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낚시의 손맛

含閒 2010. 2. 24. 10:41

  낚시의 손맛




한 영화감독은 자신이 중학생 때 보았던 영화의 한 부분을
성인이 되어서야 이해한 경험이 있답니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애절함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장면이었는데
30년 전엔 그것을 다른 맥락으로 이해했던 거지요.
그렇다면 그때 그 중학생이 보았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지구가 평면이 아니라 둥글다’ 라는
경천동지할 수준은 아니더라도
지금껏 진실이라고 알고 있던 일들이 실은 잘못된 사실인 경우,
역사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부지기수입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사실을 진실로 오인했던 그간의 시간에서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한번도 낚시를 해본 적이 없는 한 소설가는
‘낚시의 손맛’이라는 표현을 보면서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살다보면 낚시의 손맛처럼
내가 모르는 세계가 수두룩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문제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찬.찬.히. 깊.게. 자신을 바라보는 경험 없이 지레짐작만으로,
자신을 불필요하게 핍박하거나 괜한 연민을 갖거나
턱없이 과시합니다.

30년 전의 한 중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보았지만 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런데 그것이 바로 ‘나’의 실체를 아는 영역의 문제라면
너무 아쉽고 안타깝지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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