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에 깃든 석당(石堂) 최남주의 향기따라 <49>
‘경주’라는 공간 통해 근대 화단 거장들과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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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 2025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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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성‧박수근과 깊은 교류 최남주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서양화가는 이인성이었다. 경주를 사랑한 이인성은 최남주의 권유로 1935년 신라의 유장한 조형미를 자신의 화폭에 녹여서 불멸의 명작 ‘경주의 산곡’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해방과 정부수립, 6‧25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1954년 국민화가 박수근이 처음으로 경주를 답사하였다. 이때만 해도 우리 화단에서 박수근이란 존재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화가였다. 최남주가 1934년 발견한 ‘신라화랑임신서기석’을 탁본하는 등 신라문화유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후 해마다 경주를 방문하여 석당 최남주의 도움으로 신라불교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남산을 답사하였고 김유신 장군묘의 십이지신상 탁본을 하였다. 후일 그의 작품에 나타난 화강석질의 짙은 마티에르 기법은 경주신라 석조문화유산에서 받은 영감(靈感)의 표출이였다. 박수근은 1962년 서울국립중앙공보관 전시실에서 개최된 최남주 부자의 신라탁본 전시회 때도 참석하여 신라석조예술의 조형미에 깊은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1세대 추상화가 권옥연과 인연 우리나라 1세대 추상화가 권옥연(權玉淵, 1923~2011)이 경주를 방문한 해는 1963년 1월이다. 무대예술가이자 부인 이병복(1927~2017)과 함께 석당 최남주의 성건동 고택을 찾았던 것이다. 그해 1월 경주지방에 유난히 동장군이 엄습하여 고택의 문고리가 손가락에 쩍쩍 달라붙었다. 최남주와 권옥연의 첫 인연은 1962년 서울에서의 탁본전시회때였다. 주한 프랑스대사 로제샹바르의 소개로 그를 만났던 것이다. 이때 권옥연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직후라 한국 서양화단에 가장 촉망받는 추상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는 신라 석조예술의 탁본들을 감상한 후 오래전부터 동경해왔던 경주답사를 준비하였다. 1963년 1월말 경 최남주의 도움으로 신라불교미술의 얼이 깃든 남산 골짝 곳곳을 답사하면서 스케치하였다. 특히 철화곡에서 최남주가 발견한 신라 최대 불두 앞에서 두손모아 합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주일동안 경주답사를 통해 신라석조미술과 신라토기, 토우 등에 깃든 신라인들의 천진무구한 맑은 영혼의 울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미술평론가 석도륜에게 이야기하였다. 권옥연은 1963년 1월 경주답사 이후 신라불두와 토기를 추상세계로 승화시켜 그의 화폭에 담았다. 1964년과 1965년 개인전에서 이와같은 소재의 명작들을 볼수가 있었다. 무의자(無依子) 권옥연은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함경남도 함흥 대부호의 종손으로 태어나서 유년시절부터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예술가로서의 머나먼 여정을 걸어갔다. 동경제국미술학교 유학후 귀국하여 대학교단에서 후학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6‧25전쟁 중에 부산에서 무대연극예술인 이병복을 만나 결혼하였다. 이병복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의 만석지기 이인석의 손녀이다. 옛 경주 고로들의 에피소드중에 그날그날 배가 부르게 식사를 해결하면 영천부자 이인석이 눈아래로 보인다는 말이 1950년대까지 구전되어 왔다. 그만큼 영천 이인석의 재산은 경주 최부자와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아들들은 이활(초대 무역협회 회장), 이담, 이홍, 이호(내무부장관 역임)등으로 정부수립 후 요직에서 활약하였다. 이병복의 아버지는 일본유학 후 초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이홍(李泓)으로 안타깝게 6‧25때 납북되고 말았다.
권옥연 부부 남산 한옥박물관 꿈 권옥연, 이병복 내외는 경주 동남산아래 손정호씨의 고택을 매입하여 경주에서 사립박물관 개관의 꿈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는 석당 최남주를 통하여 손정호씨 고택매입을 착수하였다. 동남산 아래 남산리에 자리잡고 있는 고택은 주변 남산리 신라쌍탑과 뒤쪽 동남산의 산세가 잘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권옥연 내외는 일찍 프랑스 유학시절 고성(古城)들을 활용한 문화공간들을 많이 목격하였다. 신라고도 경주 동남산 아래 고택을 잘 꾸며 사립박물관과 공연무대공간으로 키워나가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라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택 주인과의 가격차이로 끝내 그 꿈은 무산되고 말았고 석당 최남주도 몹시 안타까워했다. 세월이 흘러 1970년대 초반 권옥연, 이병복 내외는 경주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남양주에서 이룰 수가 있었다. 조선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살던 남양주 평내동 ‘궁집’을 매입하여 무의자박물관과 연극공연 무대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하였다. 이 공간은 1990년대부터 국내외 동호인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은 역사적인 문화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였다. 권옥연, 이병복 내외가 귀천한 후 지금은 남양주시에 기증되어 문화적 공간의 기능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석당 최남주 아들들과 권옥연 내외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1986년 그의 막내아들 최정간의 한국일보사 초대 도예전에 참석하여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2003년 경주 김유신 장군묘 입구 석당공원에 세워진 ‘석당 최남주선생 추송비’ 제자(題字)를 권옥연 화백이 썼다. 지금도 이곳을 찾는 길손들에게 두사람이 경주에서 예술로 맺은 맑은 인연의 향기를 그윽히 풍기고 있다. 편집부 기자 / 2025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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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 최 정 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 |
이인성‧박수근과 깊은 교류
최남주가 가장 잊을 수 없는 서양화가는 이인성이었다. 경주를 사랑한 이인성은 최남주의 권유로 1935년 신라의 유장한 조형미를 자신의 화폭에 녹여서 불멸의 명작 ‘경주의 산곡’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해방과 정부수립, 6‧25 등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1954년 국민화가 박수근이 처음으로 경주를 답사하였다. 이때만 해도 우리 화단에서 박수근이란 존재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화가였다. 최남주가 1934년 발견한 ‘신라화랑임신서기석’을 탁본하는 등 신라문화유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이후 해마다 경주를 방문하여 석당 최남주의 도움으로 신라불교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남산을 답사하였고 김유신 장군묘의 십이지신상 탁본을 하였다.
