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게으름

含閒 2009. 8. 12. 12:28

  게으름




현재 교제 중이거나 결혼을 앞둔 연예인들이 인터뷰에서
자주 쓰는 무차별적 단어가 있습니다. ‘예쁘다’는 말입니다.

예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저희, 예쁘게 살겠습니다.

20대의 청춘남녀든 중년 가까운 나이에 결혼을 하는 커플이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고객님 찾는 물건이 여기 없으세요’ 라는
이상한 어법보다 더, 짜증과 당혹함을 유발하는 게으른 단어
사용법입니다.

영국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한 선생님은 아이들이 흔히 쓰는
‘나이스(nice)’라는 말을 ‘게으른(lazy) 단어’라고 표현합니다.
한번 더 생각하지 않거나 개념이 명확하지 않으니까 두루뭉술하게
그냥 나이스라고 표현한다는 거지요.

‘게으른 단어’ 사용의 가장 큰 폐해는 내 욕구를 잘게 쪼개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하고 안 맞는 옷을 입고 있을 때처럼
왠지모르게 내 삶이 불편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게으름은 자기의
진짜 욕구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게으른 단어 사용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