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31일
골프공에 딤플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대부분 몸체가
유선형이고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비행기의 표면이 울퉁불퉁하면 더 많은
공기 저항을 받는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일 것입니다.
비단 하늘을 나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도록 만든 것들은
대부분 매끈한 표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 더 멀리 날려 보낼 목적으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표면에 수많은
울퉁불퉁한 굴곡이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골프공입니다.
골프공에는 '딤플'이라는 수많은
울퉁불퉁한 굴곡이 있습니다.
초창기의 골프공은 표면이 매끄러웠습니다.
공기저항을 줄여야 더 멀리 날아가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은 골프공의 표면에
딤플을 만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 딤플이
회전하며 날아가는 골프공 주변의 공기 흐름을,
골프공이 더 멀리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내 삶에 갑자기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살면서 누구도 고난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끄러운 골프공보다
울퉁불퉁한 골프공이 더 멀리 날아가듯이
자신의 고난과 상처를 받아들이고 극복하고
그것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더 멀리
도약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항상 맑으면 사막이 된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야만 비옥한 땅이 된다.
– 스페인 속담 –
2019년 8월 29일
전설이 된 사나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미국의 멀리뛰기 선수 '밥 비먼'이 트랙에 올랐습니다.
그는 결선 첫 점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비먼은 올림픽 결선에 오를 정도의 실력은 있었으나
그렇다고 금메달 유망주는 아니었습니다.
금메달이 유력한 비먼의 경쟁자들은
동료였던 1960년 금메달리스트 '랄프 보스턴'과
러시아의 자랑인 '이고르 테르-오바네시안'
정도로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올림픽 예선에서 두 번이나 무효 판정을 받았던
비먼의 최고 기록 8.33미터로는 그들과
경쟁하기에 많이 부족했습니다.
세계 최고 무대인 올림픽인지라 압박감이 가슴을 짓누르고,
자신의 실력을 100퍼센트 발휘할 수 있을지 몰라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초조하게 서 있는 비먼에게 그의 동료였던
랄프 보스턴이 다가가서 귓속말로
'어떤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보스턴의 이야기에 눈빛이 달라진 비먼은
망설임 없이 멀리 뛰기를 위해
힘차게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비먼이 점프하고 내려오는 순간,
경기장에는 경악에 찬 침묵만이 감돌았습니다.
비먼이 측정기의 측정 한계를 훨씬 벗어나
착지했기 때문입니다.
심판들이 구식 줄자를 가져와 기록을 재어보니
비먼의 기록은 무려 8.90미터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은 그때로부터 무려 23년이 지나서야
깨질 만큼 경이적인 것으로, 20세기의 스포츠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5가지 장면 중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비먼이 이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어 내기 전
두려움에 압도당해 망설이고만 있을 때,
보스턴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당시 보스턴은 비먼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공중으로 최대한 빨리 뛰어올라.
지금 너의 다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하고
이 순간 너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우며
너의 마음엔 날개가 달려 있어.
비먼, 그것을 이용해 지금
힘껏 날아오르라고!"
그날 밥 비먼에게 랄프 보스턴이 했던 이야기는
한계가 아닌 잠재력을 깨우는 마법 같은
주문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자신에게 말합니다.
'그래,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어.'
'여기까지 한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인 거야'
오늘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노력과 열정을 제한하고 자신을 옥죄는
덫이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생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면 공감 댓글을 남겨주세요.
20분을 선정하여 '수영장의 바닥'을
선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많은 사람이 사고와 행동, 결과의 제약을 닫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정한 한계를 절대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 존 맥스웰 –
2019년 8월 27일
아이는 햄버거를 남겼습니다
얼마 전 필리핀에서 한 남자가
패스트푸드 체인점 '졸리비'에서 햄버거를 주문했습니다.
드시고 갈지 포장해 갈지 묻는 점원에게
여기서 먹고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남자에게 다른 일행은 없었는데
아무리 건장한 남자라도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햄버거를 주문하는 것입니다.
