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최치원 시 몇 수

含閒 2010. 10. 11. 16:32

최치원 시 모음

 

윤주의 자화사에 올라(登潤州慈和寺)

 

여기 올라 세상사 티끌 같은 일 잠시 접노니

흥망을 생각건대 한스러움만 더욱 이네

아침저녁 뿔나팔 속에 파도는 일렁이는데

옛 사람 오늘 사람 푸른 산 그림자에 묻혀 있구나

서리는 고운 가지 꺾고 꽃은 주인 없어도

따뜻한 바람 금릉 벌판 불어오니 풀은 저절로 봄을 이루네

사조(謝孺), 그대가 남긴 자취만 있어

후세의 시인 그나마 삽상한 마음 새롭게 하누나.

 

登潤州慈和寺

 

登臨暫隔路岐塵

吟想興亡恨益新

畵角聲中朝暮浪

靑山影裡古今人

霜催玉樹花無主

風暖金陵草自春

賴有謝家餘景在

長敎詩客爽精神

 

 

우강역정에서(芋江驛亭

 

모래강변에서 말 세우고

돌아오는 배를 기다리자니

안개가 두른 물결이 만고의 시름이구나

산이 평평해지고 물도 다 말려버린 그제야 세상사 이별은 그치려는가.

 

芋江驛亭

沙汀立馬待廻舟

一帶烟波萬古愁

直得山平兼水渴

人間離別始應休

 

 

어느 날 밤 악사에게 ( 夜贈樂官 )

 

사람의 일 잘 되다가도 스러지는 법

덧없는 인생 실로 슬플 수밖에

누가 알았으리, 궁중에서 듣던 가락

이 바닷가에 와 불게 될 줄

물가의 전각 꽃구경하는 곳이요

바람 드는 난간서 달과 마주한 때였는데

그 임금님 이젠 벌써 궂기셨으니

그대와 두 줄기 눈물만 흘리네.

 

人事盛還衰   浮生實可悲

誰知天上曲   來向海邊吹

水殿看花處   風囹對月時

攀髥今已矣   與爾淚雙垂

 

 

입산 ( 入山

 

스님, 청산이 좋다 말 마소

산 좋다며 어쩐 일로 다시 산을 나서시는가

다음 날 내 자취나 두고 보시구려

한 번 청산에 들거든 다시 나오지 않으리니.

 

僧乎莫道靑山好

山好何事更出山

試看他日吾踪跡

一入靑山更不還

 

 

 

고의(古意)

 

狐能化美女  호능화미녀    狸亦作書生  이역작서생     

誰知異類物  수지이류물    幻惑同人形  환혹동인형    

變化尙非難  변화상비난    操心良獨難  조심량독난     

欲辨眞與僞  욕변진여위     願磨心鏡看  원마심경간    

 

여우는 능히 미녀로 화하고       

삵쾡이 또한 서생으로 둔갑하네     

그 누가 알랴 속 다른 동물들이      

사람 형상하여 속이고 홀리는 것을     

변화하기는 오히려 어렵지 않으나       

어진 마음 다지기는 참으로 어렵구나      

진실과 거짓을 가려보려 하거든      

원컨대 마음의 거울 닦고 보려므나

 

 

春曉閑望 (봄날 새벽에 한가히 바라보며)




,


산마루 한가로운 구름을 바람도 흩어 버리기 싫어하고,
언덕 위 얼어붙은 눈을 햇볕도 녹이지 않네.
혼자 읊는 봄날의 모습이 어찌 이다지도 한스러울까.
바닷가 갈매기만이 쓸쓸한 나를 벗해 주네.

 

 

秋夜雨中 (추야우중 )                 비 오는 가을밤 

 

秋風惟苦吟(추풍유고음)                가을 바람 스산하게 불어오는데,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세상에는 날 아는 이 없고.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창밖에는 깊은 밤 비 오는 소리,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등잔을 마주 한 마음은 만리 밖 고향생각

 

 

題伽倻山讀書堂           가야산 독서당에 써 붙임

 

狂奔疊石吼重巒           바위골짝 내닫는 물 겹겹 산을 뒤흔드니

人語難分咫尺間           사람 말은 지척에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           옳으니 그르니 그 소리 듣기 싫어

故敎流水盡籠山           내닫는 계곡 물로 산을 온통 에워쌌지.

 

 

 

신라의 대문장가 해동공자 최치원(崔致遠)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시조. 자 고운(孤雲)?해운(海雲). 868(경문왕 8) 12세로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874 18세시 과거에 급제,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된 후 승무랑(承務郞) 전중시어사내공봉(殿中侍御史內供奉)으로 도통순관(都統巡官)에 올라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하사받고, 이어 자금어대(紫金魚袋)도 받았다.

