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완벽한 아름다움

含閒 2009. 11. 18. 13:05

  완벽한 아름다움





믿기지 않겠지만,
예전에 일부 여고에서는 성적을 중심으로 학급 편성을 하며
장미반, 백합반, 라일락반, 들꽃반 등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짐작대로 들꽃반은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의 반 이름이었지요.
성적을 중심으로 꽃 같은 영혼을 줄 세우는 그 발상과 행태도
엽기적이지만 심미안조차 단순무지해서 동의가 불가능합니다.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적으로
들꽃처럼 완벽하게 아름다운 꽃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름다움의 본질이 본래의 결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때,
들꽃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드러내는 꽃이니까요.
완벽한 아름다움의 한 결정체입니다.

제가 아는 열아홉의 앳된 처녀는
그런 들꽃 같은 아름다움을 가졌습니다.
객관적으로 팔등신이거나 길을 걷다 뒤돌아보게 할 정도의
미모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완벽에 가깝습니다.

불필요한 지적을 받지 않고 들꽃처럼 있는 그대로
오롯이 자신을 드러내며 자란 느낌이 들어서 일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비즈니스 우먼이라고 불릴 정도로
외향적이고 활달하지만
자기의 빠름을 남에게 강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명품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이지만
혹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돈 많은 소수만을 위한 것은 아닐까,
심각하게 의심하기도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된 제3세계 언론인의 석방을 촉구하는
항의 편지를 써 보내고
학교에서 국제인권단체 후원 행사를 주최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학생 신분으로는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단골 케익집 방문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신상 구두에 집착하는 서인영같고
어떤 때는 리무진 좌파라고도 불리우는 안젤리나 졸리 같습니다.
중요한 건 어떤 순간에도 그 앳된 처녀가
망설임 없이 자기 색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겁니다,
바람만큼 흔들리는 아름다운 들꽃처럼요.

그 들꽃같은 처녀는 제 딸 채은이입니다^^

고슴도치식 자화자찬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저는 딸아이를 보면서 들꽃이 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지를
새삼 실감하고 있습니다.
본래 자기가 가진 결대로 손대지 않고 자라면
얼짱 팔등신과는 트랙 자체가 다른 완벽한 아름다움이
가능한 것이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오죽하면 제 파트너가 향후 자신의 삶에서의 롤모델을
딸아이로 설정했겠어요.
자기결대로 드러남이 완벽하게 아름다워 보여서 그럴 거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고슴도치 시각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