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장한가長恨歌 / 백낙천

含閒 2010. 7. 23. 14:54

                     장한가長恨歌

                         끝없는 한의 노래

                                                         백락천거이白樂天居易



한황중색사경국漢皇重色思傾國        漢皇은 미색을 귀히 여겨 절세의 미인을 그리워했으나

어우다년구부득御宇多年求不得       천하를 다스린 지 몇 년이 지나도 구하지 못하였는데

양가유녀초장성楊家有女初長成       楊家에 갓 장성한 딸이 있었으나

양재심규인미식養在深閨人未識       깊은 규방에서 자라 아무도 알지 못했네.

 

천생려질난자기天生麗質難自棄       타고난 아름다움 그대로 묻힐 리 없어

일조선재군왕측一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에 뽑혀 황제 곁에 있게 되었네.

회모일소백미생回眸一笑百媚生       한 번 눈웃음치면 온갖 교태 생겨나고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顔色       단장한 육궁 미녀들이 얼굴빛을 잃었네.

 

춘한사욕화청지春寒賜浴華淸池       봄기운 아직 찬데 화청지 목욕을 하사 하시니

온천수활세응지溫泉水滑洗凝脂       온천물로 매끄럽게 응긴 기름을 씻고

시아부기교무력侍兒扶起嬌無力       지친 듯 아리따운 그녀를 시녀들이 부축해 일으키자

시시신승은택시始是新承恩澤時       이때부터 황제의 사랑 내리기 시작 했네.

 

운빈화안금보요雲鬢花顔金步搖       구름 같은 머리, 꽃 같은 얼굴, 걸음마다 흔들리는 장식

부용장난도춘소芙蓉帳暖度春宵       연 꽃무늬 휘장 속 따뜻한 봄밤을 보내니

춘소고단일고기春宵苦短日高起       봄밤은 너무 짧아 해가 높이 솟아

종차군왕부조조從此君王不早朝       이때부터 군왕은 아침 조회를 보지 않았네.  

 

승환시연무한가承歡侍宴無閑暇       즐거운 잔치로 한가할 틈 없고

춘종춘유야전야春從春遊夜專夜       봄에는 봄 따라 놀고 밤에는 밤새도록 놀았네.

후궁가려삼천인後宮佳麗三千人       후궁에 미녀 삼천 명이나 되지만

삼천총애재일신三千寵愛在一身       삼천 명에 내릴 사랑 한 몸에 머물렀네.

 

금옥장성교시야金屋粧成嬌侍夜       금빛 궁전에서 곱게 단장하고 교태로 시중드는 밤

옥루연파취화춘玉樓宴罷醉和春       玉樓에서 연회 마치면 봄과 어울려 취했네.

자매제형개열토姊妹弟兄皆列土       형제자매 모두에게 영지를 내려주니

가련광채생문호可憐光彩生門戶       가문에 가련한 광채가 생겨나도다.

 

수령천하부모심遂令天下父母心       마침내 천하의 모든 부모마음이

부중생남중생녀不重生男重生女       아들 보다 딸 낳기를 바라게 되었다네.

려궁고처입청운驪宮高處入靑雲       驪山 궁전 높이 솟아 靑雲으로 들어서고

선낙풍표처처문仙樂風飄處處聞      신선의 음악은 바람 타고 곳곳으로 들려온다.

 

완가만무응사죽緩歌慢舞凝絲竹      느린 가락 나른한 춤이 악기소리와 엉기니

진일군왕간부족盡日君王看不足      황제는 하루 종일 봐도 모자라는구나.

어양비고동지래漁陽鼙鼓動地來      漁陽에서 전고 소리 대지를 흔드니

경파예상우의곡驚破霓裳羽衣曲      霓裳羽衣曲은 놀라서 그치고 말았네.

 

구중성궐연진생九重城闕煙塵生     구중궁궐도 연기와 먼지가 피어오르고

천승만기서남행千乘萬騎西南行     千乘萬騎가 서남쪽으로 가게 되니

취화요요행복지翠華搖搖行復止     화려한 깃발 흔들흔들 가다가 다시 서며

서출도문백여리西出都門百餘里     장안의 서쪽 문 나와 백 여리를 나갔네.

 

육군불발무나하六軍不發無奈何     6군이 움직이지 않으니 어찌 할 수가 없구나.

완전아미마전사宛轉蛾眉馬前死     딩구르르 양귀비는 말 앞에 죽었다.

화전위지무인수花鈿委地無人收     땅에 떨어진 꽃 비녀 아무도 거두는 이 없고

취교금작옥소두翠翹金雀玉搔頭     翠翹, 金雀, 玉搔頭도 땅에 버려졌다.

