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일
장소를 가리지 않는 애국심
자신이 처한 현실이 아무리 작고 초라해도
안창호 선생은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 '애국'을 실천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한인들의 성실함을 드러내는 것은
조국의 독립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매우 작은 일이었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이는 작은 첫걸음이라 믿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라 여기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애국의 첫걸음입니다.
# 오늘의 명언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 도산 안창호 -
2017년 3월 2일
때늦은 후회
18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사무엘 존슨이
무더운 여름날 장터 한쪽에서 몇 시간을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반나절이 지나자 걱정이 된 제자가
스승의 낯선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스승님,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그러자 사무엘 존슨이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오래전 우리 아버지께서 이 자리에서 헌책방을 하셨다네...
그날도 아버지는 장사를 위해 일어나셨지만, 몸이 안 좋으셨는지
나에게 하루만 대신 장사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으셨었지."
제자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사무엘 존슨은 한참 지나서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 집이 시장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창피한데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면서 거절했다네.
그런데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아버지는 그날 이후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네.
오늘은 그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다네."
몇 해 전, 모 금융회사 CF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젊은 아빠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실시했는데
아이와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뭐고,
아이의 사진은 지갑에 넣고 다니는지 등등에 관해 물었습니다.
대부분 아빠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반대로 물었습니다.
아이 대신 그 자리에 '부모님'을 넣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
부모님의 좋아하는 음식은 뭐고, 부모님 사진은 지갑에 넣고 다니는지를요.
그러자 젊은 아빠들은 죄송한 마음에 일제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앞으로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우린 항상 부모님이 늙지 않고 곁에 있을 거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곁을 떠나셨을 때 뒤늦은 후회를 합니다.
시간은 항상 멈춰 있는 게 아닙니다.
# 오늘의 명언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 샨티데바 -
2017년 3월 3일
의지가 절망을 이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국방성 장관이었던 뉴턴 베이커가
한 야전병원을 방문했을 때 심각한 상처를 입은 미군 병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두 다리와 팔 하나, 그리고 한쪽 눈까지 실명한 상태였습니다.
베이커는 안타까운 마음에 한참을 머물며 그를 지켜봤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베이커는 다시 그 병동을 들렀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사를 간호하던 간호사와 결혼하여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 베이커는 장관직을 퇴임하고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이사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박사 학위 수여식 때 베이커는 깜짝 놀랐습니다.
크게 다쳤던 그 병사가 휠체어를 타고 박사학위를 받으러
단상으로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베이커는 그 병사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병사는 베이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습니다.
"장관님, 은퇴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보람 있는 일이 많이 있으니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심한 부상으로 안타깝게만 여겼던 젊은 그 병사가
오히려 베이커를 위로해준 것입니다.
어떠한 절망도 인간의 의지보다 강할 수는 없습니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비극과 절망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역경과 고난이 찾아와도 희망을 품으십시오.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하루하루 굳은 의지로 헤쳐 나간다면
희망은 현실이 되어 우리 삶에 우뚝 서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역경은 당신에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할 용기를 준다.
- 앤디 그로브 -
2017년 3월 7일
아이들의 심장이 된 할아버지
재균이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재균이 아빠는 뇌졸중으로 일을 못 하는 상황이었고,
할아버지가 학원 셔틀버스를 운전해서 버는 수입이 전부였기에
심장 수술비 1천만 원은 너무도 큰돈이었습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아이를 그냥 하늘나라로 보내자..."
어떤 도움이 손길이 없어 결국 수술을 포기하려던 그때,
한 할아버지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습니다.
그 덕분에 재균이는 다섯 번의 대수술이 있었지만
건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11살이 된 재균이는 오랜만에 도움을 주신 할아버지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얼굴을 이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찾은 곳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무려 4,242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한 그는 오뚜기 그룹의 창업주인
故 함태호(86) 명예회장입니다.
1992년부터 24년 동안 심장병 어린이를 후원해왔습니다.
자신이 도움을 준 어린이들이 보낸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해줄 정도로
그의 후원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때론 물질을, 때론 시간을,
때론 진심 어린 마음을 이웃과 나누어보세요.
