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에 깃든 석당(石堂) 최남주의 향기따라 <37>
무초 초대 주한 미국대사 신라금관 보며 “원더풀” 환호
서라벌신문 기자 / 2024년 0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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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 최 정 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 |
정부수립과 경주고적보존회
1948년 정부수립 당시 국가재정이 열악하여 관장을 포함한 5명의 경주박물관 직원들은 초박봉의 생활고에 쪼달렸다. 그래서 어떤 직원은 경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테라코다로 제작한 경주기념품을 팔아서 생활비를 벌어야만 하였다.
추운 겨울철에는 장작을 구입할 예산이 없어서 직원 모두가 박물관 숙직실 온돌방에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다못한 석당은 사재를 털어 장작을 구입하여 박물관 직원들과 함께 그해 겨울을 훈훈하게 지낼수 있었다.
석당 최남주가 경주고적보존회를 창립한 목적은 경주박물관이나 경주군청(당시) 자체 인력으로 경주 주변에 흩어진 신라문화유산들을 보호‧보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이를 보완하는 민간차원의 역할이었다.
또한 일제강점기부터 경주의 신라문화유산들의 분포지를 석당만큼 잘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
1949년 5월 14일 경주박물관을 방문한 초대 주한 미국대사 무초 일행. (왼쪽부터 최남주, 정현모 경북지사, 하경덕 코리아타임즈 회장, 무초 대사, 한사람 건너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
정부수립 이전 1948년 7월27일자 조선일보기사에도 석당 최남주의 이와같은 노력을 알 수가 있다. 대구영남일보 기사를 인용한 보도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사연구의 한 숙제로 되어있던 경주의 흥덕왕릉비석이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경주고적보존회 간사 최남주(崔南柱)이다. 최씨는 지난달부터 경주부근 각능묘(신라시대왕릉) 수호현상을 조사 중 동비석 파편 두 개를 그 부근 밭고랑에서 파내어 방금 경주박물관에 보관하였다. 비문 전부를 해독하기 어려우나 이 방면 연구에 상당히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고 한다. (중략) 아깝게 흥덕왕릉의 비석은 없어지고 그 귀부만이 남아 있을뿐으로 학계에서는 크게 궁금하게 여겨오던 것이다.”
석당의 헌신적 활동
석당은 1949년 경주를 방문한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에게 경주신라문화유산 보호보존 대책을 세워줄 것을 건의하였다.
마침 수행한 문화국장이 경북 영양출신 조근영(조지훈 시인 큰아버지)이라 예전부터 석당과 친분이 있어서 그후 지속적인 건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대한민국 전체 문화유산 담당을 ‘문교부 문화국 교도과’란 일개 과에서 담당하였다. 석당의 이러한 신라문화유산보존의 집념이 오늘날 경주의 신라문화유산을 제도적으로 지킬수 있는 한줌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8‧15해방과 정부수립 이후 경주에는 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이 많이 방문하여 신라의 얼과 문화예술을 흠향하고 돌아갔다. 그밖에 미국과 유럽의 유명외국인사들의 방문도 빼놓을 수 없다.
1949년 5월 14일 초대 주한미국대사인 존 조지프 무초(1900~1989)가 정현모 경북도지사(1893~1965), 손원일 해군참모총장(1909~1980) 등과 함께 정부수립이후 처음으로 최고 귀빈자격으로 경주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이때 통역으로 한국사회학의 선구자인 하경덕(1897~1951 하버드대 사회학박사) 코리아타임즈 회장이 함께 했다. 무초 대사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최측근 외교관이었다.
특히 그는 트루먼 독트린 발표에 의해 동서냉전 시기 대한민국정부 이승만 대통령과 한미동맹의 가교역할을 한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무초 대사는 1920년대 중국상하이 미국영사관에 근무한 관계로 동양미에 조예가 깊었다.
금관총 금관 아름다움에 감탄
그는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금관총에서 발굴된 찬란한 신라금관을 참관하면서 원더풀을 연신 환호하였다. 무초 대사는 통역인 하경덕 박사를 통해 석당 최남주에게 이 황금 보관이 어떻게 발굴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질문을 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겪은 동아시아의 조용한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화려한 신라의 황금문명 역사가 있었다는데 무초 대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날 만찬은 교리 최부잣집에서 한국전통음식으로 즐겼고, 불국사 철도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일찍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일출과 함께 신라석조 예술의 아름다움에 경배하고 경주를 떠났다. 후일 무초 대사는 한국 근무시절 경주방문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회상하였다.
석당은 1949년 경주를 방문한 안호상 초대 문교부장관에게 경주신라문화유산 보호보존 대책을 세워줄 것을 건의하였다.
마침 수행한 문화국장이 경북 영양출신 조근영(조지훈 시인 큰아버지)이라 예전부터 석당과 친분이 있어서 그후 지속적인 건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대한민국 전체 문화유산 담당을 ‘문교부 문화국 교도과’란 일개 과에서 담당하였다. 석당의 이러한 신라문화유산보존의 집념이 오늘날 경주의 신라문화유산을 제도적으로 지킬수 있는 한줌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8‧15해방과 정부수립 이후 경주에는 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이 많이 방문하여 신라의 얼과 문화예술을 흠향하고 돌아갔다. 그밖에 미국과 유럽의 유명외국인사들의 방문도 빼놓을 수 없다.
1949년 5월 14일 초대 주한미국대사인 존 조지프 무초(1900~1989)가 정현모 경북도지사(1893~1965), 손원일 해군참모총장(1909~1980) 등과 함께 정부수립이후 처음으로 최고 귀빈자격으로 경주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이때 통역으로 한국사회학의 선구자인 하경덕(1897~1951 하버드대 사회학박사) 코리아타임즈 회장이 함께 했다. 무초 대사는 이탈리아 태생으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최측근 외교관이었다.
특히 그는 트루먼 독트린 발표에 의해 동서냉전 시기 대한민국정부 이승만 대통령과 한미동맹의 가교역할을 한 역사적인 인물이었다. 무초 대사는 1920년대 중국상하이 미국영사관에 근무한 관계로 동양미에 조예가 깊었다.
금관총 금관 아름다움에 감탄
그는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금관총에서 발굴된 찬란한 신라금관을 참관하면서 원더풀을 연신 환호하였다. 무초 대사는 통역인 하경덕 박사를 통해 석당 최남주에게 이 황금 보관이 어떻게 발굴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질문을 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겪은 동아시아의 조용한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화려한 신라의 황금문명 역사가 있었다는데 무초 대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날 만찬은 교리 최부잣집에서 한국전통음식으로 즐겼고, 불국사 철도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일찍 불국사와 석굴암에서 일출과 함께 신라석조 예술의 아름다움에 경배하고 경주를 떠났다. 후일 무초 대사는 한국 근무시절 경주방문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회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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