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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의 매월당 다향(茶香)을 따라 불국사 천년 다향

含閒 2024. 9. 2. 16:08
서라벌의 매월당 다향(茶香)을 따라 불국사 천년 다향
서라벌신문 기자 / 2018년 03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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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 최 정 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 연구가
ⓒ 서라벌신문
토함산에 올라 아래를 둘러보면 현대 주거 문명의 상징인 콘크리트 아파트 숲만이 가득하다. 단순하고 획일적인 디자인의 건축물들은 세계 문화유산의 도시 경주를 물질적 탐욕이 가득한 도시로 만드는 것처럼 느껴진다.
토함산의 정기는 천년이 넘도록 석굴암 대불,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등의 위대한 유산들을 거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풍겼지만 이는 옛말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지난 1월 28일, 재경경주고도보존회(회장 이정락)는 “불국사 역사문화 환경을 현저히 침해하는 아파트 건축 허가를 취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단기 이익을 위한 욕망으로 위대하고 찬란한 문화의 도시 경주의 숨통을 조이는 행태에 대한 강한 몸부림이었다.

소멸하는 경주의 공간들과 사라지는 이야기들

과연 현대 건축물들로만 도시의 공간을 채워가는 게 도시의 부를 창출하고 수준을 높이기만 할까. 이와 같은 의문에는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란 작품이 떠오른다. 소설은 베네치아에서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그가 경험한 55개의 도시에 대해 타타르 제국의 황제 쿠빌라이와 나눈 대화를 담고 있다.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도시와 기억, 도시와 기호, 도시와 이름, 도시에서의 일상과 죽음 등을 묘사한다. 그가 말하는 55개의 도시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몽환적이지만, 그가 묘사하는 것은 과거를 지나 도시 속에서 미래를 향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풍경처럼 보인다. 깊은 역사를 가지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일수록 도시 속 공간은 많고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풍부하다. 만약 소설 속 주인공 마르코 폴로가 토함산에 올라 경주를 봤다면, 역사와 문화가 소멸해가는 쓸쓸한 풍경을 그렸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도시의 수준을 깎아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도시 경쟁력이란 측면에서도 도시가 담고 있는 문화와 역사, 다양한 이야기, 컨텐츠 등이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이득과 단기적인 안목으로 경주의 중요한 공간들이 소멸하고 파괴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평생을 바쳤던 필자의 선친 석당 최남주(1905-1980) 선생은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과 함께 민족 문화에 대한 탄압과 문화재 파괴를 자행했던 일제강점기 시간의 속에서도 경주의 소중한 공간들을 지켜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영화 암살의 주인공이자 전설적인 항일 혁명가인 약산 김원봉(1898-1958) 의사도 1946년 경주 불국사를 방문하여 선친에게 “석가탑과 다보탑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보물이며 해방된 조국에서는 이 두 보물을 더욱 잘 보존하여 후세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살게 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온 소중한 역사적 공간을 너무 저평가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

탑과 절이 무너지며

 
↑↑ 1946년 10월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맨 우측 석당 최남주, 바로 옆 약산 김원봉
ⓒ 서라벌신문
매월당은 경주를 답사하면서 길거리에 무너진 탑 근처에는 그 석상의 잔해로 다리를 놓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 역시 찬란했던 신라 문화유산들이 파괴되고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 석상이 돌다리가 되어가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塔寺壞.城中以石像爲橋者頗有之)
도시 공간의 소멸과 생성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은 시대를 달리 했지만 매월당과 이탈로 칼비노는 공유했다. 동서고금의 문명이란 본시 소장(消長)이 있는 법. 솔바람이 불어오는 불국사 입구 오솔길을 걸어가니 아직 정월이라 바람이 차다. 드문드문 참배객들이 일주문을 지나다닌다. 매월당 역시 이 길을 따라 청운교, 백운교를 지나 극락전 아미타 부처님께 차를 공양했다. 한 잔의 차를 띄우며 후대에 더 많은 이야기가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쉬라고 기도했으리라.
서라벌신문 기자 / 2018년 03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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