점원은 반신반의하며 주문받은 대로
많은 양의 햄버거를 남자 손님에게
내어 드렸습니다.
햄버거를 받은 남자는 자리에 앉더니
가게 밖에 서 있던 누군가를 향해 손짓했습니다.
밖에는 맨발에 해진 옷차림인 아이 세 명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남자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쭈뼛쭈뼛 매장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남자는 햄버거의 포장을 하나하나 뜯어주면서
아이들에게 먹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기쁘게 햄버거를 들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 중 한 명이 자신의 앞에 놓인
햄버거 포장 뚜껑을 조심스레 덮었습니다.
남자는 움찔 놀랐습니다.
'혹시 자신의 행동이 아이에게 동정심으로 보여
상처를 줬나 걱정을 했습니다.'
긴장한 남자가 아이에게 먹지 않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아이는 집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함께 나누어 먹고 싶다면서
먹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 아이에게,
엄마에게 가져갈 햄버거를 하나 더 사주었습니다.
그렇게 남자와 모든 아이들이 훈훈하고
행복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옆 테이블에서 계속 지켜본
필리핀에 거주하는 '파트리샤 카필란'이
자신의 SNS를 통해 사연을
공유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동사무소 복지과 직원분이 저희 집 형편을
보다 자세히 조사하여 도움을 주려는
가정 탐방이었습니다.
장애가 있던 아버지는 평범한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저에게 '아버지 어디 가셨니?'라는 물음에
저는 순간 거짓말을 말했습니다.
"아버지 회사 나가셨는데요."
그때는 가난보다 자존심이 무너지는 게
어린 마음에 너무도 싫었나 봅니다.
지난 5년 동안 따뜻한 하루를 운영하면서
정말 초심을 잃지 않고,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함께 꿈꾸기 위해 끊임없이 채찍질했으며
어린 시절 제가 느꼈던 아픈 자존심을
다른 이웃들이 느끼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앞으로도
진심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오는 배려다.
– 메난드로스 –
2019년 8월 26일
그렝이질 기법
흙바닥 위에 세운 기둥은 상식적으로
깨지고, 썩고, 미끄러워지기가 쉽습니다.
당연히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옛 시절 집을 지을 때는
기둥 밑에 주춧돌을 받쳐 놓고
집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에서 얻는 다양한 돌들의 모양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기 마련입니다.
톱과 대패를 이용해서 만든 나무 기둥의
단면은 평평해집니다.
그러면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기 위해서
단단한 돌을 어렵게 평평하게 깎는 것보다
옛 장인들은 더 깎기 쉬운 나무 기둥의 단면을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과 꼭 맞도록
깎아내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주춧돌의 표면과 나무 기둥이
꼭 맞도록, 기둥의 단면을 깎아내는 것을
'그렝이질'이라고 합니다.
그렝이질이 잘된 기둥은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단단하고 꼿꼿하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났을 때
주춧돌이 매끈한 돌이라면 기둥이 밀려갈 수 있지만,
한옥의 경우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서 있어서
쉽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울퉁불퉁한 면이
기둥을 안전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강한 제주의 돌담들이 밀리지 않는 이유는
다르게 생긴 돌들끼리 아귀를 맞추기 때문에
서로를 자연스레 잡아주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개의 것이 만날 때
하나의 모양이 거칠고 울퉁불퉁해도
다른 하나의 모양이 그 거친 모양에 맞추어
감싸 줄 수 있다면 그 둘의 만남은
세상 무엇보다 더 견고한 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사람의 마음이
울퉁불퉁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피하고 미워하려고만 하기보다는
그 마음에 어떻게 맞추어 줄 수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 오늘의 명언
타고난 구조물에 더 저장해야 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 랠프 월도 에머슨 -
2019년 8월 23일
가냘픈 한 여인이 물에 떠 있는
둥근 바위 위에 위태롭게 앉아 있습니다.
동그란 바위는 불안정합니다.