후일 그의 작품에 나타난 화강석질의 짙은 마티에르 기법은 경주신라 석조문화유산에서 받은 영감(靈感)의 표출이였다. 박수근은 1962년 서울국립중앙공보관 전시실에서 개최된 최남주 부자의 신라탁본 전시회 때도 참석하여 신라석조예술의 조형미에 깊은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 2003년 4월 서울 신당동 권옥연 화백 화실에서. 왼쪽부터 현암 최정간, 무의자 권옥연, 최정필 교수. |
1세대 추상화가 권옥연과 인연
우리나라 1세대 추상화가 권옥연(權玉淵, 1923~2011)이 경주를 방문한 해는 1963년 1월이다. 무대예술가이자 부인 이병복(1927~2017)과 함께 석당 최남주의 성건동 고택을 찾았던 것이다.
그해 1월 경주지방에 유난히 동장군이 엄습하여 고택의 문고리가 손가락에 쩍쩍 달라붙었다. 최남주와 권옥연의 첫 인연은 1962년 서울에서의 탁본전시회때였다. 주한 프랑스대사 로제샹바르의 소개로 그를 만났던 것이다. 이때 권옥연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직후라 한국 서양화단에 가장 촉망받는 추상화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는 신라 석조예술의 탁본들을 감상한 후 오래전부터 동경해왔던 경주답사를 준비하였다. 1963년 1월말 경 최남주의 도움으로 신라불교미술의 얼이 깃든 남산 골짝 곳곳을 답사하면서 스케치하였다. 특히 철화곡에서 최남주가 발견한 신라 최대 불두 앞에서 두손모아 합장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주일동안 경주답사를 통해 신라석조미술과 신라토기, 토우 등에 깃든 신라인들의 천진무구한 맑은 영혼의 울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미술평론가 석도륜에게 이야기하였다.
권옥연은 1963년 1월 경주답사 이후 신라불두와 토기를 추상세계로 승화시켜 그의 화폭에 담았다. 1964년과 1965년 개인전에서 이와같은 소재의 명작들을 볼수가 있었다.
무의자(無依子) 권옥연은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함경남도 함흥 대부호의 종손으로 태어나서 유년시절부터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예술가로서의 머나먼 여정을 걸어갔다.
동경제국미술학교 유학후 귀국하여 대학교단에서 후학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6‧25전쟁 중에 부산에서 무대연극예술인 이병복을 만나 결혼하였다. 이병복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의 만석지기 이인석의 손녀이다. 옛 경주 고로들의 에피소드중에 그날그날 배가 부르게 식사를 해결하면 영천부자 이인석이 눈아래로 보인다는 말이 1950년대까지 구전되어 왔다. 그만큼 영천 이인석의 재산은 경주 최부자와 쌍벽을 이루었다.
그의 아들들은 이활(초대 무역협회 회장), 이담, 이홍, 이호(내무부장관 역임)등으로 정부수립 후 요직에서 활약하였다. 이병복의 아버지는 일본유학 후 초대 농림부 양정국장을 지낸 이홍(李泓)으로 안타깝게 6‧25때 납북되고 말았다.
| 1964년 신라토기를 추상화한 권옥연 작품.(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캡처) |
권옥연 부부 남산 한옥박물관 꿈
권옥연, 이병복 내외는 경주 동남산아래 손정호씨의 고택을 매입하여 경주에서 사립박물관 개관의 꿈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는 석당 최남주를 통하여 손정호씨 고택매입을 착수하였다.
동남산 아래 남산리에 자리잡고 있는 고택은 주변 남산리 신라쌍탑과 뒤쪽 동남산의 산세가 잘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권옥연 내외는 일찍 프랑스 유학시절 고성(古城)들을 활용한 문화공간들을 많이 목격하였다. 신라고도 경주 동남산 아래 고택을 잘 꾸며 사립박물관과 공연무대공간으로 키워나가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라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택 주인과의 가격차이로 끝내 그 꿈은 무산되고 말았고 석당 최남주도 몹시 안타까워했다. 세월이 흘러 1970년대 초반 권옥연, 이병복 내외는 경주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남양주에서 이룰 수가 있었다. 조선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가 살던 남양주 평내동 ‘궁집’을 매입하여 무의자박물관과 연극공연 무대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하였다.
이 공간은 1990년대부터 국내외 동호인들로부터 많은 호평을 받은 역사적인 문화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하였다. 권옥연, 이병복 내외가 귀천한 후 지금은 남양주시에 기증되어 문화적 공간의 기능을 계승하고 있다.
한편 석당 최남주 아들들과 권옥연 내외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1986년 그의 막내아들 최정간의 한국일보사 초대 도예전에 참석하여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2003년 경주 김유신 장군묘 입구 석당공원에 세워진 ‘석당 최남주선생 추송비’ 제자(題字)를 권옥연 화백이 썼다. 지금도 이곳을 찾는 길손들에게 두사람이 경주에서 예술로 맺은 맑은 인연의 향기를 그윽히 풍기고 있다.
편집부 기자 / 2025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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