879(헌강왕 5) 황소(黃巢)의 난 때는 고변()의 종사관(從事官)으로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885 년 귀국,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서서감지사(瑞書監知事)가 되었으나, 894년 시무책(時務策) 10여 조()를 진성여왕에게 상소,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을 자청, 대산(大山)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낸 후 아찬(阿飡)이 되었다.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서 여생을 마쳤다.

글씨를 잘 썼으며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은 신라시대의 화랑도(花郞道)를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려 현종 때 내사령(內史令)에 추증되었으며, 문묘(文廟)에 배향, 문창후(文昌侯)에 추봉되었다.

조선시대에 전국 유림 향교문묘에 배향되었으며, 태인(泰仁) 무성서원(武成書院), 경주(慶州)의 서악서원(西岳書院) 등에 종향(從享)되었다.

본 서악서원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이 소시에 학문을 배운 서당이 바로 서악서원이다. 지금도 경주 선도산 아래에 현존하고 있다.

글씨에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지증대사적조탑비(智證大師寂照塔碑)』『무염국사백월보광탑비(無染國師白月光塔碑)』『사산비(四山碑)』가 있고, 저서에 『계원필경(桂苑筆耕)』 『중산복궤집(中山覆集)』 『석순응전(釋順應傳)』『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 등이 있다.

 

아래는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 신혼 초야에서 석별의 정을 아쉬워하며 부처간 서로 "석별을 노래한 시 구절"과 당시에 얽힌 내용 등이다.

신라 건국 915(경문왕 8 = 서력 868) 화사한 봄날이었다.

온갖 백화 다투듯 만발하고 나날이 푸르러 지는 녹음 속에 새들의 노래 소리가 곱게도 한데 어우러진다.

그렇게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대자연 속에서 복사꽃, 오얏 꽃같이 화사하고 고운 미소녀와 기골이 비범한 미소년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서로 마주보며 이별을 두고 나누는 손을 잡고 애틋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는 장면이 너무나 정겹기까지 한다.

그들은 바로 12세의 나이로 부부가 된 최치원과 나운영이었다.

당나라로 떠나는 최치원을 전송하려고 양친부모와 처가 식구들과 이웃 친지들이 음식과 술을 장만하여 함께 먹고 마시었다.

어린 나이로 장래를 위하여 머나먼 당나라로 떠나는 낭군 최치원을 보내는 아쉬운 마음의 나운영도 슬픔을 주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최치원이 설음에 목이 메여 흐느끼는 잉꼬새 같은 나운영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 여보 부인! 너무 서러워 마오. 옛 글에 이르기를 남아가 뜻을 세우고 고향을 떠나면 반드시 성공하여 비단옷을 입고 금의환향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하지 아니하오. 우리 부부가 시한적으로 헤어지는 것은 모두가 훗날을 기약하기 위함이니 마음을 편안히 지니시오."

" 한낱 아녀자로서, 붕새의 높은 뜻을 뱁새가 어찌 다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하오나 지금 먼 나라로 떠나시는 낭군께서는 보다 큰 뜻을 기약하려는 것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장에 닥친 이별의 슬픔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낭군께 우선 이별주를 올리고 시 한 수를 읊겠습니다.

나운영은 섬섬옥수로 옥으로 만든 술잔에 향기 짙은 술을 따라 올리면서 슬픔을 머금은 목소리로 전별시를 엎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백조쌍쌍표운연( )하니

고범거거접청천( )이라

별주완가무호의( )하니

장년수접야등전( )이라

백조는 쌍쌍으로 짝을 지어 구름 속에 나부끼고

돛단배는 가면서 푸른 하늘에 닿으리라

이별주에 노래는 고와도 기쁜 마음 전혀 없고

오랜 세월 등불 앞에 이내 시름 쌓이리라

 

고운 최치원은 부인의 전별시를 듣고 나서 이별주를 천천히 마신 후 곧 이어 화답을 하였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동방야야막고수( )하니

취대화용공쇠모( )

차거공명당자취( )하니

여군부귀희거유( )

동방에 밤마다 괴로워하지 마시고 시름 또한 하지를 마오

꽃같이 고운 얼굴 쇠해질까? 염려되오.

이번에 가면 공명을 이루고 와서

그대에게 부귀주어 즐겁게 살고지고.

 

비록 어린 부부였다고는 하나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의 부처간이었다고 후세 사람들을 흠모해 마지않고 있다.

