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동분청사기를 사랑한 이해찬 前총리님 영전에 올리는 만사(輓詞)
- 기자명경남=손승모 기자
- 입력 2026.01.29 12:19
- 수정 2026.01.29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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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 차문화연구가)

아아! '회자정리(會者定離)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했던가. 서방정토세계로 떠나시는길이 그리도 급하셨습니까! 베트남으로부터 갑작스런 비보를 듣고 얼마나 절통하온지요.
한달 전 평통수석부의장실에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와 찾아 뵈올 때 따사롭고 반갑게 맞아주신 모습이 눈에 생생하옵니다. 필자가 특별히 제작한 “한국의평화통일과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하신 이해찬총리님의 평통수석부의장취임을 축하합니다”는 글귀가 씌여진 분청사기접시작품을 선물로 드리니 매우 감격하셨습니다.
필자와 이총리님은 호형호제하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었습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관계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당시 그 엄혹했고 악명 높은 남한산성 육군 군교도소에서 필자와 함께 수형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 총리님은 워낙 담배를 좋아하는 끽연가이신지라 필자가 모처를 통해 새로 출시된 ‘솔’담배 두갑을 구해서 검은 테이프로 감아 운동시간에 운동장 담벼락 화장실 창문에 올려다 놓았습니다. 이 총리님이 운동시간에 나오시면 필자는 2층 옥탑에서 손짓으로 담배있는 위치를 헌병들 몰래 알려드렸습니다. 재빠르게 이 총리님도 헌병들 몰래 담배와 라이터를 숨겨가지고 입방하셨습니다.
그날 담배 한갑은 사형선고를 받고 함께 수감생활하시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께 드렸다고 후일담을 전하시면서 입가에 미소를 띄우셨습니다. 이후 헌병들이 이 총리님 방을 검방하다가 라이터가 발견되어 교도소안에 큰소동이 벌어져서 필자도 매우 곤욕을 치루었다고하니 파안대소하셨습니다.
필자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과 전화 연결 시켜드리니 두분은 정겨운 목소리로 근황을 주고받으셨습니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와 함께 2월12일 저녁 설날맞이 떡국을 함께하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런 황망한 부음을 듣다니 그저 땅을 치며 통곡할 따름이옵니다.

따사롭고 한학(漢學)과 문화예술에 깊은 관심
이해찬 총리님의 이미지를 흔히들 차갑다고 한다. 이는 이 총리님의 내면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이 총리님과 교류해온 바로는 심성이 매우 따사로운 분 이였다. 일찍이 우리나라 금석학과 한학의 대가이신 청명 임창순 선생이 지도한 지곡서당에서 한학을수학하였다. 의원회관방에는 청명 임창순 선생의 고졸한 휘호 '松茂栢悅(송무백열)'을 걸어두고 좌우명 ‘벗이 잘 되는것이 얼마나 기쁜지’ 이처럼 따사로운 마음씨가 어디있을까? 이 총리님은 일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이 총리님이 중국정부의 요인들과 오랜 인연을 맺게된 것도 청명 임창순 선생 문화에서 닦은 중국고전 실력을 바탕으로 한문 문명권 전통가치를 공유하였기 때문이였다. 한평생 정치인들만 가까이한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계에도 많은 벗들을 두었고, 그들과함께 어울리면서 풍류를 즐길줄 아는 르네상스적 인물이였던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소리소문없이 전시와 공연후원도 많이 하였다.

그 해 겨울, 폭설의 남한산성 붉은 벽돌 감옥
필자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당시 육군 사병신분이였다.
대구에 있는 제2군사령부사령관(진종채)비서실에 근무하던 중 광주에서 비극적인 양민학살 소식을 접하였다. 계엄시 광주는 2군사령부 관할이였다.
당시 필자는 혈기방장하던 청년이라 비분강계하여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과 비서실장에게 역사적으로 볼때 군인이 민간인을 학살하는것은 큰 죄악이고, 김대중 선생은 즉각 석방되어야한다고 하였다. 필자의 이런 언동을 들은 비서실 장교들은 즉시 계엄사합동수사단(대구지역)에 필자의 신병을 인계해 버렸다.
5월23일 영장도 없이 체포되어 15일간 온갖 악날한 고문 끝에 그들은 허위날조된 사건을 만들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러나 미국대사관 문정관과 프랑스 문화원장 등이 최정간은 정치인이 아니고 예술가이니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탄원서를 2군사령관 앞으로 보냈다.
대구 5관구 유치장에서 경북대학교 강기룡, 손호만, 박종덕, 영남대학교 이태헌, 송형근, 석원오, 계명대학교 박명규, 김균식, 귄오국, 동국대학교 김동윤 등 대구지역 대학생들과 3개월간 생활하면서 군사재판을 받았다. 필자에게는 중형을 피할수있는 비상계엄법 위반혐의가 적용되어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았다. 비상계엄 시라 군인은 단심제여서 바로 남한산성육군교도소로 이감을갔다.
가을의 남한산성 아래는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배방이 된 곳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관계로 재판을 받고 수형중인 문익환 목사 옆방이였다. 0.8평 사방에 흰벽만 보이는 곳에서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특수동이라하여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6명만 수용되었고, 군헌병들의 경계는 삼엄하였다. 이곳에서 1개월간 생활하던 어느날 헌병 중대장과 보안사 요원이 찾아와서 급히 방을 빼라고하였다. 내용인 즉 서대문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고있던 김대중 내란사건 일행들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함께모아 수용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필자가 생활하던 방에 이해찬 총리님이 함께 생활하게 된것이다. 이 총리님과는 바깥에서 휴머니타스 동인인 친구가 소개하여 인연이 있었다. 어느날 운동시간에 모 헌병대위의 도움으로 이 총리님과 옥중상봉을 하게 되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공간이였지만, 얼마나 반가웠는지 저녁시간 모 헌병대위가 당직을 하는 날은 이 총리님방으로가서 자유스럽게 대화도 할수있었고 많은 책들도 얻어볼 수 있었다.
마침 필자는 교도소 측의 허락 하에 지,필,묵을 소지하면서 가끔 서예와 묵화작업을 할수있었다.
하루는 이 총리님이 “오늘이 내딸(이현주양) 돌”이라 하시기에 수묵화 한 점을 그려 선물하였더니 사모님 되시는 김정옥 여사가 면회 오는 편에 전해드렸다고 하였다. 그해 겨울 남한산성 육각형의 붉은 벽돌 감옥에는 유난히 폭설이 많이 내렸다. 우리들은 언제올지 모를 봄을 기다렸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 땅에는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왔다. 이해찬 총리님은 정계입문하여 국회원이 되었다. 1995년 우리들은 감격적인 해후를 하였다. 필자가 도자기 작업을하는 하동을 자주 찾아주셨다. 질박한 하동분청사기美에 매료되었고, 섬진강 재첩국과 죽로차도 좋아하셨다.
부디 이해찬 총리님이시여, 천상에서 평화롭게 휴식 또 휴식하소서.
※이 글은 외부 기고입니다.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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