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무문관

含閒 2009. 4. 1. 15:26

  무문관




한 사찰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문관
체험 프로그램은 흥미롭습니다.
말 그대로 출입문이 봉쇄된, 문이 없는 방에서
본래의 자기 모습과 대면하고 싶은 사람들이
3-4일간 깊은 명상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휴대폰은 물론 어떤 소지품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며
하루에 한번, 문에 난 구멍으로 하루치 양식만 제공한답니다.
바깥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와
대면을 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스님들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문관에 들어간 첫 날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종일 잠만 잔다는군요^^;;
그러다가 둘째 날부터 두려운 마음으로
자기를 느끼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저는 첫 날의 하루종일 잠을,
외부 세상의 번다한 자극들을 씻어내고
자기를 대면하기 위한 준비 운동이거나
휴지기가 필요해서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가끔씩 자기와의 조우(遭遇)를 위해서,
본인 사망 외에는 불참이 있을 수 없다는 골프 스케쥴을
확정하듯이 수첩에 ‘중요 만남’이라고 적어 놓고
그 날은 어떤 약속도 잡지 않는다네요.

남들이 보기엔 무의미할 수도 있는 ‘하루종일의 잠’을
깊이 인정하고 충분히 배려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 대면의 실마리가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