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도연명의 음주(삼도헌의 한시산책 323)

含閒 2014. 9. 27. 01:22

도연명의 음주(삼도헌의 한시산책 323)

 

 

 

 

 

감국(甘菊)

 

 

 

 

 

飮 酒[술을 마시며]

 

陶 潛(字; 淵明, 365~427)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사람 사는 곳에 초가를 엮었지만,

                而無車馬喧。(이무거마훤)   수레나 말이 시끄럽게 하지 않는다.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마음이 멀어지면 땅은 절로 외지는 법.

                采菊東籬下, (채국동리하)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한가롭게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산 기운은 저녁 무렵 아름다운데,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날으는 새들 서로 더불어 돌아온다.

                此中有眞意, (차중유진의)            이 중에    참된 뜻이 있거늘,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분별하려 하다 이미 말을 잊었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옛부터 문인묵객들은 한시 속에 술을 많이 다루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도잠(陶潛)인데 이름보다 자인

연명(淵明)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의 대표적인

전원시인이다. 도잠은 중년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집 주변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

살았기 때문에 오류선생(五柳先生)으로도 불린다.

국화를 좋아하여 집주변에 국화를 심고 늘 곁에

두고 완상하였다고 한다. 또한 시를 즐겨 지었는데

전원으로 귀환하면서 읊조린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전원시의 원조가 되었다. 특히 음주시(飮酒詩) 20수를

지었는데 위의 시는 대표작인 다섯 번째 시이다.

이 싯귀 가운데 5,6구에 나오는“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롭게 남산을 바라본다”는 구절은

인구에 널리 회자되면서 많은 화가들이

그림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국화는 모든 꽃이 진 가을에 피기 때문에

‘오상화(午霜花)’,‘선선상중국(鮮鮮霜中菊)’,

‘가우(佳友)’,‘절화(節華)’ 등으로 불리면서 정절과

은일의 꽃으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국화는 본성이

서방(西方)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쪽 울타리 밑에

심는 것으로 되어 있어 동리가색(東籬佳色)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특히 도잠의 싯귀에 등장하면서

선비들의 서화작품에도 빈번하게 인용되었다.

조선의 화가 정선이 ‘동리채국도’와 ‘유연견남산도’를

그린 사례도 이 때문이다. ‘采菊’을 ‘採菊’ 으로 한 본도 있다.

 

국화에 대해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국화는 관상용과

약용국화로 분류하는데, 식용으로 쓰거나 약재로

활용하는 것은 감국(甘菊)이다. 감국은 노란 꽃잎

때문에 황국(黃菊)이라고도 하며 9~11월쯤 꽃이 필 때

채취해 음지에서 건조한 후 약재로 사용한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려 꽃잎을 차로 우려 마시기도 한다.  

동의보감에서 감국은 “몸을 가볍게 하고 늙지 않게 하며

장수하게 한다. 그리고 근골을 강하게 하고 골수를 보하며

눈을 밝게 한다. 술을 마시고 깨지 않을 때 이용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본초강목에서도 감국차를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血氣)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는다.

위장을 평안케 하고 오장을 도우며 사지를 고르게 하고 감기.

두통. 현기증에 유효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은 가까운 분들과 국화차 한 잔을 나누어 마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위에 소개한 도연명의 이 시를 읊조리면서...

 

 

 

도연명[陶淵明, 365~427]

 

 

중국 동진(東晉), 송나라 때의 시인. 이름은 잠(潛),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다. 29세에 벼슬길에 올랐으나

전원생활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41세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사임하고 재차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관직을 사임하면서 쓴 시(詩)가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이후 향리의 전원에서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63세에 생애를 마쳤다.

그의 시는 사언체(四言體) 9편과 오언체(五言體) 47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따스한 인간미와 고담(古談)의 기풍이 서려있다.

 

 

 

 

 

정선, <동리채국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선, <유연견남산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서예세상 삼도헌글방(http://cafe.daum.net/callipia)

 

 

 

 

 

 

 

삼도헌의 한시산책 323호, 2014년, 9월,26일 발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