 

당나라로 유학 길에 오르게 된 사연은 여재와 같다.

당나라 사신들이 신라에 인물들을 농간하기 위하여 당나라 황제께 간하여 신라왕실을 상대로 시험을 하고자 농간을 걸어 오게 되었다.

사신들은 단단한 함() 속에 문제를 감추어 두고 견봉날인하여 신라왕실에 와서 해답을 구하라고 제의를 걸어왔다.

만약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맞추면 신라와 교분을 두터이 통상할 것이나 알아 맞추지를 못할 경우에는 천자로부터 신라국의 대한 불충의 댓가를 치러게 될 것이라고 억압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신라왕실에는 적지 않은 재앙의 불씨가 떨어지게 된 것이다.

 

최치원의 나이 11세 때의 일이었다.

달 밝은 밤.

여기는 초도해에 외딴섬이다.

우뚝한 바위에 앉아 시를 읊거나 피리를 불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그는 바로 태백산에서 하산한 최치원이었다. 벌써 며칠째 바닷가에 홀로 나와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 그림자가 내리 깔리는 느지막한 오후 바닷가 저쪽에서 두런거리며 최치원이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운이 앉은 바위 옆에 앉았다.

그들은 당나라에서도 문장이 뛰어난 학자이자 벼슬아치들이었다.

당 나라 황제의 밀명을 받고 변장을 한 차림새였다. "요즘의 변방의 정세가 어떠 한지? 그 사정을 낱낱이 정탐하여 보고하라. 특히 신라의 군사력, 그리고 학문에 뛰어난 인물이 얼마나 있는지? 자세히 조사하여 아뢰거라" 이러한 밀명을 받은 것이었다.

그들은 여러날 항해 끝에 초도해 근처에 닿아서 그 주위의 풍광에 취해 잠시 쉬어 가기로 했던 것이다.

때마침 달밝은 호젓한 가을밤, 그윽한 운치와 정감을 자아내는 분위기였다.

당나라 문장가 하나가 시흥에 겨워 큰소리로 시 한 구절을 읊었다.

"삿대는 물결 밑 달을 꿰뚫는데(도천피저월=棹穿波底月)"??? 하며 첫구절은 읊었으나 그 다음 구절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머뭇거릴 때이다. 곧 훌륭한 대구(對句)가 들려왔다.

"배는 물 가운데 하늘을 누르네(정압수중천=艇壓水中天)"

두 문장가는 그 싯구를 듣고 화들짝 놀라 소리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불과 십여 세가 넘었을까? 말까?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너는 누구냐? 방금 네가 화답을 했느냐? 나이는 몇이냐?

예 저는 열 한 살입니다. 대인께서 지은 시에 제가 화답을 했습니다."

"무어야? 불과 열 한 살이라고? 그 나이에 그런 절구로 화답을 했다니 믿기지가 않는구나"

"그렇다면 다시 시험하시지요"

"오냐, 내가 먼저  지을 테니 화답해 보아라"

문장가 중에 한 명이 시를 지었다.

"물새는 떴다가 다시 잠기네(수조부침몰=水鳥浮沈沒)"

끝나기도 전에 어린 고운은 즉각 받았다.

"산 구름은 끊어졌다 다시 이어지네(산운단복연=山雲斷復連)"

두 문장가는 다시 놀란다. 이번에는 다른 문장가가 이렇게 물었다.

"쥐나 새는 어째서 짹짹하느냐?"

최치원이 즉각 받아서 되물었다.

"돼지와 개는 어째서 멍멍하느냐?"

두 문장가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어리둥절하더니 다시 이렇게 묻는다.

"너는 어디에 사는 누구이냐?"

"예 저는 나천업 각간의 종이온데 이곳에 바둑돌을 주어려 왔습니다."

"으음… 나천업 각간의 댁이라고 했지?"

그들은 귀속말로 서로 주고 받더니 슬그머니 꼬리를 빼었다.

"아아, 신라에는 얼마나 학문이 장대한 선비들이 많길래 저 어린아이조차 당나라에서 제일 간다는 우리들을 오히려 능가하는가?"

그들은 매우 충격을 받고 발길을 돌이게 되었다.

서라벌(서벌, 서불=서울) 남쪽에 위치한 거리, 고대광실 높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제일 나천업 각간의 집이 가장 돋보였다.

행색이 초라한 소년 최치원은 그 집 대문 앞에 이르러 몇 차례 크게 소리를 쳤다.

"거울 고치시오, 거울을 사거나 고치시오…."