여인의 눈은 흰 천으로 가려졌고
몸은 한 줄밖에 남지 않은 수금 같은 악기에
맨발로 간신히 기대고 있습니다.
여인이 앉아 있는 곳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위태로워 보였고 드러나 있는 왼발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오른쪽 종아리를
감아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앞을 전혀 볼 수 없으니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여인이 애처로운 머리를 기대고 있는 악기에는
소리를 낼 수 있는 현이 한 가닥만 남아있습니다.
여인은 한 줄만 남은 현을 달래듯
악기를 연주합니다.
모든 상황이 마치 절망을 묘사한 듯
음울하고 너무도 처절합니다.
19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미술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1817~1904)의 작품인
이 그림의 제목은 '희망'입니다.
의붓딸이 죽은 뒤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작업한 '희망'은 바로 그런 관점을
응축한 대표적 작품입니다.
작가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단 하나의 코드로라도 연주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가
상자를 열었을 때 그 상자에서
수많은 고통과 절망이 쏟아져 나왔지만
마지막까지 희망은 상자 안에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희망'이라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여인의 어깨 위로 희미한 별 하나가
흐릿하지만 있습니다.
희망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어두운 절망 속에 있는 슬픔의 한 자락에서
찬란한 희망은 다가옵니다.
# 오늘의 명언
구름 뒤에는 항상 빛이 존재한다.
- 루이자 메이 알코트 -
2019년 8월 22일
코브라 효과
피리를 불면서 독사를 현혹하는 뱀 쇼가
사람들에게 재미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 뱀을 숲에서 만나게 된다면
어느 사람도 재미있어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과거 영국 지배하에 있었던 인도에서는
코브라에게 물려 죽거나 다치는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코브라를 잡아 오면 보상금을 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독사를 잡는 일은 매우 위험하지만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너나없이
코브라를 잡아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많은 보상금을 세금으로 처리해야 했지만
정책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코브라가 많이 사라져
인명피해가 줄어든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이상했습니다.
거리의 코브라가 줄어들어 인명피해는 줄어들었는데
코브라를 잡아 와 보상금을 받아 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느낀 관계자들은
보상금을 받는 사람들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그 사람들은
인도 델리 곳곳에 코브라 농장을 만들어
코브라를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힘들고 위험하게 거리의 코브라를 잡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기른 코브라로 안전하게 보상금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코브라 농장이 곳곳에서
계속 발견되어 결국 코브라 보상금 제도를
폐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쓸모없어진 코브라를
야산에 무단으로 버렸고, 결과적으로 더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오히려 문제가 더욱 악화하는 결과를 낳는 현상을
경제 용어로 '코브라 효과'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한 결과가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대의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신중하되 천천히 하라.
빨리 뛰는 것이야말로 넘어지는 것이다.
- 셰익스피어 -
2019년 8월 19일
감정가 0원
KBS TV쇼 진품명품.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진품, 명품을 발굴해
전문 감정위원의 시선으로 진가를 확인하는
감정 프로그램입니다.
때로는 창고 안에 방치되어 굴러다니던
족자가 대단한 보물로 밝혀지기도 하고,
집안 대대로 내려온 도자기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출품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지난 8월 11일, 1944년 전후 작성된
회고록 한 점이 진품명품에 출품되었습니다.
회고록 작성 당시 상황이 열악했는지
비싼 원고지가 아닌 당시에 쓰인 세금계산서 용지에
작성된 회고록이었습니다.
얼핏 초라해 보이는 이 회고록의 출품자는
희망 감정가로 10만 815원을 적어서 내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감정가는 모두를 더욱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0원'
전광판에 나온 '0'이라는 글씨는
이 회고록에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황하는 사람들 가운데 회고록을
감정한 전문가가 결연하게 말했습니다.
"이 기록이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나라를 잃은 많은 애국자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분들의 행적을 감히 돈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해
감정가를 추산할 수 없습니다."
이 회고록은 일제 강점기 만주 지역 항일
무장투쟁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이규채 선생님이
자필로 적은 일명 '이규채 연보'였습니다.
