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나 때문에 죽은 거 같아…" 따라가는 자살 유가족

含閒 2011. 4. 20. 11:28


"나 때문에 죽은 거 같아…" 따라가는 자살 유가족

노컷뉴스 | 입력 2011.04.20 06:03

 



[대전CBS 김정남 기자]

KAIST의 비극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수식어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하루 평균 42.2명. 하지만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서성이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지는 돌이켜볼 문제다. 오히려 단편적 조사와 '제각각' 대책 속에서 살릴 수도 있는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 넣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의 목소리가 높다. 대전CBS는 '죽음을 권하는' 우리 사회 속에서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점과 대안 등을 4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자살 권하는 사회' 시리즈 게재 순서

1. 통계조차 없는 '자살원인'…제각각 분석에 대책수립도 '막연'
2. 자살시도자 사실상 '방치'…'막을 수 있는' 자살도 못 막는 격
3.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정신적 지원책 없나
4. 형식적 상담·단순 홍보 도움 안돼…전문가 양성도 시급

자살 문제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부분은 바로 유가족과 주위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자살이 평균 6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유가족에 대한 치료와 사후관리는 이들의 정상적인 사회복귀를 돕고, 동시에 추가자살을 막는 '자살예방'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소홀히 다뤄져 온 것이 사실이다.

◈ "가족의 죽음은 내 잘못…" 연이은 '비극'

지난해 10월 숨진 채 발견된 A(46) 씨. 숨진 A씨의 곁에는 유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못난 자식도 같이 세상을 떠나렵니다…."

앞서 A씨의 일흔 살 노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8년 전 이혼한 뒤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고, 노모는 이런 아들 때문에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아들 역시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충북 청주에서도 승용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우고 목숨을 끊은 30대 남성이 발견됐다. 차안에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 등이 담긴 A4용지 4쪽 분량의 유서와 수면제 등이 발견됐다. 가족들에게는 '내 님이 있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련다. 편히 보내다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의 동생은 "형은 하루에 6시간 이상씩 형수가 있는 납골당을 찾았다"고 말했다. 남성의 아내는 3개월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성은 아내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을 줄곧 마음 아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3개월 동안 4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숨진 카이스트에서도 부쩍 이런 충격과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었다. 숨진 학생과 절친한 관계였다는 한 학생은 "친구가 생전에 '죽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을 좀 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것이 너무 후회가 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잠재적 자살자'는 바로 자살자의 유가족들이다. 한 사람의 자살은 유가족과 주위사람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직·간접적인 영향을 동반한다.

전문가들은 특히 "내가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유가족들의 죄책감을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임정수 가천의대 교수(예방의학)는 "바로 옆에서 자살하게 되면 주변사람들은 자살한 사람을 그동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섭섭함, 자신에 대한 분노와 연민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며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고, 심각하게는 모방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또 최근의 카이스트 사태에 대해서는 "자살의 전염성은 마치 '방사능에 노출된 것과 같이' 심각하다"며 "즉시 구성원들에 대한 심리적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행히 카이스트는 최근 숨진 학생들의 주변인들을 중심으로 치료·상담에 들어갔다.

◈ 현실은…"유가족 상담은커녕 접근도 어려워"

하지만 일선 기관에서는 자살 유가족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충남도내 한 상담센터 관계자는 "관내 자살사건이 발생해도 기관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다보니 추후에 '누구네가 어디서 자살했다더라' 하는 식으로 건너 듣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또 "유가족들이 만남 자체에 거부감을 많이 가지다보니 센터를 먼저 방문하지 않는 한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말 못할 속사정도 있었다. 이 관계자는 "개소한지 1년 남짓인데다 전 직원이 3명뿐이라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기는 시간상으로도, 예산으로도, 전문성 면에서도 어려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생명의전화는 지난 2009년 자살 유가족을 돕는 핫라인을 개설하고 사후예방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나섰지만 현재까지는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또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자살 문제가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지만, 시·군 단위 정신보건센터 등의 적극적인 대응은 아직까지 미미한 상태다.
jnkim@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