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에 깃든 석당(石堂) 최남주의 향기따라 <51>
비운의 황태손 이구가 그린 ‘관광도시 경주 밑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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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 202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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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 최 정 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 |
이처럼 21세기 경주가 세계문화유산관광도시로 브랜드가치가 상승되기까지는 반세기전부터 글로벌한 안목을 가지고 문화관광도시계획을 수립한 인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건축가 이구(李玖, 1931~2005)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경주관광개발 기본계획
우리들에게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비운의 황태손(皇太孫)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가 건축가로서 경주에 끼친 영향은 잘 모르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 신경주대학교 황대욱 교수에 의해 1969년 이구가 작성한 ‘경주관광개발기본계획’ 자료가 발굴되어 경주관광개발사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
이구는 1955년 미국 MIT공대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한 후 중국계 미국인이자 세계적인 건축가인 이오밍 페이(1917~2019) 건축설계연구소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1963년 11월 아버지 영친왕(英親王)과 어머니 이방자(李芳子)여사를 따라 그리운 조국으로 환국하였다.
1966년 자신이 설립한 건축설계회사 ‘트렌스 아시아 컴퍼니’를 통해 낙후된 조국을 재건하는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갔던 것이다. 1967년 지금은 철거된 동대구역사를 설계하였다. 또한 1969년 경주시로부터 의뢰받아 작성한 경주관광개발 기본계획용역서는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경주관광개발계획의 빛나는 바이블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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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7년 4월 20일 경주박물관을 방문하여 기념식수하는 영친왕 이은 공.(사진출처 석당 최남주 앨범) |
경주와의 인연
1964년 최남주는 미국인 미술사학자 프랑크샤만의 소개로 메릴랜드대학교 미8군분교에서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와 경주박물관에서 만난지 40년만에 회후를 하게된다. 1927년 4월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는 경주를 방문하고 경주박물관에 기념식수를 하였다. 최남주의 빛바랜 앨범의 당시 기념사진이 그날을 추억하고 있다. 최남주와 이구의 인연도 경주로 이어졌다.
건축가 이구는 신라천년고도 경주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았다. 1965년 봄 경주답사에 나섰다. 40년 전 부모님이 머물렀던 불국사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최남주의 안내로 경주의 신라문화유산들을 두루 답사하였다. 특히 경주 양동마을 조선시대 고택들을 답사한 그는 주변의 야산과 목조건물이 조화롭게 건축된 모습에 감탄하였다.
여름철 시원한 대청마루와 겨울철 따뜻한 온돌은 한옥만이 가지는 실용적인 건축양식으로 자신의 건축철학과도 부합한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조상들의 지혜에 머리를 숙였다.
이어 교동 최부자집과 성건동 김교식(전 경주시장) 고택, 석당 고택 등을 둘러보았다. 3박4일간의 경주답사를 마치고 최남주에게 소회를 이야기하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건축학도로서 혼신을 다해 경주가 아름다운 국제관광도시가 될수 있는 밑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하였다. 그의 이러한 꿈은 1969년 경주관광개발기본계획 수립으로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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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창경궁 낙선재에서. 왼쪽부터 석당 최남주, 이구(마지막 황태손, 트렌스 아시아 부사장), 오태균(초대 부산시향 상임지휘자, 전 신라대학교 총장).(사진출처 석당 최남주 앨범) |
경주개발계획의 훈훈한 이야기
1968년 5월 권태룡 경주시장이 부임하였다. 권 시장은 경주시장으로 부임하기전 월성군수(경주시와 월성군 통합 전)로 재직하였다. 그는 경주시 외곽 신라문화유산보호보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권 시장은 이 방면에 가장 조예가 깊은 최남주를 월성군 문화재위원으로 임명하여 월성군 전역에 흩어져있는 신라문화유산을 조사할수 있게 적극 후원하였다. 당시 최남주를 도와서 함께 조사에 나선 월성군의 문화계장은 김상덕이었다.
최남주는 경주관광자원개발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권 시장에게 첫 사업으로 트렌스 아시아 컴퍼니 이구 부사장에게 경주관광기본계획수립 용역을 발주하도록 제안하였다. 권 시장은 당시 경주시 재정형편이 열악하여 용역비용을 최소한으로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최남주는 창경궁 낙선재를 방문하여 이구에게 이같은 권 시장의 이야기를 전하니 흔쾌히 승낙하였다. 이구에 의해 작성된 용역계획서는 청와대에 즉시 보고 되었다. 이구의 용역계획을 바탕으로 1970년 연세대학교 도시문제연구소 소장 노정현과 책임연구원 박병주 교수에 의해 경주도시계획재정비안이 구체적으로 진행되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특명으로 청와대 비서실에 ‘경주관광개발계획 추진기획단’이 구성되었다. 이어 1973년 박병주, 김수근 등에 의해 보문관광단지개발사업계획이 착수되었다. 이들이 만든 계획서는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차관을 도입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IBRD 실사단은 경주를 방문하여 신라문화유산들과 보문단지 현장을 둘러보았다.
당시 김창곤 경주시장과 이신택 관광계장이 코피를 쏟는 등 불철주야 노고가 많았다. 실사단의 영어통역은 최남주의 2남 최정채가 담당하였다. 반세기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떠나버렸지만 세계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위한 훈훈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남아있다.
이구의 부인 줄리아 멀록 여사(1923~2017)도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경주를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편집부 기자 / 2025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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