이규채 선생님의 증손자인 출품자 이상옥 씨가
100,815원을 적어낸 이유는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100과
광복절을 의미하는 8.15를 뜻하는
숫자로 조합한 것입니다.
1932년 9월 만주에서 활약하던 한국 독립군과
중국인들로 구성된 항일 의용군의 '쌍성보 전투'를 회고하고,
독립운동가의 재판기록도 작성된 이 회고록에
그 어떤 전문가라도 가격을 매기는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날 의뢰품을 들고 나온 이상옥 씨는
증조할아버지와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도록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독립된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피와 눈물로 싸워주신 그분들의
투쟁과 의지와 역사가 바로 그 보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0원짜리 보물을
남겨 주신 모든 독립투사 분들에게
경의와 존경과 감사를 바칩니다.
# 오늘의 명언
2,000만 민중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하기 전까지 독립운동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 이규채 -
KBS TV쇼 진품명품에 한 기록물이 등장을 한다
그것은 독립운동가 '이규채'선생이 일제 말기 자필로 적은 '이규채연보'였다
이 기록물에는 1944년 전후에 쓴 것으로 추정이 된는데
자신의 힘겨운 독립운동의 여정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 기록물은 한 상점의 세금 계산서에 작성이 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이 회고록은 독립운동가 이규채 선생의 자서전 습작 연고였다
서예. 고서 감정위원 김영복선생은 '이 기록이 한사람의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자신의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라 감정가 추정을 할 수 없으며 이분들의 행적이 우리를 있게 했으며 이는 돈으로 평가를 할 수 없다 이 기록물을 통해 불꽃처럼 살아갔던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미래에 알려주는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하기에 0원으로 책정을 했다 라 하였다
이 회고록은 독립운동가들의 생애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동안 공개됐던 내용중 가장 정확하다는 '평가할 정도로 높은 가치가 있어 보이며 김구선생의 백범일지보다 독립운동에 대해 상세하게 적혀 있다고 전했다
감정위원은 역사적 기록과 사실관계가 다른 내용이 거의 없었으며 역사적 사료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규채선생은 1932년 9월에 있었던 '쌍성보 전투"를 회고하였다
"임신년 1932년 하오에 드디어 쌍성의 성 아래에 도달하였는데 날이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으며 달빛이 은은하게 비쳤다.
독립군들은 서쪽 문으로부터 돌격해 들어가 성을 격파하였다" 하오..: 12시부터 24시
'새벽녘이 되어서야 왼쪽 손에 총을 맞아 부상을 당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곁에 있던 사람이 먼저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이규채 연보에는 독립운동 당시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이 연보에는 이규채선생의 재판기록도 적혀 있었다
"을해년 1935년 재판중 또 묻기를 자녀가 셋이나 있는데 그들 역시 생각하지 않는가? 라고 하기에 내가 답하기를
나에게 노모가 계시는데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어찌 자녀를 염두에 두겠는가? 많은 말을 할 필요 없이 단지. 우리 강산만 돌려주면 그만이다' 라고 하였다
"계유년 1933년 중국에 도착해 남루한 옷을 걸치고 한 발을끌며 반벙어리 행세를 했다. 돈을 구걸하며 신분을 숨겼다. 등 독립운동을 하면서 겪었던 위기 상황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3.1운동 당시 창신서화연구회를 창설하여 항일 투쟁을 전개한 후 상하이로 망명하였고
1924년 임시정부 의정원이 되었다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 창설에 참여를 하여 참도장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당시 민족주의자였던 이규채 선생은 공산주의자와의 갈등으로 하얼빈 인근 영통산에 생매장을 당했다가 구사일생으로 구칠되기도 했다
1932년 만주 쌍성보 전투에 참전 한국독립당 총무위원장이며 한국독립군 참모장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33년 베이징 한국독립당 회의에서 일제의 회유에 넘어갔다는 의심을 받고 사형 위기에 놓인다. 동료들의 변론으로 사형을 면하게 되지만 무기한 당권을 정지당한다
1934년 상하이와 만주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다 중국 상해에서 체포가 되어 6년의 수감을 하였다
체포가 된 이휴에는 일본 총영사에게 '2000만 민중의 마음을 귀순시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라 며 2000만 민중이 한사람도 남지 않고 죽임을 당하기 전가지는 독립운동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 당당히 말하였다
