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초원의 대정복자 거란과 맞선 고려 하공진 장군 ‘류방백세비(流芳百世碑)’ 건립을 축하하며
- 기자명손승모 기자
- 입력 2024.10.16 07:43
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 차문화 연구가)
[경남=뉴스프리존]손승모 기자= 시월의 진주하늘은 눈부신 환희로 열려있다. 오는 10월19일 유서깊은 진주성 경절사 경내에 하공진 장군의 류방백세비가 건립된다. 진주정신의 표상이자 고려만고충신 충절공 하공진 장군의 국가를 위한 충절의 일생을 후세 길이 전하고 그 향기가 백대에 걸쳐 흐르길 염원하는 뜻을 ‘류방백세비’에 담았다.
필자는 연구자의 한사람으로 만시지탄이지만 비건립을 경하드리는 바이다. 진양하씨 대종회(회장 하춘길)에서 성금을 모아 건립된 ‘류방백세비’의 휘호는 故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10월 서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다. 박대통령은 평소 고려의 하공진 장군의 충절정신을 숭모하던 차에 진주 하씨 종친회에 휘호를 써준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많은 휘호를 남겼는데 그 중 하공진 장군을 위해 쓴 ‘류방백세비’휘호는 절필(絶筆)이어서 더욱 뜻이 깊고 서체 또한 매우 웅혼한 수작이다.
하공진 장군은 진주출신으로 11세기 격변의 동아시아 국제정치질서속에서 고려의 자주적 정신을 바탕으로 초원제국의 대정복자 거란과 끝까지 맞서싸운 위대한 영웅이었다. 당시 거란(요나라)의 성종(아율문수노)은 동아시아 패권의 한축인 고려를 정복하고자 두차례걸쳐 전쟁을 일으켰다. 2차대거란전쟁의 영웅들은 양규, 강감찬, 하공진 등이였다.
고려사와 거란의 요사(遼史)기록에 의하면 거란이 침공하자 고려왕실은 항복을 고민하다가 강감찬의 책략에 의해 전략적 철수를 하게 된다. 이때 하공진장군은 정예군사20명을 이끌고 남쪽으로 피난중인 현종을 뒤따라가서 양주에서 거란군과 철수교섭을 벌였다. 그는 거란성종의 볼모가 되어 수도 연경에서 체류하게 된다. 이때 거란 성종으로부터 모진고문과 회유를 받게된다. 하공진은 조국 고려에대한 충의절개로 완강히 버티었다. 이때 그 유명한 ‘아시고려인(我是高麗人) 불감유이심(不敢有二心)’ ‘나는 고려인이다. 두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고 초원의 제국 거란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충절의 진주정신의 효시가 되었던 것이다.
하공진 장군의 구국충절정신은 단순한 진주하씨 집안에 국한되어서는 안된다. 보다 넓은 세계사적 시각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11세기초 동아시아 국제정치질서는 거란, 송, 고려, 서하등의 다원적인 세력들이 각축을 벌였다. 최고 강자인 초원제국 거란은 한반도의 고려라는 정치세력과 숙명적인 대결을 거듭하였다. 하공진 장군은 이런 거란과 고려의 전쟁속에 순국한 고려의 영웅이였다.
필자는 오래전 진주교육대학교 김성준 총장의 권유로 진주교육대학교 논문집 ‘경남문화’에 하공진 장군을 국제적인 인물로 부각시킨 『초원제국의 대정복자와 맞선 진주인 하공진』이란 연구논문을 발표한바가 있다. 이번 ‘류방백세비’건립을 통해 하공진 장군의 위업이 오늘의 혼탁한 우리 역사에서 정당히 초혼되길 간절히 기원드린다. 또한 동아시아연극사의 백미인 ‘하공진 놀이’도 K컬쳐 상품이 되어 진주성내에서 공연되길 바란다. 그동안 세간의 논란이된 하공진 장군의 혼이 서린 사당 경절사 이전계획도 마땅히 철회되어야 할 것이다.
아! 남강물이 마르는 한이 있더라고 하공진 장군님의 류방백세비는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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