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강가에서 /백거이/삼도헌의 한시산책 407
저녁 강가에서 읇조리며[暮江吟]
백거이(白居易)
서호풍경(서예세상 중국답사 때 진병근 선생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一道殘陽鋪水中(일도잔양포수중) 한 줄기 석양 물속으로 퍼지니
半江瑟瑟半江紅(반강슬슬반강홍) 강의 반쪽은 푸르고 반쪽은 붉도다.
可憐九月初三夜(가련구월초삼야) 아름다운 구월 초사흘 밤
露似眞珠月似弓(노사진주월사궁) 이슬은 진주 같고 달은 활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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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주(杭州)의 상징인 거대한 인공호수인 서호(西湖). 태양이 서호의 서쪽으로 넘어가면서 석양이 물 위에 넓게 퍼지니 수면은 절반이 푸른색이고 절반은 붉은 색으로 교차된다. 때는 음력 구월 초사흘이니 지금의 10월 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은 진주 같고 달은 활 같이 보인다. 여기서 殘陽(잔양)은 막 지려는 해를 말하고, 瑟瑟(슬슬)은 푸른색의 보석으로 강물의 색이 푸름을 의미한다. 可憐(가련)은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뜻이니 석양이 지고 달이 떠 오른 서호의 고운 저녁풍경을 읊조린 것이다. 특히 색채감이 강하게 대비되어 시각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중국속담에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일찍이 13세기 항주에 왔던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도 항주를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한 바 있다. 서호(西湖)에는 두 사람이 쌓은 제방이 있다. 이 시의 저자인 당나라의 백거이가 항주자사(杭州刺史)로 3년 동안 있을 때 쌓은 제방이 백제(白堤)이고, 송나라의 소동파가 관리로 있을 때 쌓은 제방이 소제(蘇堤)이다.
어느 해 가뭄이 심하여 백성들이 서호의 수문을 열어 줄 것을 요청하자 백거이는 수문을 열어 가뭄을 해소하게 하였다. 그는 서호의 제방을 보수하고 쌓은 업적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들었다. 서호의 물과 연꽃을 보존하는 것이 관리의 임무였지만, 그는 백성들의 고초를 먼저 생각하고 선정을 펼쳤던 것이다.
소동파 또한 서호의 제방을 쌓은 백성들을 대접하기 위해 술과 간장과 식초를 준비하라고 하였는데 이를 잘못 알아들은 관리들이 술과 간장과 식초를 돼지고기에 넣고 삶아 버렸다. 이것이 바로 동파육(東波肉)이다. 그는 동파육을 백성들에게 대접하면서 그들의 공을 기렸다고 하는데 지금도 항주의 특별식으로 남아있다.
이와 같이 거대한 서호에는 두 사람이 쌓은 제방이 있고, 넓은 강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 흔적이 전해지고 있다
백거이(白居易, 772 ~ 846)
자는 낙천(樂天),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 시호는 문(文). 허난 성[河南省] 신정 현[新鄭縣] 사람이다. 그는 우리에게 자인 백낙천으로 더 잘 알려진 당나라 시인이다.
‘시선(詩仙)’이라 일컬어지는 이백은 시를 쓸 때 한 잔 술에 막힘없이 한 번에 써 내려갔다고 하며,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두보는 열 번의 손질을 했다고 한다. 백거이는 시를 탈고할 때마다 글을 모르는 노파에게 먼저 들려준 뒤 노파가 알아들었는지를 묻고, 노파가 뜻을 알 때까지 몇 번이고 고쳤다고 한다. 이렇게 그의 시는 쉬운 어휘로 이루어져 있으며, 통속적이면서도 당시의 사회상이 반영되어 있다.
백거이는 800년 29세 때 최연소로 진사에 급제했다. 그가 항주에서 벼슬을 한 때는 당나라 장경(長慶) 2년인 822년. 중앙의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항주자사(杭州刺史)를 자원했다. 3년 동안 항주에서 벼슬을 한 뒤 소주자사(蘇州刺史)로 옮겼다가 조정에 복귀하여 비서감(秘書監)·형부시랑(刑部侍郞)·하남윤(河南尹) 등의 고위직을 거쳤으며, 842년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끝으로 관직에서 은퇴했다.
한림학사 시절의 동료 5명은 모두 재상이 되었으나 그는 스스로 '어옹'(漁翁)이라 칭하며 만족해 했다. 이같이 성실하고 신중한 태도로 인해 그는 정계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다. 58세가 되던 829년 낙양에서 살면서 시와 술과 거문고를 세 친구[三友]로 삼아 '취음(醉吟)선생'이란 아호를 쓰며 세월을 보냈다. 831년 낙양 교외의 향산사(香山寺)라는 절을 수리하여 '향산거사'라는 아호를 쓰며 불교에 심취하였다. 846년 8월 세상을 하직하고 낙양(洛陽)의 용문산(龍門山)에 묻혔다.
그가 지은 작품의 수는 대략 3,840편인데 작가와 작품의 수가 크게 증가한 중당시대라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작품은 형식이 다양하여 고체시(古體詩)·금체시(今體詩:율시)·악부(樂府)·가행·부(賦)의 시가에서부터 산문작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학형식을 망라했다.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비판하고, 서민적이고 쉬운 필치로 문학의 폭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장한가〉, 〈비파행〉, 〈진중음(秦中吟)〉, 〈신악부(新樂府)〉, 〈두릉의 노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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暮江吟作者简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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