이 이규채 연보에는 모두 54쪽으로 가석방후 포천의 동네가게 '김수명 상점'에서 갱지와 습자지로 된 계산서를 빌려 적었다
1890년 6월7일 자시에 태어나다로 시작을 한 연보는 가족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가움의 표현으로 끝난다.. '아내 이씨가 우리집으로 시집을 온지는 26년이 되었다 이씨는 나와 멀리 헤어지고서 두 아들과 한딸을 거느리고 살았다. 초근목피로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것은 하루 이틀에 불과 할 뿐이었다. 다섯살 난 아이가 수시로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은 빈 젖을 불려서 달랠 수 있지만 여덟 살 난 아이가 배고프다고 우는 소리는 차마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회유로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끊임없이 내부 첩자를 의심하고 감시해야 했던 상황이 상세히 기록이 되어 있다
이 연보가 일제에 압수를 우려한 선생은 김좌진. 이승만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인명이나 공산당 등의 단체명을 명확하게 표기하지 않고 '공란으로 비워 놓기도 했다
1932년 9월 하얼빈의 남쪽 쌍성보는 만주의 경제적 요충지로 1년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제가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만주에서 활약을 하던 한국 독립군 3천명과 중국군 2만5천명으로 구성이 되었던 '항일 의용군'이 일본군과 만주군에 맞서 싸운 전투로
이 전투에 승리를 해 쌍성보를 점령하고 많은 물자를 토획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중국군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 일시적으로 혼란에 빠져 쌍성보는 다시 일본군에게 빼았긴다
전열을 재정비한 연합군은 11월 쌍성보를 다시 공격 일본을 섬멸하고 만주군 전원을 생포한다
계속 되는 전투에 일본 주력부대와 만주군의 반격에 밀려 쌍성보를 포기하며 후퇴를 한다
이 전투 후 한중 양민족의 공동전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9년 8월 17일
남편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경상도 남자이며,
토목 설계를 전공해서 평생 건축회사에서만
근무했습니다.
남편은 남들이 말하는 무뚝뚝한 조건을
모조리 갖추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결혼한 후, 태어난 첫째 아들을 보며
힘들어하는 나에게 남편이 처음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이제 나의 어깨가 무거워지겠군."
그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기합을 넣고
다시 힘내는 그런 남자입니다.
양지바른 곳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 같은 남편의 모습은 저와 아들에게
언제나 든든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저녁
심각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만약에 지금 일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기면
월급은 지금보다 많이 적을 텐데
그래도 우리 괜찮을까?"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무뚝뚝하고 단단한 경상도 남자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누구보다 잘 웃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사람 관계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참고 견뎠을까요.
그 마음을 잘 알기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그만두고
나도 같이 벌면 된다고 남편에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니다. 그래도 우리 아들 생각하면서
조금 더 견디련다."
그날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잠든 남편의
손을 잡고 저는 울었습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말이나 글로 전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얼마든지
서로를 이해 할수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행복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거지.
- 윌리엄 셰익스피어 -
2019년 8월 16일
글자를 몰라서 군에 간 남편에게 편지 한 장 못했다고,
그래도 할머니는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긴 했습니다.
봉투 안에 편지지 대신 김을 넣어서요.
스물둘에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이 군인이었는데 가난한 형편을 벗어나고자
월남 파병을 떠났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편지를 보내야 할 텐데
글을 모르니, 생각다 못해 김을 석 장씩
넣어서 붙였다고 합니다.
할머니께 여쭤봤습니다.
"왜 하필이면 김인가요?
차라리 그림이라도 그려 보내시지?"
