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자살 권하는 사회①] "내가 왜 죽었는지…" 자살동기 흘려듣는 사회

含閒 2011. 4. 20. 11:33

[자살 권하는 사회①] "내가 왜 죽었는지…" 자살동기 흘려듣는 사회

 

2011-04-18 11:00 대전CBS 김기사크게보기정남 기자

  • KAIST의 비극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수식어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하루 평균 42.2명. 하지만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지는 돌이켜볼 문제다. 오히려 단편적 조사와 '제각각' 대책 속에서 살릴 수도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대전CBS는 '죽음을 권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점과 대안 등을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시리즈 게재 순서
1. 통계조차 없는 '자살동기'…제각각 원인 분석에 대책 수립도 '막연'
2. 자살시도자 사실상 '방치'…'막을 수 있는' 자살도 못 막는 격
3.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정신적 지원책 없나
4. 형식적 상담·단순 홍보 도움 안돼…전문가 양성도 시급

잇따른 자살, 특히 한 사람의 자살이 불러오는 연쇄·모방자살의 도미노가 무섭다.

구체적인 원인을 규명하고 그에 맞는 예방대책을 세워 유사한 자살을 막는 작업이 무엇보다 시급한 이유다. 하지만 실상 '쓸 만한' 자살원인 통계 하나 없는 것이 현실이다.

◈ '자살원인' 통계는 어디에

충남 서산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휴학생 A군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달 24일.

숨진 A군의 지갑에서는 자살징후를 알아보는 체크리스트가 발견됐고, 유족들은 "지난해 제대한 뒤 늘 집안에만 있었고 이유 없이 복학을 차일피일 미뤄왔다"고 말했다. 경찰은 A군이 제대 이후 사회적응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유의미한 '자료'로 남는 것은 '자살 1명'이라는 수적 통계뿐.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나온 A군의 자살동기는 '추정'이라는 이유로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로 기록되지 않는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의 역할은 타살 혐의점이 있는지 가려내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자살로 결론나면 그 선에서 수사를 종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선을 그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자살자 통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사망 시 제출하는 '사망신고서'를 기준으로 하는데, 자살원인에 대해서는 따로 자료를 수집하지 않다보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지역·연령대별 자살자 수가 전부다.

더욱이 자살을 '남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우리네 정서상 유족들이 사망원인조차 '자살' 대신 '병사' 등 다르게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담당자의 설명이다.

또 무연고자의 자살은 신고가 안 돼 통계에서도 제외되며, 가족단위 자살의 경우 1명만 자살로 처리되고 나머지는 살해 등 다르게 기록되기도 한다는 것. 자살동기에 대한 규명은커녕 자살사망자 수 집계마저 정확도가 떨어지는 실정이다.

◈ "기초자료조차 없어" 지역 기관들 '막막'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살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일선 기관의 답답함은 더해가고 있다. 개별 연구결과나 자살자 수 통계에만 의존해 '막연히' 대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

한 지역보건소 관계자는 "예방사업의 필요성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사실상 원인 분석을 위한 기초자료도 없는 상태"라며 "전문가들조차 우울증, 빈곤, 소외문제 등 대략적인 요인들만을 나열할 뿐이니 지역에 맞는 사업방향을 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자체적으로 자살가정을 방문하거나 자살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며 "지난 2009년에 나온 자살자 현황에 의존하고 있는데 최근 통계가 아니다보니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대도시에서는 전담기관을 통해 자체 조사가 이뤄지기도 하지만, 충남의 경우 관련 자료 수집과 연구를 각 지역 보건소에 딸린 정신보건센터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해당 업무 담당자가 시군별 1~3명에 불과해 대부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태
한 정신보건센터 담당자는 "겸직을 하다 보니 다른 업무만으로도 힘에 부쳐 지역에서의 자살 실태나 원인 분석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