바로 그 무렵 신라의 각간 나천업의 외동딸 운영(雲英)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가보인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년 십 일세, 흡사 반쯤 피어나는, 이슬 머금은 복사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거울은 청동 바탕에 푸른 옥으로 깎아 다듬어 아교를 부쳐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청동이 녹슬어 있었다. "아아, 이를 어쩌나, 이 거울은 우리 집 가보인데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겠어, 기술자가 녹을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데…"

바로 그 때에 또렷하고 낭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울 고치라는 소리였다.

나 각간의 외동딸은 유모를 불렀다.

유모를 불러 저 바깥에 나가서 거울 고치는 사람 좀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에그머니나, 조그만 아이가 거울을 고치려 다니다니… 네가 정말 거울을 고칠 수 있겠느냐?"

"염려 마십시오, 작아도 꿩 잡는 데는 매라고 하지 아니합니까. 어서 그 거울을 이리 주십시오."

거울을 건네 받자 "으음, 이 거울은 참으로 훌륭하군요, 그러나 녹이 끼어서 이대로 두면 삭아버립니다. 제가 특수한 방법으로 녹을 깨끗이 닦아내겠습니다."

이리하여 최치원은 나천엽 각간의 집에서 잔 심부름을 하게 되면서, 때로는 신동(神童)의 기질을 보이면서 후일 부인이 될 운영(雲英)이와도 사기게 된다.

 

지난번 초도해 앞바다에서 최치원과 시를 주고 받았던 두 문장가들이 당나라로 돌아가 신라의 정탐한 사항들을 황제에게 상세히 보고하였다. 그리고 덧붙혀 이렇게 말했다.

" 폐하, 지금 신라에는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재사(才士)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냥 모른 체 방관만 하면 우리 대 당나라를 우습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러하오니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어 신라 측에 풀어 보라고 하여 풀지를 못하면 그것을 빙자하여 문책을 하시어 일찍이 신라의 콧대를 꺾어 놓는 게 좋을 것으로 사려 되옵니다.

"으음, 그렇다면 여러 신료 들과 협상하여 가장 어려운 문제를 내어 신라 측에 풀도록 의뢰하라. 경들에게 그 문제를 위임하겠노라."라고 명하였다.

얼마 후 두 문장가는 단단한 열쇠가 달린 함() 하나를 가지고 신라 서울로 오게 되어, 왕에게 나아가 자신들이 황제의 명을 받들고 왔노라고 목적을 밝혔다.

그 라고 우리가 여기에서 한 달 동안 머무는 기간 내에 우리가 가지고 온 함 속에 무엇이 들었는가? 알아 맞히고 서로 적어 바치라고 하였다. 만약 알아내지 못하다면 황제폐하에 대한 불충으로 간주하고 진노가 크게 될 것이라고 어름짱을 놓기도 하였다.

엉뚱한 문제로 인해 신라로서는 참으로 큰 고민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보자기에 꾹꾹 싼 함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으나 신통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임금은 그 문제를 나천업 각간에게 풀어 보라고 위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풀지 못하면 심한 문책이 따를 것이고 풀게 되면 후한 상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별다른 방법이 없이 집 식구 모두 끙끙 앓을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다.

나운영은 심히 고민을 하다가 동산에 있는 파경동(최치원)을 찾아가서 그러한 사정을 말하고 그 문제를 풀 수가 있겠느냐고 물어보게 된다.

"그 문제 쯤이야 나에게는 식은 죽 먹기지요. 그러나 나에게도 조건이 있소. 그 조건을 들어 주면 쉽게 응할 수 있으나 나의 조건을 들어 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문제 해결에 응할 수가 없오."

"그 조건이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 줄 수 없겠는가?"

"그럴 수는 없소. 각간께서 직접 가부를 결정해야 될 일이라오."

이 말을 전해들은 나 각간은 "나라에 숱한 지혜로운 이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난 사람들도 못 푸는 일을 배우지도 못한 어린아이가 무슨 수로 해결한단 말인가?"

"아버님, 파경동이 비록 어리지만 누누이 지켜보니 보통의 아이들과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동의 지혜가 있으니 그에게 맡기소서."하고 운영은 간청을 하게 되니, 신동 최치원이를 불러오게 하였다.

"너는 이미 이 일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네가 정말 그 문제를 풀 수 있겠느냐? 만일 가능하면 큰 상을 내리 것이로되 헛말을 했다면 살아 남기 어려울 것이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했습니다. 소인은 능히 해낼 수 있습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헛말을 하오리까!"