할머니는 정말로 생각도 못 한 대답을 했습니다.
"김은 밥을 싸 먹을 수 있으니..."
머나먼 타국, 뜨거운 전쟁터에 있는 남편에게
아내는 편지 봉투 속에 사연 대신 김을 보냈습니다.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보냈습니다.
다시 할머니께 여쭤봤습니다.
"그럼, 왜 하필 석 장씩을?
한꺼번에 좀 많이 보내시면 되죠."
그랬더니 순박한 할머니가 다시 말했습니다.
"넉 장을 넣어봤더니 무게 때문에
요금이 많이 나와서."
주소는 다행히 한글 주소가 아니라서
우체국 직원한테 부탁했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둘둘 말은 긴 김밥을 손에 들고 서 있는,
낡고 빛바랜 남편의 흑백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남편분은 아내가 날마다 보내준 김 석 장,
그 사랑으로 무덥고도 무서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가난으로 배우지 못했던 한을 벗어나고자
팔순이 넘은 할머니는 한글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남편에게 편지를 써 줄 수 있는데
사랑하던 남편은 이제 곁에 없습니다.
모두 늦은 나이라고 했지만,
글을 익히고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어르신들의 노력과 감동이
녹아있는 책입니다.
# 오늘의 명언
그대가 내일 죽는 것처럼 살아라.
그대가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 마하트마 간디 -
2019년 8월 12일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녀는 뻐드렁니 때문에 놀림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8살 때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이후에도 불행은 멈추지 않았는데
그녀가 9살 때에는 남동생이 죽고
다음 해에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되어버린 어린 소녀는
어렵게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을 가졌습니다.
여섯 명의 자식 중 한 명이 요절했을 때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랑해줘야 할 아이가 아직 다섯이나 있어.'
그녀의 남편이 아직 한창 젊은 39살의 나이에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타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편을 끝없이 독려하고 현명하게 내조하여
남편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의 부인이며,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영부인입니다.
당신의 좌절은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절망은 다른 사람이
건네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좌절과 절망을 만들지 않는다면
외부에서 달려드는 그 어떤 어려움도
우리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잠시 어려움에 빠져 있지만
우리는 과거 여러 차례 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도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 순간도 분명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미래는 자신이 가진 꿈의 아름다움을 믿는 자의 것이다.
- 안나 엘리너 루스벨트 -
2019년 8월 10일
미국의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열일곱 자녀 중
열다섯째로 태어나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평소 아버지에게 주의를 들었음에도
한참 다른 생각을 하다가 방 문지방에 머리를
크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아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아들아 머리가 아프겠지만 오늘의 아픔을 잊지 않고
항상 머리를 낮추고 허리를 굽히며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프랭클린은 아버지의 말을 교훈 삼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평생 동안 마음에 새긴 교훈은
바로 '겸손'이었습니다.
몽골의 전통 가옥 '게르'는 문이 낮아 들어갈 때는
겸손하게 허리를 굽혀서 들어가야 합니다.
상대의 집에 갈 때는 사이가 좋든 나쁘든
고개를 숙인 채 겸손한 마음으로
방문하라는 의미입니다.
살면서 내가 먼저 낮아지고 내가 먼저 굽히는 것...
그것이 원만한 인간관계의 비결이며,
진짜 이기는 길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작아 보일 뿐이다.
– 프레드리히 니체 –
2019년 8월 9일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
11살 소녀 줄리엣 제니퍼 존스는
걱정이 너무 많습니다.
매일 언니를 괴롭히는 동생 오필리아.
엉뚱한 아빠, 일에 빠져 사는 엄마의 부부싸움.
가장 친한 친구이지만 줄리엣이
새 친구와 사귀는 걸 꺼리는 린지.
용감하고 예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남의 물건을 만지는 젬마.
사사건건 쫓아다니며 줄리엣을 괴롭히는
최악의 걱정 1호 휴 알렌.
그런데 줄리엣이 걱정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당당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소심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두 분이 이혼할까 봐 걱정합니다.