 

군왕엄면구부득君王掩面救不得     군왕은 구할 수 없어 얼굴 가리고

회간혈루상화류回看血淚相和流     돌아보니 피눈물이 함께 흐른다. 

황애산만풍소색黃埃散漫風蕭索     누런 먼지 흩날리고 부는 바람도 스산한데

운잔영우등검각雲棧縈紆登劍閣     구름에 걸린 棧道 타고 劍閣山으로 돌아드는데

 

아미산하소인행峨嵋山下少人行     峨嵋山 아래 길 가는 사람도 드물어

정기무광일색박旌旗無光日色薄     황제 깃발도 빛을 잃고 햇빛도 희미하다.

촉강수벽촉산청蜀江水碧蜀山靑     蜀의 강물 푸르고 촉의 山도 푸르건만 

성주조조모모정聖主朝朝暮暮情    황제는 아침이면 아침마다 밤이면 밤마다 님 생각에  

 

행궁현월상심색行宮見月傷心色    행궁의 달조차 상심한 색으로 보이고          

야우문령장단성夜雨聞鈴腸斷聲    밤비 속에 인경은 斷腸의 소리로 들린다.

천선지전회룡어天旋地轉廻龍馭    반란이 평정되어 황제 수레 돌아오는데

도차주저불능거到此躊躇不能去    이곳에 이르러 주저하며 가지를 못한다. 

 

마외파하니토중馬嵬坡下泥土中    馬嵬 언덕 흙더미는  

불견옥안공사처不見玉顔空死處    꽃다운 얼굴 안보이고 죽은 자리만 쓸쓸하다. 

군신상고진점의君臣相顧盡霑衣    군신은 서로 돌아보며 눈물로 옷 적시고

동망도문신마귀東望都門信馬歸    동쪽 대궐 문 바라보고 말 가는대로 맡겨 돌아간다.

 

귀래지원개의구歸來池苑皆依舊    돌아오니 못과 뜰 모두 옛 그대로이고

태액부용미앙류太液芙蓉未央柳    태액지에 연꽃 미앙궁에 푸른 버들도 그대로구나.

부용여면류여미芙蓉如面柳如眉    연꽃은 얼굴 같고 버들잎은 눈썹 같은데

대차여하불루수對此如何不淚垂    이것들을 대하며 어찌 눈물 흘리지 않으리. 

 

춘풍도리화개야春風桃李花開日    봄바람에 복사 자두 꽃 피는 날에도

추우오동엽락시秋雨梧桐葉落時    가을비에 오동잎 떨어질 때에도

서궁남내다추초西宮南內多秋草    서쪽 궁전도 남쪽 興慶宮에도 가을 풀 무성하고

낙엽만계홍불소落葉滿階紅不掃    낙엽이 섬돌에 붉게 쌓여도 쓸지 않는구나.

 

리원제자백발신梨園弟子白髮新    궁중의 가수와 무용수도 이제 백발이 생겨나며

초방아감청아노椒房阿監靑娥老    椒房의 태감도 젊었던 궁녀도 늙었어라.

석전형비사초연夕殿螢飛思悄然    밤 궁궐에 반딧불 나니 님 생각이 처량하여

고등도진미성면孤燈挑盡未成眠    외로운 등불 심지 다 타도록 잠 못 이루어

 

지지종고초장야遲遲鍾鼓初長夜    더딘 鍾鼓소리 밤은 더욱 길어만 지고

경경성하욕서천耿耿星河欲曙天    반짝이는 은하수에 날이 밝으려하는구나.

원앙와냉상화중鴛鴦瓦冷霜華重    원앙이 같은 기와는 차가워 서리꽃 무거운데

비취금한수여공翡翠衾寒誰與共    차가운 비취 금침은 누구와 함께 하나?

 

유유생사별경년悠悠生死別經年    아득하여라, 생사를 달리한지 몇 해던가.

혼백부증내입몽魂魄不曾來入夢    혼백마저 꿈속엔들 찾아오지 않네.

임공도사홍도객臨邛道士鴻都客    임공의 도사가 장안에 머무는데

능이정성치혼백能以精誠致魂魄    능이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 올 수 있다기에   

 

위감군왕전전사爲感君王輾轉思    잠 못 드는 황제 마음에 감동해서

수교방사은근멱遂敎方士殷勤覓    마침내 도사에게 은근히 찾아보도록 하였네.

