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달력...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쯤에 가정과 일터에는 새 달력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들어오게 된다.
일년 열두달 365일... 그 안에는 각종 행사로 인한 휴무일이 빨간색으로 표기되어 있다.
나는 새 달력를 받으면 우선 제일 먼저 이 생각부터 하게된다. 깨끗히 잘 보관해서 난중에 애들 책갈피 싸 줘야지...하고.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생신일,남편과 두 아들녀석의 생일를 한장한장 넘기며 짚어본다.
매년 3월이면 우리집은 두번의 작은 행사를 치르게 된다.
무슨 거창한 일이길래 한달중에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행사를 치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3월 14일....은 "결혼기념일'이다. White day'이기도 하지만, 난 사실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남편은 이날이 되면 '사탕봉지'와 함께 결혼 햇수에 맞게 장미꽃다발과 작은 케잌을 사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집안으로 들어온다.
남편의 손에서 난 제일먼저 '장미꽃다발'를 받아들고, 작은 유리병에 물을 담아 꽃을 꽂아 거실 중앙에 놔 두며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우리는 특별한 선물을 주거나 받지 않는다.
식탁위에 작은 케잌을 올려놓고 지난 세월 함께 한 시간들을 서로에게 감사하며, 아이들의 축하메세지로 막을 내린다.
두번째, 행사는 바로 큰애의 생일이다. 결혼기념일과 큰애의 생일은 열흘 간격이다. 어느해, 큰애는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 아빠랑 3월 14일 결혼했는데, 내 생일은 3월 24일이야? 난 엄마 뱃속에서 열달동안 살았어야하는데...이상하네~~"라고.
아이의 말에 그 흔한 말로 '속도위반(?)'를 했을까?
나는 큰애가 가장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를 해줘야했다.
"선아, 아빠랑 엄마는 93년 3월 14일에 결혼을 했고, 울 선이는 95년 3월 24일에 이 세상에 태어난거야. 선이가 태어난 날에는 봄이 시작이 되고,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나고, 마치 온 세상은 푸른 물감를 풀어놓은듯 했단다. 햇볕도 따스하고, 간지럼태우듯 바람은 살랑살랑 불고 말야. 울 선이는 참 좋켔다. 이리 좋은 계절에 태어났으니 말야."
★닳고 닳아서 실밥이 풀어지고 안감에 댄 실크원단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한 지갑! (낡은 지갑인데도 원형보존을 위해서 꼼꼼히 속안에 메모지와 새 지갑에서 꺼낸 것들로 채워 놓았다. 그리고 자기만의 비밀금고에 고이 모셔 두었다.)
결혼생활 14년차인 올 3월 14일.... 결혼하기전부터 남편과 함께 한 물건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씩 남편곁을 떠났다. 하지만, 유독 남편 곁을 떠나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갈색 가죽 지갑' 지난해 여름 난 남편의 지갑속에 들어있는 내 모습을 보았었다. 신혼초에 찍은 사진이였는데, 날이면 날마다 남편의 뒷주머니에 넣어져 낡을대로 낡은 사진! 오래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들은 그때 그 시절로 잠시 추억의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나 또한 그랬었다.
'이왕이면 좀 더 이쁘고 잘 나온 사진으로 바꿔 다니지(사진이나 잘 찍으면서) .... 그리고 이렇게 비닐루 싸지 말고, 코팅해서 가지고 다녀야지." "아 이사람아! 이렇게라도 내가 14년동안 가지고 다니는걸 감사해야지. 그리고 난 코팅하는 곳도 몰라." "이젠 지갑 좀 바꿔요. 넘 오래되서 너덜너덜 하잖아. 전번에(3년전에) 사준 새 지갑으로 바꾸면 좋을텐데..." "그런데 난 이 지갑이 너무나 편해서 말야. 바꾸긴 바꿔야하는데...그게 맘대로 잘 안되네."
그러던 남편이 드디어 며칠전에 새 지갑으로 바꿨다고 귓뜸을 해 주었다.
헌 지갑을 어쨌냐고 물었더니, 잘 보관해 두었다고 했다. (하긴...말이 20년이지, 손때묻은 만큼 그 안에는 그만이 갖는 남다른 애착이 있었나보다.)
★새 지갑속...두 아들과 14년전의 내 모습 (지갑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남편의 지갑 내용물! 그 흔한 신용카드 한장 없는)
새 지갑을 내 얼굴에 가까이 대면서 마치 확인이라도 하는양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지갑속에 무엇이 들어있나 보여줄수 있겠냐고 물었다.
사실 난 남편의 지갑를 몰래 훔쳐보거나 하지 않는다. 아니 보아도 보는 듯 훤하기 때문에...
남편의 새 지갑속에는 두 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 그리고 비닐루 싼 내 사진...이 들어있었다.
얄팍한 지갑속를 보고 있노라니,코 끝이 찡해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이렇게 챙겨 다니면서, 시간이 나거나, 하던 일이 뜻대로 잘 되지 않을때 슬그머니 남몰래 꺼내 본다고 한다.
세상 살아가면서 힘들고 지칠때,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복돋아준다고도 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남편으로,아버지로써 그의 어깨에 실린 삶의 무게가 어찌아니 무거울까?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새 지갑을 돌려주며 난 속으로 다짐을 했다.
'올 봄에 꽃이 흐드러지게 필때쯤 꽃밭에서, 푸른 초원위에서,들판에서 될 수 있으면 많은 사진을 찍으리라. 그래서 내 남편에게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을 상큼하게 선물해야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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