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岳陽樓記 (악양루기)

含閒 2010. 8. 3. 09:02

岳陽樓記  (악양루기)

                                范仲淹( 범중엄 )

 

慶歷四年春 滕子京謫守巴陵郡 越明年 政通人和 百廢俱興

경력사년춘 등자경적수파릉군 월명년 정통인화 백폐구흥

 

경력[慶歷: () 인종(仁宗)의 연호] 4년 봄, 등자경이 유배되어 파릉군의 태수가 되었다. 이듬해가 되자 정치가 통하고 인심이 화합하며, 이전의 온갖 그릇된 일들이 모두 잘 고쳐지게 되었다.

 

乃重修岳陽樓 增其舊制 刻唐賢今人詩賦于其上 屬予作文以記之

내중수악양루 증기구제 각당현금인시부우기상 촉여작문이기지

 

이에 그는 악양루(岳陽樓)를 중수(重修)하였는데, 옛 규모를 늘리고 당대(唐代)의 현인들의 문장과 오늘날의 시부(詩賦)도 그 위에 새겨 넣었으며, 나에게는 문장을 지어서 그 일을 기록해 달라고 하였다.

予觀夫巴陵勝狀 在洞庭一湖 銜遠山 呑長江 浩浩蕩蕩 橫無際涯 朝暉夕陰 氣象萬千

여관부파릉승상 재동정일호 함원산 탄장강 호호탕탕 횡무제애 조휘석음 기상만천

 

내가 보기엔 파릉의 뛰어난 경치는 오로지 동정호(洞庭湖) 하나뿐이다. 이 호수는 먼 산을 머금고 장강의 흐름을 삼켜 넓고 넓어서 막힘이 없다. 그 너비는 끝이 없고 아침 해가 비칠 때나 저녁 어스름 때면 기상(氣象)이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此則岳陽樓之大觀也 前人之述備矣 然則北通巫峽 南極瀟湘遷客騷人

多會于此 覽物之情 得無異乎

차즉악양루지대관야 전인지술비의 연즉북통무협 남극소상천객소인

다회우차 람물지정 득무이호

 

이것이 바로 악양루에서 본 큰 볼거리로서 옛 사람들이 모두 잘 기술하였다. 그런데 북으로는 무협으로 통하고 남으로는 소상[瀟湘: 소수(瀟水)와 상수(湘水)]에 이르고 있어 옛날부터 유배된 사람들이나 시름에 젖은 시인들이 이곳에 많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경관을 보는 정감이 어찌 각기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若夫霪雨霖霏 連月不開 陰風怒號 濁排浪空 日星隱曜 山岳潜形

商旅不行 檣傾楫摧 薄暮冥冥 虎嘯猿啼

약부음우림비 연월불개 음풍노호 탁배랑공 일성은요 산악잠형

상려불행 장경집최 박모명명 호소원제

 

만약 장마가 오고 눈비 쏟아져 몇 달이고 개지 않으면 음산한 바람이 성난 듯 불어 와 흙탕물결이 하늘에 치솟아 해와 별이 빛을 감추고, 여러 산들은 그 모습을 숨기며, 장사꾼과 나그네의 발길이 끊어지고, 배의 돛대가 기울어져 노가 부러지며, 저녁 무렵 날이 캄캄하면 호랑이가 울고 원숭이가 울부짖는다.

 

登斯樓也 則有去國懷鄕 憂讒畏譏 滿目蕭然 感極悲者矣

등사루야 즉유거국회향 우참외기 만목소연 감극비자의

 

이 누각에 오르면 멀리 서울(國都)을 떠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일고, 무고(誣告)를 당할까 모략에 걸릴까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정이 일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쓸쓸하게 느껴질 터이니, 감정이 격동하여 슬퍼질 것이다.

 

至若春和景明 波瀾不驚 上下天光 一碧萬頃 沙鷗翔集 錦鱗遊泳

岸芷汀蘭 郁郁靑靑

지약춘화경명 파란불경 상사천광 일벽만경 사구상집 금린유영

안지정란 욱욱청청

 

봄기운이 화창하고 경관이 청명(淸明)하여 파도가 잔잔할 때면, 하늘과 물빛이 모두 푸른빛으로 널리 펼쳐진다. 물가에 갈매기 날아들고 이름다운 물고기들 헤엄쳐 다니며, 언덕위엔 지초(芷草), 물가엔 난초(蘭草)가 자욱이 퍼지고 푸릇푸릇하다.

