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쉰 번이 넘는 가을

含閒 2009. 11. 5. 13:56

  쉰 번이 넘는 가을




우연히 아버지에 대한 딸들의 속마음을 들었습니다.

20대 초반의 딸.
오랜 병마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의식이 흐릿해져 가는 마지막 순간
그녀가 안타까움에 아버지에게 외치듯 물었다지요.
“아빠, 나 보여? 내가 누구야?”
“누구긴.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딸 윤미지”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그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존재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안정감을 잃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한 마디는
북극성 같은 치유적 메시지로 존재합니다.

20대 후반의 딸.
엄마 없는 살림을 챙기며 직장 생활을 하던 중
급성 간염으로 입원을 했는데 그 원인이
불규칙한 식사와 영양불균형에 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그 이후 그녀가 출근할 때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을 챙겨 주었다지요.
내가 누군가의 따스한 돌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가슴에 꺼지지 않는 화롯불 하나를 품는 것과 같습니다.
관계에서 심리적 온기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30대 중반의 딸.
20여 년간 아버지와 마음속으로 싸우고
10여 년간 화해를 하고 있다지요.
그들의 부녀 관계는
한 달에 관객 백만 명을 동원하는 영화가 아니라
십 년에 걸쳐 백만 명이 관람하는 기억할 만한 영화에 가깝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갈등하고 문득 포용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아버지와 딸들이 그러는 것처럼요.

한 상담가의 말을 빌자면,
딸과 문제없이 소통하는 아버지라면
이 세상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으며 일상의 모든 관계에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누군들 그런 아빠가 되고 싶지 않겠어요.

딸들에게 아버지는 최초의 남성이라지요.
그래서 좋은 남성 멘토가 되어야 할 책임감을
알게 모르게 가지게 된답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는 딸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쉰 번 넘게 가을을 보낸 아버지들의 은밀한 속내를 들어보니
확실히 그렇더라구요.
세상의 모든 딸들이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런 간절함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