나의 진심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
- 게오르크 헤겔 -
2017년 3월 9일
친구, 하염없이 고마운 이름
옛날 어느 마을에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친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은 남자는
사형을 당하기 전에 어머니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죽게 해달라고 왕에게 간청했습니다.
왕은 남자에게 그럴 수 없다고 하자
남자의 절친한 친구가 나서 자기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 있을 테니
친구를 집에 갔다 오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왕은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네 친구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자 그는 기꺼이 자기가 친구 대신 죽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은 결국 그 친구를 대신 감옥에 가두고 남자에게
나흘간의 말미를 주고 풀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흘째 되는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풀어준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왕은 남자에게 말했습니다.
"자 보아라, 네 친구는 너를 배신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네 친구를 믿고 있느냐?"
왕의 물음에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네. 저는 아직도 제 친구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 피치 못할 사정으로 늦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되자 약속한 대로 친구에게 사형을 집행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이제 제가 돌아왔으니 제 친구를 풀어주십시오."
왕이 늦은 이유를 물으니 남자는 말했습니다.
"큰비로 강물이 불어나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어 늦었습니다.
이제 친구를 풀어주시고 저에게 사형을 집행해 주십시오."
왕은 두 사람의 변함없는 우정과 신뢰에 감탄하여
두 사람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무색'이라서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는 나보다 더 슬퍼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나보다 더 기뻐하는 변함없는 친구.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존재만으로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친구.
인생에서 그런 '진짜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그런 친구를 기다리지만 말고
내가 먼저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 '진짜 친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손을 내밀어야 상대방도 마음을 열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명언
친구는 나의 기쁨을 배로 하고, 슬픔을 반으로 한다.
- 키케로 -
2017년 3월 11일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없을 뿐이다
미국의 어느 노인학교에 70대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일과는 그저 할 일 없이 멍하니 앉아서 하늘만 쳐다보거나
다른 노인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어느 날, 젊은 자원봉사자가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그냥 그렇게 앉아 계시는 것보다 그림을 배워보시면 어떠세요?"
"내가 그림을? 에이, 나는 붓을 잡을 줄도 모르는데..."
"그야 배우시면 되지요."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나는 일흔이 넘었는걸...."
젊은 자원봉사자는 할아버지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할아버지의 연세가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문제 같은데요?"
젊은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는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곧 미술실을 찾아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더욱이 풍부한 인생 경험으로 인해 할아버지의 그림은
깊은 성숙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일은 할아버지의 인생을 풍요롭게 장식해 주었습니다.
이후 많은 사람의 격려 속에서 수많은 그림을 남겼으며
101살의 나이에 22번째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삶을 마쳤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바로 '미국의 샤갈'이라 불리던
미술가 해리 리버맨입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막상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도, 시작하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늦었다 하는 그때가 가장 빠른 때이며,
아무리 늦게 시작해도 시작하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살면서 무엇 때문에 할 수 없는 게 아니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없을 뿐입니다.
남보다 늦게 시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 포기해버린 것을 기꺼이 하는 용기 말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새로운 성공이 찾아옵니다.
# 오늘의 명언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을지 생각하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 해리 리버맨 -
2017년 3월 14일
조선을 섬긴 푸른 눈의 어머니
가난과 전염병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에 시달리던 지난 1912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푸른 눈의 간호사가 찾아왔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학 공부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안락한 삶을 뒤로한 채 32살 처녀의 몸으로
조선에 오게 되었습니다.
조선에 도착한 그녀는 조랑말을 타고 자주 전국을 순회하며
한센병 환자를 포함해 온갖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돌보고 다녔으며
자신의 이름을 갖지 못하고 '큰 년', '작은 년', '지리산 댁' 등으로
불리던 수백 명의 여성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순회할 때마다 온몸에 들러붙은 이를 잡느라
밤을 지새우는 것이 그녀의 삶이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의 보건의료시설은 매우 열악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녀는 광주 제중병원을 중심으로
아픈 사람들을 돌보고 가난한 여인들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수양딸 13명과 나환자 아들 1명 등
14명의 아이를 입양해 기르기도 했습니다.