 

而或長煙一空 晧月千里 浮光躍金 靜影沈璧 漁歌互答 此樂何極

이혹장연일공 호월천리 부광약금 정영침벽 어가호답 차락가극

 

그리고 간혹 끝없는 안개가 창공에 가득하고, 하얀 달빛은 천리나 비쳐 반사된 물결이 금빛으로 일렁이며, 고요한 달그림자는 마치 구슬이 가라앉은 듯하고, 뱃노래 소리가 서로 화답하니 이 즐거움이 어찌 다할 수가 있으랴. 

 

登斯樓也 則有心曠神怡 寵辱俱忘 把酒臨風 其喜洋洋者矣

등사루야 즉유심광신이 총욕구망 파주임풍 기희양양자의

 

이 누각에 오르면 마음이 넓어지고 정신이 편해져서, 영광스러운 일이나 욕된 일들이 모두 잊혀지고, 술잔을 들고 바람을 맞으리니 그 기쁨이 넘실댈 것이다.

  

嗟夫 予嘗求古仁人之心 或異二者之爲 何哉 不以物喜 不以己悲

차부 여상구고인인지심 혹이이자지위 하재 불이물희 불이기비

 

아아! 나는 일찍부터 옛 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았는데, 아마 앞서 든 두 가지 예와는 다른 듯하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 그들은 외부의 사물을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자기의 일로 슬퍼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郁

거묘당지고 즉우기민 처강호지원 즉우기군 시진역우 퇴역우 연즉하시이락욱

조정의 높은 직위에 있으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물러나 강호의 먼 곳에 거처하면 임금을 걱정하였다.곧 나아가서도 또한 걱정이요 물러나서도 또한 걱정뿐이었으니 어느 시절에 즐거워 할 수 있었겠는가?

 

其必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微斯人 吾誰與歸

기필왈 선천하지우이우 후천하지락이락 희 미사인 오수여귀

 

그들은 기필코 말하리니,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도 앞서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누구보다 나중에 즐거워한다." 라는 말일 것이다. 아아! 그와 같은 어진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누구를 본받아 의지하며 살아 갈 것인가?

 

 

*악양루(阳楼) 중국 호남성 예양시의 고적 예양고성 서문의 위쪽에 있다. 아래쪽으로는 동정호가 보이며, 앞으로는 군산을 북쪽으로는 장강에 접한다. 중국 강남 사대 명루의 하나로 손꼽힌다. 그 시초는 삼국시대 동오의 명장 노숙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누각이다. 당시 오나라는 촉나라의 유비와 형주를 다투고 있었는데, 215년 노숙은 동정호의 파구(巴丘)에 주둔하며 수군을 훈련시키고, 파구성을 세우면서 열군루(閱軍樓)라는 망루를 지어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하였다. 716년 당나라 때 악주의 태수 장열(張說)이 이곳을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라고 이름을 고쳐짓고, 그때부터 문인재사들의 시를 읊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1044년 송나라 때 등자경(藤子京)이 이곳 태수로 좌천되면서 퇴락해진 누각을 증수하게 되는데, 그때 범중엄을 초청하여 유명한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짓게 한다. 현재의 건물은 1880년 청나라 광서제 때 다시 중건한 것으로 누각의 높이는 20미터에 삼층 목조 건물로 되어 있다.

 

  

*범중엄 [范仲淹, 989~1052] 중국 강소성(江蘇省) 소주(蘇州) 출생. 자는 희문(希文). 시호는 문정(文正). ()나라 인종(仁宗)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자 부름을 받아 중앙에서 간관(諫官)이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 곽황후(郭皇后)의 폐립문제를 놓고 찬성파인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대립했기 때문에 다시 지방으로 쫓겨났다. 그 뒤로 구양수(歐陽修) ·한기(韓琦) 등과 함께 여이간 일파를 비난하였으며, 자기들 스스로 군자의 붕당(朋黨)이라고 자칭하여 경력당의(慶曆黨議)를 불러일으켰다. 1038년에 이원호(李元昊)가 서하(西夏)에서 제위(帝位)에 오르자, 산서경략안무초토부사(陝西經略安撫招討副使)가 되어 서하 대책을 맡고, 그 침입을 막았다. 그 공으로 추밀부사(樞密副使)가 되고, 이어 참지정사(參知政事: 부재상에 해당)로 승진하여 내정개혁에 힘썼으나, 그를 미워하는 하송(夏悚) 일파의 저항이 강하여 다시 지방관(地方官)을 역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시문 등을 모은 《범문정공집(范文正公集)(24)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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