배공어기분여전排空馭氣奔如電    허공을 가르는 기운으로 번개같이 내달아

승천입지구지편昇天入地求之遍    하늘에도 오르고 땅속으로도 들어가 두루 찾아

 

상궁벽락하황천上窮碧落下黃泉    위로는 碧落 아래로는 黃泉까지 갔으나

량처망망개불견兩處茫茫皆不見    두 곳 모두 망망하여 찾을 수가 없는데

홀문해상유선산忽聞海上有仙山    홀연 듣기로 바다에 신선들이 사는 산이 있는데

산재허무표묘간山在虛無縹緲間    산은 텅 비고 아득한 곳에 있으며

 

누각영롱오운기樓閣玲瓏五雲起    누각엔 영롱한 오색구름 일고

기중작약다선자其中綽約多仙子    그 속에 얌전한 선녀가 많은데

중유일인자옥진中有一人字太眞    그 가운데 太眞이란 자 있어

설부화모참치시雪膚花貌參差是    눈 같은 살결에 꽃 모양이 퍼져 있는데

 

금궐서상고옥경金闕西廂叩玉扃    황금대궐 서쪽 행랑 옥 빗장 두드려서

전교소옥보쌍성轉敎小玉報雙成    小玉이란 시종시켜 몸종 雙成에게 전갈하니

문도한가천자사聞道漢家天子使     漢 황제의 사신이란 말을 듣고

구화장리몽혼경九華帳裡夢魂驚    아홉 겹 휘장 속에 잠자던 혼이 깜짝 놀라

 

람의추침기배회攬衣推枕起徘徊    옷을 걸치고 베개를 밀어놓고 일어나 서성이다가

주박은병이리개珠箔銀屛迤邐開    구슬 발과 은 병풍을 스르르 밀어내더니

운빈반편신수각雲鬢半偏新睡覺    구름 같은 머리 비스듬히 기울인 채 막 잠에서 깬 듯

화관부정하당래花冠不整下堂來    花冠도 바로 쓰지 못하고 마루에서 내려오네.

 

풍취선몌표표거風吹仙袂飄飄擧    바람 불어 선녀 소매가 펄렁펄렁 나부끼니

유사예상우의무猶似霓裳羽衣舞    마치 霓裳羽衣舞를 추는 듯

옥용적막루난간玉容寂寞淚闌干    고운 얼굴 가만히 눈물 흘려 난간에 흐르니 

이화일지춘대우梨花一枝春帶雨    마치 한 가지 배꽃이 봄비에 젖은 듯.

 

함정응제사군왕含情凝睇謝君王    사무치는 정 은근한 눈초리로 황제에게 용서를 빌며 

일별음용양묘망一別音容兩渺茫    이별한 뒤 용안도 옥음도 뵈고 듣지 못하였습니다.

소양전리은애절昭陽殿裡恩愛絶    昭陽殿에서 받은 은총도 끊긴 채로

봉래궁중일월장蓬萊宮中日月長    蓬萊宮에서 보낸 세월 오래건만

 

회두하망인환처回頭下望人寰處    고개 돌려 아래 인간세상 내려다보아도

불견장안견진무不見長安見塵霧    長安은 보이지 않고 안개와 먼지만 보일뿐.

유장구물표심정惟將舊物表深情    오직 오랫동안 지닐 수 있는 것으로 깊은 정을 표하고자

전합금채기장거鈿合金釵寄將去    자개함과 금비녀를 주며 가져가라 하네.

 

채류일고합일선釵留一股合一扇    비녀 한 고, 함 한 쪽

채벽황금합분전釵擘黃金合分鈿    금비녀 토막 내고 자개함 나눴으니

단교심사금전견但敎心似金鈿堅    다만 마음이 이 금과 자개같이 굳기만 하다면

천상인간회상견天上人間會相見    천상이든 인간세상이든 다시 보게 되리라네.

 

임별은근중기사臨別殷勤重寄詞    헤어질 즈음 간곡히 다시 이르기를

사중유서양심지詞中有誓兩心知    두 마음만 아는 맹서의 말 있으니

칠월칠일장생전七月七日長生殿    7월 7일 長生殿에서

야반무인사어시夜半無人私語時    깊은 밤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던 말

 

재천원작비익조在天願作比翼鳥    하늘에선 比翼鳥가 되고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連理枝가 되자고

천장지구유시진天長地久有時盡    높은 하늘도 드넓은 땅도 다 할 때가 있으련만

차한면면무절기此恨綿綿無絶期    이 恨은 면면히 끊길 때가 없으리.


                            (白樂天詩集 卷十二, 感傷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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