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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태극 유니폼 행복했습니다, 맨유 유니폼으로 보답하겠습니다’

含閒 2011. 2. 2. 11:36

 

박지성 ‘태극 유니폼 행복했습니다, 맨유 유니폼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중앙일보 | 최원창 | 입력 2011.02.01 00:07

 

 

[중앙일보 최원창.임현동]

'캡틴 박'이 태극 유니폼을 벗었다. 이제 '센트럴 파크'만 남았다.

 축구대표팀 주장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5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로 대표팀에서 은퇴했음을 밝힌다. 국가를 대표해 축구 선수로 살아온 건 무한한 영광이며 자랑이었다"고 말했다. 축구팬들은 이제 맨유의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만 볼 수 있다. 그는 잉글랜드 무대에서 '센트럴 파크'로 통한다.

박지성이 31일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축구대표팀 은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임현동 기자]

 박지성은 "아직 이른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 축구와 나를 위해서는 지금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성장할 수 있었듯이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은퇴 이유를 설명했다. 또 "부상(무릎)이 없었다면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대표선수 생활을 이어갔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은퇴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박지성은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 시절이었던 2003년 3월과 맨유에서 뛰던 2007년 4월 등 두 차례 수술받은 오른 무릎에 자주 물이 차올라 소속팀과 대표팀 생활을 병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박지성은 자신의 뒤를 이을 선수로 김보경(22·세레소 오사카)과 손흥민(19·함부르크)을 꼽았다. 앞으로 맨유에 전념하며 3~4년 정도 더 현역으로 뛸 생각이다. 그는 "비록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떠나지만 한국 축구에 보탬이 되는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고 각오를 말했다.

 10년9개월에 걸친 헌신이었다. 박지성은 명지대 2학년이던 2000년 4월 5일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지역예선이었다. 다치지 않는 한 국가의 부름을 거절한 적이 없는 그는 지난달 25일 일본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전에 출전함으로써 '센추리클럽(국가대항전 100경기 출전)'에 가입했다. 박지성이 뛴 100경기는 한국 축구의 역사다. 특히 2002년 월드컵에서 눈부시게 활약해 한국 축구의 첫 황금시대를 열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퍼뜨린 도전과 성취의 패러다임을 가장 정확히 받아들여 실천했다. 그럼으로써 성공을 이룩하고 우리 스포츠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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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달리기가 느리고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해도 축구장 안에서 누가 더 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외쳤다. 실패에 대한 공포도 이겨냈다. 2001년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2001년 8월 평가전에서 체코에 0-5로 져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은 히딩크가 '최후의 승리'를 믿었듯 박지성도 시련의 가치를 믿었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잉글랜드 맨유로 이적하자 '마케팅용'이라는 비아냥이 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헌신적이었고, 큰 승부에 강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명문 팀에서 의문의 여지 없는 주전 선수가 되었다.

 명성과 부를 동시에 거머쥐었지만 겸손했고, 스캔들도 없다. 기껏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스코리아와 결혼설' 정도다.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것은 자기절제와 관리 때문이다. 그는 "왜 골을 못 넣느냐는 비판에는 수십 가지 이유를 들어 반박할 수 있지만 왜 꾸준하지 못하느냐는 비판은 아프다"는 말을 즐겨 해왔다. 박지성은 불멸의 차범근과 함께 우리 축구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박주영(모나코)·기성용(셀틱)·이청용(볼턴) 등의 롤 모델이다.

Injury Time-미안합니다. 또 잊을 뻔 했습니다

미디어다음 | 입력 2011.02.01 12:47

 

 

(베스트일레븐)

2011년 1월 31일은 한국 축구사에 있어 오랫동안 회자 될 것 같습니다. 2000년 우리 곁에 다가왔던 한 위대한 축구 선수가 태극전사의 붉은 유니폼을 반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한참이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누비는 모습이야 볼 수 있겠지만, 캡틴 밴드를 차고 붉은 투혼을 발휘했던 박지성 선수의 모습을 볼 수 없음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운 탄식이 내뱉었습니다.

그래서 또 잊을 뻔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박지성 선수보다 먼저인 1999년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12년이란 세월 127번의 A매치를 끝으로 은퇴한 당신을 또 잊을 뻔 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워낙 별의 밝음만 좇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치부하기엔, 당신이 보여준 12년 세월 동안의 감사함은 결코 박지성 선수에 비해 가볍거나 덜하지 않습니다. 그런 당신이기에 고국도 아닌 먼 카타르에서 짧은 현지 기자회견을 끝으로 안녕을 고했던 우리들이 참 많이 미안합니다.