한센인을 돌보고 고아들을 자식 삼아 살던 그녀는
정작 자신은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궁핍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돕기 위해 자신의 생활비마저 쪼개어 썼던 것입니다.
그렇게 22년의 세월을 조선에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말했습니다.
"내일 나 먹기 위해 오늘 굶는 사람을 그대로 못 본 척 할 수 없으며
옷장에 옷을 넣어놓고서 당장 추위에 떠는 사람을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평생을 누렇게 바랜 옥양목 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보리밥에 된장국을 먹었던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거 또한 사치로 생각했던 그녀는 먹을 것을 줄여가며
모으고 모아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결국에 그녀는 영양실조로 5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며,
자신의 장기마저도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걸인에게 나눠주고 남은
동전 7전, 강냉이가루 2홉, 그리고 반쪽짜리 담요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죽자 천여 명에 달하는 장례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애통해하는 사람들은 '어머니'라 부르며 함께 했습니다.
푸른 눈을 가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어머니로 살다간 그녀는
서서평(엘리자베스 쉐핑) 선교사입니다.
평생을 가난한 자, 병든 자를 위해 헌신한 봉사와 사랑, 그리고 섬김...
그녀의 삶은 너무도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오늘도 세상 곳곳에 전하고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자신이 섬기고 있음을 의식치 않으면서 봉사할 수 있는 자는
뛰어난 섬김의 사람이다.
- 블라비스키 -
2017년 3월 15일
노벨상의 시작
1833년, 노벨이라는 사람이 스웨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화학자요 발명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고 33세에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신문 기사를 보던 노벨은 깜짝 놀랐습니다.
기사 내용은 노벨 자신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노벨의 형을 노벨로 착각하고 '노벨, 사망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던 것입니다.
버젓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노벨한테는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라고
되어 있는 기사 내용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는 순간 노벨은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내가 죽는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을까?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노벨은 복잡한 심경으로 숙고한 끝에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지원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노벨상 제도입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에 관해 생각해 봤을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라는 걸 맞이합니다.
하지만 죽음 뒤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 오늘의 명언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당신은 옳은 삶을 살 것이다.
- 스티브 잡스 -
2017년 3월 17일
다름과 틀림
누군가에게 길을 묻었습니다.
분명 같은 곳을 묻는데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대답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포장마차가 보여요.
거기서 300m 직진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번엔 목사님에게 길을 물어봅니다.
"거기 교회를 지나서 100m 가면 2층에 교회가 보이고요.
그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사람들에게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뭐라고 말할까요.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나 신부님은 '십자가'라 할 것이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할 것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말하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서로를 비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외면하거나 비판으로 '틀림'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먼저 상대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입니다.
그러니 내 생각과 다르다고 '틀렸다'고 하지 마십시오.
때론 생각지도 못한 지혜를 나와 다른 상대에게 배울 수 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 오늘의 명언
남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라.
- 존 그레이 -
2017년 3월 18일
누구에게도 없는, 너에게만 있는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함께 놀아주지 않아 소년은 늘 외톨이였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중에 교실에 쥐가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아이들은 도무지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있을 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 친구는 앞이 안 보이지만 청력이 좋잖아!"
일순간 주위가 조용해졌습니다.
소년은 귀를 기울였고, 금방 벽장 속에 숨은 쥐를 찾아냈습니다.
쥐는 쉽게 잡혔고, 덕분에 수업을 무사히 마친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그를 불러 칭찬했습니다.
"너는 비록 눈은 보이지 않지만,
이 반 누구에게도 없는 능력을 갖췄구나. 고맙다."
소년은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탁월한 청력을 가진 스티비 원더입니다.
그는 얼마 후 13살에 첫 앨범을 발표했으며,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라는 곡을
세계적으로 히트시켰습니다.
신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영역을 주셨습니다.
스티비 원더에게 '시력'은 가질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청력'은 남들보다 뛰어난 그만의 영역이었습니다.
신이 주신 자신만의 영역에 감사하며 매진한다면
빛나는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시력을 잃어버린 사람일지라도 꿈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 스티비 원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