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편집국에서] ‘평창유감’에 대한 유감

含閒 2018. 2. 14. 11:59

[편집국에서] ‘평창유감’에 대한 유감


등록 : 2018.02.11 19:00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강원도 강릉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1차전 남북단일팀 대 스위스 경기를 마친 선수드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지 맘대로 단일팀 강요/과정의 눈물과 땀은 내 알 바는 아니요./(....)능력 따윈 중요하지 않아/흘린 땀보단, 북한 출신이 더 대접받는 사회로구나.’

벌레소년’이라는 얼굴 없는 한 래퍼의 ‘평창유감’이란 노래 영상이 2030 젊은 세대들에게 ‘핫’하단다.


인터넷 조회수가 100만 건에 육박한다. 쭉 한번 가사 내용을 훑어보니, 온통 현 정부에 대한 적개심만 가득한, 논할 가치도 없는 저열함 그 자체다. 그렇게 치부해버리고 말자니, 적어도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대한 표현들은 현 정부를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젊은층에 널리 퍼진 보편적 정서라는 게 영 찜찜하다.

얼마 전 만난 대학교수 지인은 이런 정서에 꽤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해 넌지시 얘기를 꺼냈더니 한결같이 격분에 가까운 부정적 견해를 쏟아내더란다. 2030에게 공정성은 그 어떤 것에도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됐더라고 그 교수는 해석했다.

그 마음, 100배 200배 이해한다. 영어유치원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은 제한적인데 방과 후 수업에서마저 선행학습이라는 이유로 영어를 가르치지 말라고 하고, 정부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금수저 전형’이 아니라고 강변하지만 대학교수들은 고등학생 자녀가 학종에서 높은 점수를 받도록 자신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올려놓고, 공공기관과 금융회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른바 ‘VIP리스트’를 만들어 특혜채용을 일삼고, 정부가 때려잡겠다는 집값은 되레 폭등하면서 제때 취업을 한다 한들 정상적인 노동의 대가만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는 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연일 전해지는, 기성세대가 만들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런 불공정한 민낯은 2030의 가슴 속에 켜켜이 분노로 쌓이고 있을 터.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가 이런 ‘헬조선’에서 2030이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며, 이를 억누르는 정부의 규제는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불공정한 횡포라고 저항하는 것도 이런 심리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유감인 건 마치 공정성이라는 잣대가 절대적인 것인 양, 또 모든 것을 다 정당화하는 것인 양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창 유감’을 흥얼대는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상대적으로 진입 문턱이 낮았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공정한 것인가, 부당한 것인가.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성과를 많이 내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똑 같은 월급을 받는 것은 어떤가.

가상화폐 투기가 마치 2030의 ‘정당한’ 몸부림으로 포장되는 건 더욱 유감스럽다. 가상화폐가 2030의 유일한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고 말하는 건, 도박밖에 탈출구가 없다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업도 포기한 채 수익률 수천 퍼센트의 허황된 꿈만 좇는 것, 행여 그렇게 우리 사회의 부가 재분배된다고 해서 그건 또 공정하고 정당한 재분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10일 저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의 스위스전 참패에 대한 2030의 반응은 냉담 그 이상인 듯하다. “거 봐라, 이러려고 단일팀을 만들었냐” “이게 스포츠 이벤트냐 정치 이벤트냐”… 기성세대라고 왜 이런 생각이 전혀 없으랴만, 그래도 젊은 세대들이 오직 한 방향만 보고 한 목소리만 내는 건 뭔가 고장이 나도 크게 났다 싶다. 비록 실낱 같기는 해도, 우리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조금 빼앗겼더라도, 그게 더 큰 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거라 믿는 2030도 일부는 보고 싶다. 설령 성화가 꺼진 뒤 북한이 입을 싹 씻고 등을 돌린다고 해도, 그렇다고 이런 노력조차 안 하면 아예 희망마저 없지 않겠는가. 이런 기억이라도 있어야 훗날 지금의 2030이 기성세대가 되어서도 북한과의 작은 끈이라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의 원죄가 있는 ‘꼰대’의 몰염치한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이영태 정책사회부장 ytle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