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題 冲 庵 詩 券 (제충암시권)

含閒 2010. 10. 7. 17:07

題沖庵詩券(제충암시권) / 김인후(金麟厚)

한 세상 산다는 것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온 곳도 알 길 없고 갈 곳도 모르니,

한 세상 산다는 것이 아득키만 하여라.


題 冲 庵 詩 券 (제충암시권) : 충암의 시집에 씀 冲庵은 김정의 호.


來 從 何 處 來 (래종하처래) : 오기는 어느 곳으로부터 오고

去 向 何 處 去 (거향하처거) : 가기는 어느 곳을 향해 가는가?

去 來 無 定 蹤 (거래무정종) : 가고 오는 길에 정해진 발자취가 없으니

悠 悠 百 年 計 (유유백년계) : 백년의 계획이 아득하기만 하다. 悠悠에는 근심스럽다는 뜻도 있다.  

                                            百年計는 한 평생을 도모하는 일, 일생을 사는 일.



                                                           『大東詩選』


<감 상>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혹 전세(前世)라는 것이 있는 걸까?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혹 후세(後世)라는 것이 있는 걸까?

이런 것을 잘 설명해 주는 곳(종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로서는

알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답답하고 근심스럽고 아득할 수밖에.


그러나 이런 시는 늙어서나 읽자.  싱싱한 젊은 나이에 온 곳은 따져 무얼 하며,

할 일이 질펀한데 왜 갈 곳을 생각해야 하겠는가? 물론 그런따짐, 그런 생각이

나의 젊음을 보다 성숙하게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데에 너무 정신을

잃어 삶의 쟁기를 놓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난다.  그리고 한 번 살다 간다.  오고가는 곳을

몰라도 한 번밖에 없는 삶은 중요한 것이다.

 

김인후(金麟厚, 1510~1560) : 조선 중종 때의 문신, 학자.  호는 하서(河西). 

                                               천문, 지리, 의약 등 다방면에 정통했다.  저서로 『河西集』등.



산다는 것의 의미

 

중종때 사람 김인후(金麟厚)가 남긴 "제충암시권 題冲庵詩券"이다.

 

당의 이백(李白)은

"하늘과 땅은 만물이 깃드는 주막이오, 세월은 백대를 흘러가는 나그네" 라 하였고,

 

송의 소식(蘇軾)은

"사람 한 평생이 마치 하늘을 날던 새가 눈벌판에 남기고 간 발자국과도 같다" 고 하였다.

 

사람이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고, 사람이 또 천 년 만 년 사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하는 짓을 보면

저마다 주인이오 저마다 오래 살 궁리를 하고 있으니 그 무지 몽매함이 비할 데가 없다 할 것이다.

이병한 < 서울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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