말괄량이 동생이 줄리엣을 놀릴 때도
그저 피하기만 할 뿐 동생을 혼내지 못합니다.
자기까지 불만을 말하고 짜증을 내면
오히려 관계가 더 나빠질 수도 있는 것을
겁내고 있습니다.
이때 줄리엣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해결사가 있습니다.
바로 걱정을 들어주고 돌봐주는 '걱정나무'입니다.
줄리엣은 매일 잠자기 전 걱정나무의 가지에 앉아 있는
동물들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고민을 털어놓고
자신의 걱정들을 가지에 걸어놓습니다.
그러면 걱정나무의 동물들은 줄리엣의 고민을
묵묵히 들어주고 이 과정에서 줄리엣은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하나씩 문제들을 해결해 나갑니다.
이젠 화를 내야 할 때는 화를 내고
의견을 말해야 할 때 분명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멋진 아이가 된 것입니다.
호주 작가 '마리안느 머스그로브'의 동화
'걱정을 걸어두는 나무'의 내용입니다.
자기 안에 가두어 둔 걱정은
그냥 내버려 두면 절대로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작은 근심이든 큰 슬픔이든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계속 움직이지만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 월 로저스 –
2019년 8월 8일
특별한 능력자가 아닌데도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심리학과 존 고트먼 교수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고트먼 교수는 부부의 대화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그 부부가 5년 안에 불행하게 이혼하게 될지,
아니면 행복한 부부생활을 유지할 것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고트먼 교수가 예측해서 말한 이혼 적중률은
놀랍게도 95% 이상입니다.
그런데 그 원리는 정말 간단합니다.
고트먼 교수는 700쌍의 부부의 대화를 조사했습니다.
10년간의 연구 끝에 고트먼 교수는 이혼율이
'칭찬과 비난의 비율'에 있다고 했습니다.
대화 중에 칭찬과 비난이 '5대 1' 정도인 부부는
10년 뒤에도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비율 차이가 심한 부부들은 이혼하거나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트먼 교수는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부부생활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면
배우자에게 자주 칭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무조건적인 칭찬만 하기보다는 사랑이 동반된 조언을
함께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올바른 지도와 반성
그리고 지속해서 확인하는 서로의 사랑으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
다섯 번 칭찬하고 한 번 조언해보세요.
그런데 가장 먼저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해보세요.
5대 1의 법칙은 부부나 타인에게만 통하는
법칙은 아닐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충고는 비밀스럽게 칭찬은 공개적으로 하라.
– 푸블리우스 시루스 –
2019년 8월 6일
모건 원더랜드
12살 여자아이 모건은 처음으로 수영장에
놀러 가 부모와 함께 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즐겁게 놀던 다른 아이들이
수영장에 들어온 모건을 보고 하나둘
물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모건은 자폐와 인지 장애가 있어 한눈에 봐도
장애인임을 알 수 있는 아이였습니다.
장애인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이 놀라
함께 물속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 모건과 같은 수영장에 몸을 담그는 것조차
꺼리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 모건의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빠 고든과 엄마 매기는 이 일을 계기로
딸처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해서
놀이공원을 만들 것을 결심합니다.
그렇게 전 재산을 투자하고 10년을 노력하여
2010년 샌안토니오에 장애인을 위한 테마파크
'모건 원더랜드'를 개장했습니다.
이후 모건 원더랜드는 전 세계 67개국에서
총 100만 명 이상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입장료는 무료이고,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설비를 운영하고 있어 한 해 적자만
100만 달러에 달했지만, 부족한 돈은
후원자들의 채워주고 있습니다.
모건 원더랜드를 개장한 고든 씨는
또 다른 장애아동의 아버지가 전해준 말을 듣고
바로 그러한 마음 한 조각이 그의 삶을 지탱 시켜 왔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은 지금껏 수영장에서
한 번도 논 적이 없었어요.