그러면 나와 함께 당나라 사신들을 만나러 가자. 만약, 그릇될 때는 그들이 노하여 우리나라는 크나큰 액운을 면치를 못하게 되고 나와 네 가족들도 파멸하여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라."

"그렇게 중대한 일이니 저에게도 조건이 있습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응할 수 없습니다.

“무어냐? 조건이란 게 무엇이냐?

“각간께서는 저를 사위로 삼으시고 당나라로 유학을 갈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소서. 그리하오시면 반드시 장원 급제하여 돌아오리다.

“이런, 이렇게 발칙한 놈을 보았나. 네가 감히 뉘 딸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그리고 당나라에 가서 급제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네가 알기나 하느냐?

싫다면 저도 그만 두겠습니다.

파경동은 각간 앞에서 그렇게 말을 하고 나왔다. 각간이 다시 다시 불러 위협하며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문제를 풀어야 할 기한이 그의 다 되었다.

나 각간에게 운영이 나아가 호소를 하였다.

“아버님, 이번 문제는 나라에도 영향이 크지만 우리 가문에도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옛날 제영(提榮)이라는 여인은 관비(官婢)가 되어 아버지의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아버님 저는 파경동이에게 시집을 가겠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풀게 될 것이오며, 장차 당나라로 가서 급제하게 될 것이라 확실히 믿습니다.

“좋다 그렇다면 일단 청혼만 하고 당나라 사신들에게 가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면 혼례식을 올리도록 하겠다. 만약 실수를 하게 되면 파경동을 내가 먼저 물고를 내겠다.

다음날 파경동은 목욕 재계한 후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나 각간과 함께 당나라 사신을 만나려 갔다.

당나라 사신을 만난 그 곳에서도 파경동은 미리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두 분 대인께 말씀 드립니다. 제가 함 속에 든 물건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고 시를 짓는다면 우리 신라에 아무런 책 잡는 일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당나라로 건너가 공부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신다고 약조해 주십시오.

“이 문제는 천하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선비들도 어려워 피하는데 어린 네가 무슨 수로 풀겠다는 것이냐?

“그것은 저에게 맡겨 주시고 제가 제안한 두 가지 약조를 지킬 수 있는지요.

“오냐. 대 당나라의 위상을 걸고 약속하마.

그 말이 떨어지자 최치원은 보자기에 싸인 둥근 함 속으로 다가갔다. 주위의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최치원은 스승 도결선사에게서 배워 전수받은 대로 정신을 집중시키고 속으로 간절히 주문을 외우는 듯 하더니 눈을 떴다. 그리고 나서 도결선사에게서 건네 받은 붓을 꺼내어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일필휘지(一筆揮之). 용과 뱀이 서로 어울려 꿈틀거리듯 힘차고 활달한 글씨로 써 다음과 같은 시가 탄생되었다.

 

단단석함물 ( )

반백반황금 ( )인데

야야지시명 ( )하나니

함정미토음 ( )일러라

 

둥글고 둥근 함 속의 물건은 절반은 희고 반절은 노란데

밤마다 때를 알아 울려 하건만 뜻만 머금을 뿐 토하지 못하는 도다.

 

시를 읽어본 당나라 사신들은 무릎을 탁 치면서 탄복하기에 이르렀다.

“놀랍도다. 참으로 신동이로다!

“오호, 글씨와 시가 절묘하도다.

나 각간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함 속에 들은 것은 바로 계란이었다.

“이 함 속에 들은 것을 무슨 수로 알았을까?

“뿐 아니라 시의 내용 또한 놀랍도다.

함은 열리지도 않았는데 신통하게 알아내고 멋진 시문까지 지었으니 당나라 사신들은 트집을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최치원을 당나라로 대리고 가겠다고 자청하고 나서는 것이었다.

이런 일로 말미암아 최치원은 임금에게 나아가 후한 상을 받게 되었고, 나운영과 혼인까지 하게 되었음은 물론이요, 당나라로 유학길에 오르는 여정이 열리게 되었다. 

[출처] 최치원의 시 (이별을 노래한)|작성자 차미슬

 

 

 

홀로 가는 구름  - 최치원

 

여보게 자네

 

품 안에 자식이오

內外 이부자리 안에 內外

 

야무지게 산들 뾰족할 거 없고

덤덤하게 살아도 밑질 거 없다

속을 줄도 알고 질 줄도 알자

 

주머니 든든하면 술 한잔 받아주게

나도 돈 있으면 자네 술 사줌세

 

거물거물 서산에 해 걸리면

지고 갈 건가 안고 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