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沖庵詩券(제충암시권) / 김인후(金麟厚)
한 세상 산다는 것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온 곳도 알 길 없고 갈 곳도 모르니,
한 세상 산다는 것이 아득키만 하여라.
題 冲 庵 詩 券 (제충암시권) : 충암의 시집에 씀 冲庵은 김정의 호.
來 從 何 處 來 (래종하처래) : 오기는 어느 곳으로부터 오고
去 向 何 處 去 (거향하처거) : 가기는 어느 곳을 향해 가는가?
去 來 無 定 蹤 (거래무정종) : 가고 오는 길에 정해진 발자취가 없으니
悠 悠 百 年 計 (유유백년계) : 백년의 계획이 아득하기만 하다. 悠悠에는 근심스럽다는 뜻도 있다.
百年計는 한 평생을 도모하는 일, 일생을 사는 일.
『大東詩選』
<감 상>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혹 전세(前世)라는 것이 있는 걸까?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혹 후세(後世)라는 것이 있는 걸까?
이런 것을 잘 설명해 주는 곳(종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로서는
알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답답하고 근심스럽고 아득할 수밖에.
그러나 이런 시는 늙어서나 읽자. 싱싱한 젊은 나이에 온 곳은 따져 무얼 하며,
할 일이 질펀한데 왜 갈 곳을 생각해야 하겠는가? 물론 그런따짐, 그런 생각이
나의 젊음을 보다 성숙하게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데에 너무 정신을
잃어 삶의 쟁기를 놓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난다. 그리고 한 번 살다 간다. 오고가는 곳을
몰라도 한 번밖에 없는 삶은 중요한 것이다.
김인후(金麟厚, 1510~1560) : 조선 중종 때의 문신, 학자. 호는 하서(河西).
천문, 지리, 의약 등 다방면에 정통했다. 저서로 『河西集』등.
산다는 것의 의미
중종때 사람 김인후(金麟厚)가 남긴 "제충암시권 題冲庵詩券"이다.
당의 이백(李白)은
"하늘과 땅은 만물이 깃드는 주막이오, 세월은 백대를 흘러가는 나그네" 라 하였고,
송의 소식(蘇軾)은
"사람 한 평생이 마치 하늘을 날던 새가 눈벌판에 남기고 간 발자국과도 같다" 고 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사람이 또 천 년 만 년 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하는 짓을 보면
저마다 주인이오 저마다 오래 살 궁리를 하고 있으니 그 무지 몽매함이 비할 데가 없다 할 것이다.
이병한 < 서울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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