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大雪 申欽

含閒 2014. 9. 3. 14:13

 

 

大雪          申欽

 

 

塡壑埋山極目同 학매산극목동    골 메우고 산을 덮어, 천지가 한 세계

瓊瑤世界水晶宮 경요세계수정궁    영롱한 옥빛세상, 반짝이는 수정 궁궐이로다

人間畵史知無數 인간화사지무수    인간 세상 화가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難寫陰陽變化功 난사음양변화공    음양 변화 그 공덕을 그려내기 어려우리라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명종 21년) ~ 1628(인조 6년) 조선 중기의 문신.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더불어 조 선 4대 문장가로 꼽힌다. 본관은 평산, 자는 경숙(敬淑)이며, 호는 현헌(玄軒).상촌(象忖).현옹 (玄翁).방옹(妨翁).시호는 문정(文貞)/本寬은 평산(平山)이다. 개성도사 승서(承緖)의 아들로 태어나 1586년 (선조 19년)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판서, 좌.우의 정을 거쳐 1627년(인조 5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아들 익성(翊聖)이 선조의 딸정숙(貞淑) 옹 주에게 장가들어 동양위(東陽尉)가 되었으며 1613년 (광해군 5년) 영창(永昌)대군의 옥사가 일어났을 때 선조의 유교칠신(遊敎七臣)중의 한 사람으로 관직에서 쫓겨나고 뒤에 춘천에 귀양갔다. 인조반정이 되자 우의정에 오르고 대제학을 겸하였다. 상위.율법.산수.의복에 관한 서적에까지 통했으며 육경(六經)을 바탕으로 하는 문장이 뛰어나 월사(月沙),계곡(谿谷),택 당(澤堂)과 더불어 4문장가라 불리며 글씨도 잘 썼고, 이항복(李恒福)동과 함께 선조실록(宣組實錄)의 편찬사업에도 참가하였으며 저서로는 상촌집(象忖集)이 있다. 선조 18년(1585) 진사시와 생원시에 차례로 합격하고 1586년 승사랑으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1583년 외숙 송응개가 이이를 비판하는 탄핵문을 보고 “이이는 사림의 중망 을 받는 인물이니 심하게 비난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주장하여 당시 실권세력인 동인으로 부터 배척받아 겨우 종9품직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도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으로 활약하여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평으로 승진하였다. 그 후 병조, 예조판서, 상호군 등을 역임 하다가 1613년 계축옥사시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을 보필한 유교7신으로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616년 인목대비 폐비 문제로 춘천에 유배되었다. 전란과 정변에 휘말린 체험으로 그의 학문적 깊이는 더해져 많은 시조와 글을 남겼다. 1623년 인조 반정으로 벼슬길에 다시 올라 1627년 영의정에 올랐다가 사망하였다. 상촌(象村)은 7세의 어린 나이에 양친을 여의는 불행을 당하였다. 1572년 4월에 송도(松都)에서 어머니가 나이 겨우 41세에 돌아가시고 넉달 뒤인 그 해 8월에 아버지 또한 42세로 개성(開城) 임지(任地)에서 타계하시니 천애(天涯)의 고아가 된 그는 어린 동생(鑑)과 함께 외조부모의 손에서 양육되었으니 7세부터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를 때까지 10여년간의 유소년기와 청년 전기를 충남 대덕군 동면 주산리(현 대전시 동구 주산동ㆍ古名 古堯洞)에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