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題水墨白鷺圖수묵화로 그린 백로도에 쓰다ㅡ성삼문(삼도헌의 한시산책 392)

含閒 2016. 1. 25. 09:03

수묵화로 그린 백로도에 쓰다ㅡ성삼문(삼도헌의 한시산책 392)






김홍도 <백로도> 간송미술관 소장



題水墨白鷺圖[수묵화(水墨畫)로 그린 백로도(白鷺圖)에 쓰다]


성삼문(成三門)


 雪作衣裳玉作趾 

窺魚蘆渚幾多時

偶然飛過山陰縣

誤落羲之洗硯池


눈으로 의상을 짓고 옥으로 발을 지어

갈대밭 물고기를 엿보았나 얼마나 많은 세월을

우연히 날아서 산음현을 지나다가

실수로 왕희지의 세연지에 떨어졌구나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조선초기 뛰어난 유학자이자 사육신(死六臣) 가운데 한 분인 성삼문 선생. 그는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은 집현전의 학자로 음운 연구를 위해 요동 땅을 13차례나 왕래하면서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다.

   선생이 어느 해 연경(燕京)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의 시작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백로도(白鷺圖)에 어울리는 화제시(畫題詩)를 써 달라고 요청한다. 선생은 주저하지 않고 즉석에서 붓을 들고 두 구절을 휘호하자 그제서야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채색된 백로도가 아닌 수묵(水墨)으로 그린 묵로도였다. 선생은 그림을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두 구를 지어 마무리 한다. 이를 보고 골탕먹이려고 작정한 중국 사람들이 탄복한다.

   이처럼 이 시는 반전의 맛이 있다. 앞의 두 구에서는 백로라고 들었기에 눈처럼 흰 옷을 입고 옥과 같은 다리를 가진 백로가 유유히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묵로도를 보여주니 뒤의 두 구에서는 서예의 성인인 王羲之(왕희지)가 그의 고향 산음현에서 날마다 글씨공부를 열심히 하여 연못[洗硯池]이 새까맣게 되었다는 고사를 인용한다. 즉 왕희지의 먹물연못에 백로가 빠지는 바람에 묵로가 되었다고 재치있게 결론지으면서 시를 갈무리한다. 선생의 즉흥적인 시작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시이다.


성삼문(成三問 ; 1418~1456)


   성삼문의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세종 무오년에 문과에 오르고, 정묘년에 중시에서 장원으로 뽑혔다. 일찍이 홍주 외가에서 태어날 때에 공중에서 났느냐.”는 소리를 세 번이나 물었기에 삼문(三問)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는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복위에 실패하여 능지처참을 당한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아버지 성승과 세 동생 및 세 아들도 모두 처형되어 멸문의 화를 입었다.

   그의 호 매죽헌(梅竹軒)은 매화와 대나무가 있는 집이란 의미이니 사군자 가운데 충절의 표상인 매죽을 당호로 사용한 것을 보면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듯하다. 뒤에 숙종이 충문(忠文)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영조 무인년(1758)에 이조 판서로 증직되었다.






삼도헌의 한시산책 392(2016. 1. 22)

서예세상(http://cafe.daum.net/calli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