성심을 유도했고 통치력을 강화했다.

김정일의 모친 김정숙은 김일성보다 7살 연하로 1940년 말 김일성과 결혼한 뒤 1942년 김정일을 낳았다. 하지만 1949년 넷째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릴 때 어머니가 사망한 것이 김 위원장을 조숙하면서도 폐쇄적인 성격으로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생존 가족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여동생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 부장이다. 김 부장은 김 위원장과 어린시절부터 함께 해 우애가 두텁다. 특히 김 위원장이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부터는 김 부장에 대한 의존도는 훨씬 커졌던으로 전해졌다.

또한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의 공식 후계자로 떠오른 김정은에 대한 관심도 모으고 있다. 김정은은 1982년 생으로 김정일과 그의 두 번째 부인 고영희(1953~2004)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정은 위로는 큰 형 정남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한 살 많은 정철 등 2명의 형이 있다. 그리고 설송, 춘송, 여정 등 누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서 북한 내 권력투쟁과 핵무기 문제, 김정은의 권력구도 등을 두고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정일 만났던 야권 인사들, 신중한 대처 주문

2011-12-19 18:06 CBS 조은정 기자

 

▶1-4-1 기사 내용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과 관련해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신중한 대처를 주장했다.

조문에 대해서는 대부분 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는 김 위원장 사망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북측 동포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고 최경환 김대중 평화센터 대변인이 전했다.

이 여사는 "김 위원장은 남편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6.15 공동선언을 발표해 남북 화해와 협력에 이정표를 만들었다"며 "거듭 깊은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특히 김 위원장의 조문 문제에 대해 "2009년 8월 남편이 서거했을 때 조문특사단을 서울에 보내준 만큼 조문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문화관광부 장관 재임 당시인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때 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했으며, 이후 대북 특사를 맡으며 여러차례 김 위원장과 접촉한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정부가 슬기롭게 대처해 북한을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의원은 김 위원장에 대해 "굉장히 스마트했다. 서방세계, 특히 한국 국내 문제 여러가지를 박식하게 알고 있었다"며 "대화를 하면 머리 회전이 굉장히 빨라서 말이 잘 통했다"고 회상했다.

박 의원은 또 "김 위원장이 북한에서 가장 '친미적'인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가 살아 있을 때 남북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게 소신이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문과 관련해서는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서도 조문 하는 것이 좋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2000년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보로 평양을 방문했던 이해찬 전 총리는 "내년에 중국, 미국, 한국, 러시아 권력이 교체되는 미묘한 시기에 김 위원장이 급서해 대단히 위중한 상황"이라며 "한반도 평화에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특별히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민주통합당이 이날 긴급 구성한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비서실장을 했던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에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전체 준비를 맡은 준비위원장을 했기 때문에 애도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날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한 뒤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다 소식을 접한 한명숙 전 총리는 "이런 급한 상황이 터질 때일수록 남북간 핫라인이 중요해진다"며 "비상시를 대비해 핫라인으로 소통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게 남북관계를 위해 매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래한국 국민연합 성명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북한 동포와 한국민에게 있어 福音(복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는 이 기회에 김정일 이후의 대북한 정책을 신속히 내놓아야 한다. 그것은 김정일이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독재권력을 승계한 이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비롯, 천안함 공격, 연평도 포격 등 천인공노할 범죄적 대남도발을 거듭,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김일성·김정일 부자 2대는 2천3백만 북한 동포를 인질로 하여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듭, 인민을 억압하고 굶주리게 하며 강성대국의 몽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김정일의 후계자가 누구이든 이제는 제발 남북의 민족이 진정으로 화합하고 국토가 통일될 수 있도록 광복 후 66년간의 鐵血(철혈) 독재를 걷어차고 인권을 존중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실천할 것을 촉구하기 바란다.

북한의 지배층은 지금 당장 자유민주주의의 체제를 채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살아 남으려면 최소한 중국의 1978년 鄧小平(등소평)과 같은 흑묘백묘론이나 1986년 소련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같은 발상의 전환을 함으로써 북한 인민을 살리고 모든 동포가 통일에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부와 북한 지도층에게, 김정일의 사망을 轉禍爲福(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게 국가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遠慮深謀(원려심모)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2011년 12월 19일

 

 

미래한국국민연합 공동대표

고영주, 권영해, 김홍도, 박 근, 송정숙, 이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