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시정 강박

含閒 2010. 3. 10. 09:57

  시정 강박




매사에 적극적인 한 경영자는
특이하게도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부러워한다고 말합니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내비가 보여주는
신속한 오류 수정 능력 때문이랍니다.
내비가 이전 경로를 포기하고
새 길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은 10초 안팎인데
인간은 왜 그렇게 빨리 자기 오류를 시정하지 못하는지
답답하다는 겁니다.

군대에서 하급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시정하겠습니다’ 라지요.
그와 운율을 맞추는 고참들의 맞대응 멘트는
‘너는 시정만 하다가 군대생활 마칠 거냐?’ 구요.^^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의 ‘시정’이,
말처럼 쉽다면 그런 군대식 문답들이
스테디셀러처럼 존재할 리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신속한 오류 수정 능력을 부러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기계이고 대부분의 우리는 사람입니다.
‘배째라’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것도 꼴불견이지만
가벼운 반성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어
자학 모드 수준의 시정 강박에까지 이르면 보기에 딱합니다.

살면서 무엇보다 먼저 시정되어야 할 것은,
자기를 잘 보듬지 못하고 귀히 여기지 못하는,
자기애와 관련된 나태함이라고 저는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그런 나태함을 바로 잡는 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시정 강박에 대한 설왕설래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는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