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왕유의 종남별업(삼도헌의 한시산책 321)

含閒 2014. 7. 18. 10:59

왕유의 종남별업(삼도헌의 한시산책 321)

망천도

종남산의 별장[終南別業]   王 維(왕 유)

 

中歲頗好道(중세파호도) 중년에 자못 도를 좋아하다

晩家南山陲(만가남산수) 만년에 종남산 기슭에 집을 지었네.

興來每獨往(흥래매독왕) 흥이 나면 매양 홀로 거닐며

勝事空自知(승사공자지) 그 가운데 기쁜 일 나만이 안다네.

行到水窮處(행도수궁처) 걸어서 물 다하는 곳 이르면

坐看雲起時(좌간운기시) 앉아서 구름 이는 것 보고,

偶然値林叟(우연치림수) 우연히 숲 속의 늙은이 만나

談笑無還期(담소무환기) 얘기하고 웃으며 돌아가기 잊는다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요즘 직장인들은 퇴직한 뒤 귀향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세파에 시달린 사람들이 만년을 자연과 벗하면서 편안하게 보내기 위함이 큰 이유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당나라의 왕유(王維)는 귀향의 원조이다. 그는 중년의 나이에 불교에 귀의해 유마경(維摩經)의 주인공인 유마힐(維摩詰)을 닮고자 자()까지 마힐(摩詰)’이라고 지었다. 왕유는 안록산의 난 때 반란군의 포로가 된 연유로 뒤에 관직을 박탈당하면서 속세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하여 만년에 도교와 불교의 성지로 알려진 종남산(終南山) 기슭 망천(輞川)에 별업(別業)인 망천장(輞川莊)을 짓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지으면서 살았다. 여기서 말한 별업은 원래 사는 집 외에 주로 휴양을 위해 주변 경관이 좋은 곳에 따로 마련한 별장과 같은 집을 말한다.

망천은 장안(長安)의 동남쪽 남전산(藍田山)과 요산(嶢山) 사이를 흐르는 강이다. 당시 불교의 영향으로 자연 속에서 도를 논하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에 풍광이 빼어난 이 지역은 명사들의 별장소재지로 각광을 받았던 모양이다. 왕유도 초당의 시인이었던 송지문(宋之問)의 별장을 사들여 자신의 별장인 망천장으로 꾸몄다. 그는 정자인 죽리관(竹里館), 임호정(臨湖亭), 문행관(文杏館) 등과 언덕인 근죽령(斤竹嶺), 호수인 백석탄(白石灘) 20곳의 명소를 망천20()으로 불렀다. 망천장의 명소를 보고 지은 오언절구로 된 20 수의 시를 별도로 묶은 시집이 망천집(輞川集)’인데 그의 시집 중 가장 유명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죽리관이란 시도 그 중의 하나이다. 또한 망천장의 빼어난 12풍경을 그린 그림이 망천도(輞川圖)’라는 화첩(畵帖)이다. ‘망천도는 진본이 없어졌지만 역대 이름 높은 화가들이 그린 모사도가 많이 전한다.

오늘 소개하는 이 시에서 왕유는 망천장에서 은거하고 있는 자신의 삶을 그림 그리듯 묘사하고 있다. 먼저 은거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그 뒤의 여섯 구에서 일상생활을 그렸는데, 세상과 더불어 다툼이 없는 탈속의 경지를 지향하면서 자연에 묻혀 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왕유(王維, 699~759)

당대(唐代) 제일의 산수전원시인(山水田園詩人). 그는 남종화의 시조(始祖)로 추앙을 받았으며, 이백(李白, 701~762)을 시선(詩仙), 두보(杜甫, 712~770)를 시성(詩聖)으로 부르는데 비견하여 시불(詩佛)로 불렸다. 북송의 소동파는 왕유의 작품을 보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다[畵中有詩]”고 평하기도 했다. 저술로 왕우승집’6권과 육조능선사비명등 선승들의 비명(碑銘)이 있다.

 

서예세상 삼도헌 글방(http://cafe.daum.net/callipia)

삼도헌의 한시산책 321(2014년 7월 18일 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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