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8년 전보다 빨라진 ‘서른’의 평창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이승훈(30)이 시간을 역주행 하고 있다. 8년 전보다 빠른 기록들을 쏟아내며 남아있는 매스스타트와 팀 추월에 대한 기대감을 점점 키우고 있다.
이승훈은 지난 15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오벌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에서 12분55초54를 기록했다.
1만m는 과거 이승훈의 주종목이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스벤 크라머르(네덜란드)를 제치고 깜짝 금메달을 땄던 종목이다. 그러나 현재는 새로운 종목인 매스스타트로 주력 분야를 바꿨다. 이번 대회에서 5000m와 1만m에 출전한 것은 자신의 기록 관리와 함께 대회 후반부에 열릴 주종목에 대한 훈련의 의미다. 메달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11일 5000m에서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을 당시 기록했던 6분16초96를 넘어 6분14초15로 기록을 줄인 이승훈은 1만m에서도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딸 때 기록한 12분58초55를 3초 가량 앞당겼다. 여기에 2011년 2월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월드컵시리즈에서 세웠던 자신의 개인 최고기록(12분57초27)도 경신했다.
5000m에서는 5위, 1만m에서는 4위를 했다. 오히려 경기가 모두 끝난 뒤 메달에 대한 아쉬움이 생길 정도로 기대 이상의 레이스를 펼쳤다. 몸 상태나 컨디션이 최상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은 이승훈이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사실상 첫 무대였다. 당시 스물둘이었던 나이가 서른이 됐고 그 사이 종목까지 갈아타 매스스타트에서 새로운 1인자가 돼있다. 하지만 이승훈은 꾸준한 체력 관리와 훈련으로 오히려 20대 초반 때보다 좋은 기록을 내며 ‘번외종목’에서까지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승훈이 랭킹 1위에 올라있어 금메달을 노리는 매스스타트는 쇼트트랙처럼 순위 싸움 성격이 강하면서도 400m 트랙을 16바퀴나 돌아야 한다. 특히 마지막 바퀴를 돌 때 순위에 가산점이 크게 붙어 마지막까지 체력과 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승훈은 5000m와 1만m에서 레이스 끝까지 노련하게 힘을 비축하는 모습을 보였다. 5000m에서는 마지막 두 바퀴를 돌 때의 기록이 각각 29초08와 29초18로 전체 12바퀴 가운데 가장 빨랐고, 1만m에서도 절반을 뛴 뒤 6000m 지점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해 마지막 바퀴에서 29초74로 가장 빨리 달렸다.
15일 1만m에서 동메달을 딴 니콜라 투몰레로(24·이탈리아)는 “1만m는 내가 좋아하는 종목이 아니다. 마지막 10바퀴를 돌 때가 너무 힘들고 그 중에서도 마지막 5바퀴는 전쟁하듯 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20대 초·중반의 선수도 쉽지 않은 장거리 레이스의 마지막에서 서른을 넘긴 이승훈은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훈은 “남은 두 종목은 더 자신있는 종목이다. 5000m와 1만m에 출전하고 그 결과로 다른 두 종목을 준비하는 데 정말 큰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훈은 18일 팀 추월 예선을 치르고 21일 결승, 24일에는 매스스타트에 출전한다. 진짜 메달을 노리는 종목들이다. 5000m와 1만m에서 충분한 자신감을 얻었고 몸을 회복할 시간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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