 

 당신은 행운아이면서도 불운아였습니다. 한국 축구가 가장 행복한 시기 전성기를 구가해 많은 혜택과 영광을 누렸지만, 그 옆에 박지성이란 또 다른 영웅의 존재로 인해 그리 많이 빛나지 못했습니다. 박지성 선수만큼 열심히 뛰었고 한결같았으며 든든했던 당신이지만 우리의 박수와 함성은 그에 합당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당신도 참 많은 일을 그리고 대단한 일들을 해냈는데 말입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 선수와 훈련 중 부상을 입어 본선 진출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도 밝게 웃으며 걱정하던 동료들을 안심시키던 모습, 2006년 월드컵에서는 팀을 위해 줄 곳 지켰던 왼쪽 대신 익숙하지 않은 오른쪽에서의 임무도 선뜻 받아들였던 모습,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 후 박지성 선수와 가진 맞대결에서 볼을 빼앗겨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뒤 그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않고 잡아주던 모습, 낯설고 어색했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생활도 단 한 마디의 잡음 없이 꼿꼿하게 해내고 있는 모습까지, 정말 10년 넘는 세월 당신은 축구와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도 열심히 뛰었습니다.

다시 돌이켜 꼽아보니 참 한결 같았습니다. 큰 부상도 없었고 말썽이나 부진도 없었습니다. 아마 한국 축구 역사상 당신처럼 꾸준히 그리고 성실히 축구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지 싶을 정돕니다. 그런 성실과 꾸준함이 당신에 대한 고마움을 잊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없으면 어색하고 이상한 존재가 바로 당신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 고마움을 쉽게 지나쳐 버렸나 봅니다.

왜 사랑하는 사람의 고마움은 그 사람이 떠나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이렇게 늦게야 그간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느끼게 됩니다. 지난 아시안컵 3-4위 결정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가 끝난 후 후배들이 당신을 헹가래치던 순간을 보고야 그간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몰려 왔으니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곤 금방 또 잊고 떠나는 박지성 선수에 대한 아쉬움에만 빠져 있어 또 한 번 미안합니다. 당신도 우리들을 향해 안녕을 고했는데 말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쉼 없이 달렸던 당신의 축구에 진심어린 경의와 무한한 존경을 표합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즐길 줄 알아야 그리고 한눈팔지 않고 성실할 줄 알아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교본이 되어 주신 것 또한 고맙습니다. 하늘이 준 재능보다 땅 위에서 일군 노력이 더 값지게 쓰일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 당신이 헌신한 12년 세월을 보고 자랄 후배들은 물론이고 일반인인 우리들도 그 한결같음과 성실함을 배워 각자의 자리에서 더 올곧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당신이 그라운드에서 쓰러지고 지치고 힘들어 준 덕분에 우리는 참 많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더는 당신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12년이란 시간들, 가슴 깊이 귀하게 간직하며 꺼내 보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차범근 해설위원 "박지성 은퇴…내 비겁함이 부끄럽다"

스포츠서울 | 입력 2011.02.01 11:09 | 수정 2011.02.01 16:09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나의 용기 없음이. 비겁함이 부끄럽습니다.'

차범근(58) 전 수원 감독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를 두고 절절한 자책의 글을 남겼다. 차 감독은 지난달 30일 호주와 일본의 2011 아시안컵 결승전 후 올린 글에서 축구계 선배로서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에 대한 소회와 한국축구의 힘든 현실. 이에 침묵했던 자신의 대한 반성을 담았다.

 

'지성이가 은퇴를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라고 운은 뗀 차 감독은 '환갑이 별로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습니다'라며 글을 시작했다. 박지성의 은퇴가 자신에게 '어렴풋한 미안함이 아니라 가슴 속에 뭔가가 콕 박혀 들어오는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라고 고백한 그는 박지성의 무릎에 물이 차는 것이 무릎을 너무 혹사시켰기 때문이라며 한국 유소년 축구의 가슴 아픈 현실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얘기했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유럽의 프로선수들처럼 무리하게 훈련하면 안 되는 문제점을. 초등학교 선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축구만 하는 나라. 10세도 안되는 선수들도 하루에 세번씩 훈련을 하는 현실. 정말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걱정스러웠습니다.'

차 감독은 이런 현실을 바꾸지 않으려 했다며 자책했다. '나는 아무 일도 적극적으로 바꾸려고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어린이축구교실을 만들어 즐겁게 축구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게 겨우 내가 한 일이었습니다. … 강력한 방법이 없이는 변화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나는 내가 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욕 먹고 싸우고 오해받고

 

자신이 오래 선수생활을 한 것은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축구를 정식으로 시작한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 그는 '어린 선수들이 그들의 신체적 한계를 넘어서기를 강요당하면서 축구를 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던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한탄한 뒤 '그동안 내가 한국축구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스스로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지성이의 은퇴는 나에게 묻습니다. "한국 축구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그래서? 후배들에게 해준 뭔데?" 나의 용기없음이. 비겁함이 부끄럽습니다'라는 통절한 자기 반성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한편 차 감독은 1일 오전 글을 삭제했다. 차 감독 측은 "아시안컵 결승전 뒤 안타까운 마음에서 글을 썼으나 속마음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 논란거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