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에 깃든 석당(石堂) 최남주의 향기따라 <40>
서봉총 금관 발굴 인연…6‧25때 야전병원 파견 등 지원
편집부 기자 / 2024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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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 최 정 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 |
200병실 규모 적십자 야전병원
9월 25일 스웨덴 의료진선발대가 부산에 상륙하여 첫 진료를 시작하였다. 야전병원 장소는 당시 부산상고 건물(현 부산 롯데백화점)을 개조하여 임시로 사용하였다.
그해 10월 29일 구스타프 5세 국왕이 서거하자 구스타프 6세 황태자는 즉시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가 이처럼 한국전쟁중에 남한에 대규모 의료단을 신속하게 지원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고고학자로 유럽에서 명성을 날린 구스타프 황태자는 1926년 가을 비록 일제 강점기였지만 경주에서 발굴한 신라 서봉총 금관 등 신라문화와 인연을 맺었다. 평소 황태자는 고고학자로서 동양의 고대문화유산들을 연구하였다. 1918년 중국위원회를 설립하여 베이징원인을 발굴한 요한 군나르 안데르손과 같은 지질학자를 후원하였다. 이어 1921년 동방학회를 창립하여 회장으로서 유럽에서 학자들의 동양학연구에도 많은 후원을 하였다.
1926년 10월 9일 스웨덴 구스타프 6세 황태자의 석굴암 참배후 기념촬영 모습.(나무지팡이를 짚은 두 사람이 황태자 부부) |
1926년 9월 구스타프 황태자와 루이스 황태자비 일행은 그토록 동경하던 일본, 조선, 중국의 고대문화 유산답사 여행길에 나섰다. 9월 24일 일본의 교토에 도착하여 일본 고대 불교미술의 보물인 고대 사찰들과 나라(柰良)시 쇼소인(正倉院)을 답사하였다.
경주박물관에 전나무 기념식수
구스타프 황태자가 조선으로 출발하기전 시모노세키(下關) 환송 만찬장에서 일본인 고고학자 하마다 고사쿠는 황태자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하였다. 신라고도 경주의 고대 무덤에서 황금보관이 절반쯤 출토되어 전하의 발굴솜씨를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황태자 일행은 설레는 마음으로 10월 9일 신라왕국의 수도인 경주에 도착하였다.
석굴암, 불국사와 그 외 찬란했던 신라문화유산을 답사하면서 북유럽의 황태자 신분인데도 불고하고 경주의 어린이들에게 소박하게 다가가서 친근감을 표하는 대화도 하였다. 석굴암 참배시에는 가마를 이용하지 않고 나무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등정을 하였다. 이러한 구스타프 황태자의 서민적 행보는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었다. 일본 고관대작들의 권위적인 석굴암 참배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구스타프 황태자는 경주박물관을 방문하여 전나무를 기념식수하였다. 그는 고고학자로 비록 일제식민지 시절에 경주에서 신라 서봉총 황금보관 발굴의 행운을 가졌지만 진정으로 신라문화를 경배하였다. 구스타프 황태자가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 영면할 때까지 자신이 발굴한 서봉총 금관과 신라고도 경주를 잊지 못하였다고 석당 최남주는 회고하였다. 한국전쟁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가을 스웨덴 적십자 야전병원 의료진 5명이 경주박물관으로 석당을 찾아왔다. 이들은 석당에게 구스타프 국왕의 하명을 받고 서봉총 금관과 기념식수한 전나무를 보고자 방문하였다고 하였다.
이때 서봉총 금관은 미국으로 피난 중이어서 보지 못하고 전나무 앞에서 기념촬영만 하고 돌아갔다. 석당 최남주는 전쟁중에 이들과의 상봉을 통해 기억 속에 까맣게 잊혀진 서봉총 발굴 당시의 순간과 구스타프 황태자의 모습을 회상했다.
1968년 5월 구스타프 국왕의 경주박물관 기념식수 현장을 찾은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스웨덴 수석대표 ‘스미드마크’ 육군소장(왼편 첫번째), 주양자(네번째 전 국립의료원장, 전 보건복지부장관), 석당 최남주(오른쪽 첫번째). |
국립중앙의료원 설립
1953년 남북한이 휴전회담에 들어가자 중립국인 스웨덴은 전쟁 이후 정전협정 준수를 감시하기 위해 장성과 장교단을 판문점에 파견하였다. 1960년대 중반부터 이들은 일년에 한번씩 경주를 방문하여 서봉총 발굴에 참여한 석당 최남주를 찾아 구스타프 국왕의 안부를 전하였다. 이어 석당의 안내를 받아 경주박물관의 구스타프 국왕 기념식수인 전나무와 서봉총 옛터를 답사하였다.
한편 6‧25 한국전쟁은 한국의 의료체계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스웨덴은 북유럽 의료선진국으로서 붕괴된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복원해줄수 있는 의료기술과 경제력을 가진 나라였다. 스웨덴은 한국전쟁이 끝나고나서도 부산에 파견된 적십자 야전병원 의료단을 계속 잔류시켰고, 스웨덴이 중심이 되어 1958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3국 의료진들은 서울에 국립중앙의료원을 설립하였다. 이들 스칸디나비아 3국의 우수한 의료진은 한국인들에게 많은 의료혜택이 돌아갈수 있도록 헌신적인 노력을 하였다.
국립의료원의 스칸디나비아 3국 의료진들도 매년 봄가을 한번씩 경주를 방문하였다. 이때도 석당 최남주는 북유럽에서온 이들에게 찬란했던 신라문화의 향기를 전하였다.
편집부 기자 / 2024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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