당신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가질 수 있게 됐어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직접 그 아픔을 경험하지 않아도
그 고통을 상상할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고
공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누고 함께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아름다운 특징입니다.
# 오늘의 명언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 헬렌 켈러 –
2019년 8월 6일
청산도 슈바이처
전라남도 완도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을 가면
'청산도'라는 섬에 '푸른뫼중앙의원' 병원이 있습니다.
이 병원의 의사는 아침 7시 40분부터 진료를 시작합니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섬 주민들의
바쁜 일정 때문입니다.
의사는 하루 평균 120명의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자정이 넘어 병원으로 집으로 찾아오는
환자들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청산도 근처에는 병원이 없는 작은 섬들이 많습니다.
보통은 병원을 찾아 환자들이 오는 것이 맞지만
의사는 인근 섬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
무료 진료를 해주고 있습니다.
섬에 있는 노인분들이 움직이기 힘드니
의사가 섬을 오가며 진료를 해 줄 수도 있지만
청산도 유일의 이강안 의사 또한
이미 83세의 노인이었습니다.
"한두 해 정도만 봉사활동을 하다가
돌아가려 했는데 어느덧 16년이 되어가네요.
이젠 죽을 때까지 여기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지낼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1962년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잠실병원 부원장, 혜민병원 원장을 거쳐
1993년 서울에서 이강안 의원을 개원해
10년간 잘 운영해 왔습니다.
그런데 청산도라는 오지의 병원에
근무할 의사가 없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단둘이 청산도로 내려와
의술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이강안 선생님은 머나먼 섬으로 자신을 따라와 준
아내에게 고마움과 함께 미안한 마음뿐이고
헌신적으로 함께 일하는 병원 직원들에게는
많은 급여를 주지 못해 미안해합니다.
또한 본인의 사비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는 쌀과 고기를 지원하고
청소년들에게는 장학금을 주며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서는 매년 경로잔치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청산도와 주변 섬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선생님을 '청산도 슈바이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다른 사람들보다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작부터 잘못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앞에서
그들을 섬기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높이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종의 마음을 가진
은혜의 사람들이다.
– 찰스 스윈돌 –
2019년 8월 2일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대학 입시 공부를 위한 학원 수강생들은
보통은 재수생, 삼수생이라고 해도
아직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풋풋한
청년들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그런 수강생들 가운데 70대 노인이 한 분 계셨습니다.
성성한 백발, 주름진 피부의 얼굴로 입시학원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계셨습니다.
알파벳도 제대로 모르는 노인이었습니다.
느린 걸음처럼 이해도 느리고 배움도 느렸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기 위해
매일 새벽같이 학원을 찾아왔습니다.
학원강사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공부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한의대에
합격하고 싶습니다."
강사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어린 학생 중에서 노인의 큰 포부에
당황하며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온
학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노력했고 한 해, 두 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수능이 끝난 뒤 어느 추운 겨울날
노인은 인절미가 든 봉투를 품에 안고
자신을 가르치던 강사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됐습니다. 한의대에 붙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는 노인의 모습에
강사 선생님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시장에서 막 만들어진
인절미 떡을 따뜻하게 전해주고 싶어서
품에 안고 왔던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는데
노인이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 등록은 하지 않을 겁니다."
노인이 그동안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는지
잘 아는 강사는 노인의 말에 당황했습니다.
강사는 왜 한의대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지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6.25 전쟁도, 보릿고개도 겪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자식들을 키워놓고 보니깐
지금껏 살면서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늦게라도 공부가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 한의대에 붙는 게 목표였지요.
이제 목표는 다 이루었고, 제가 대학에 등록하지 않으면
간절히 원하는 다른 학생이 나보다 더 멋진
한의사가 되어 줄 것입니다."
훌륭한 꿈을 가진 멋진 사람입니다.
역경에 노력하는 빛나는 사람입니다.
나이와 숫자에 굴하지 않는 강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미래와 후학을 생각하는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 오늘의 명언
가장 유능한 사람은 가장 배움에 힘쓰는 사람이다.
– 괴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