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우승(高尔夫球冠軍)

딸의 우승에..가난한 '캐디 아빠' 닭똥 같은 눈물/김보경 'E1 채리티오픈' 1위

含閒 2013. 6. 2. 22:01

딸의 우승에..가난한 '캐디 아빠' 닭똥 같은 눈물

한겨레 | 입력 2013.06.02 20:50 | 수정 2013.06.02 21:40

[한겨레]김보경 'E1 채리티오픈' 1위

5년만에 KLPGA 정상 올라
집안 형편 탓 아버지가 캐디
"4번 아이언 대신 7번 우드를…"
9번홀서 딸 승리에 결정적 조언

우승한 김보경(27·요진건설)은 동료들의 축하 세리머니에 흥겨워 그린 위를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그런 신이 난 김보경을 지켜보며 그린 한쪽에 서 있던 캐디는 닭똥 같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아무리 참으려 했지만 참을 수 없다.

늙수그레한 캐디는 눈물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였다. 순간 김보경의 동료 선수들이 캐디에게 다가와 화려한 꽃잎과 물을 뿌리며 축하해 준다. 캐디의 튼튼한 두 장딴지에는 파스가 붙어 있다. 다행히 뿌려준 물이 얼굴을 흘려내려 눈물을 감출 수 있었다.

김보경의 동료들은 그 캐디에게 "아버님 축하드려요"라고 진심으로 말을 건넨다. 캐디는 바로 김보경의 아버지 김정원(57)씨였다. 딸과 숱하게 다투며 견뎌 온 지난 9년이었다.

2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E1 채리티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김보경의 아버지이자 캐디인 김씨는 놀랍게도 골프를 전혀 못 친다. 골프채를 휘둘러 보지도 않았다. 다른 골프 선수들의 아버지처럼 사업차 필요해 골프를 하다가 취미가 되며 딸을 골프에 끌어들인, 그런 여유 있는 아버지가 아니다. 10년 전까지 부산에서 조그만 잡화가게를 했다.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나마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심장 수술을 받느라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수술비로 집안의 돈을 다 썼다. 다행히 딸은 골프를 잘 쳤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 가르친 골프가 아니다. 김씨의 남자 후배가 "딸의 신체조건이 좋으니 실내 골프장에라도 데려가 골프를 가르치라"고 권유해 시작한 골프다. 그러니 다른 선수들처럼 유명한 골프 코치에게 레슨을 받은 적도 없다. 타고난 체력과 집중력으로 딸은 골프를 잘 쳤다.

심장병 수술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김씨는 할 일도 없고, 대회에 나가는 딸을 도와줄 캐디를 고용할 돈도 없어 무작정 캐디백을 메기 시작했다. 남들은 캐디의 도움을 받으며 경기를 했지만 김보경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해야 했다. 그린 위에 올라간 공의 라이(공을 칠 방향)도 보지 못하는 캐디였다. 게다가 성격은 정반대. 김씨의 성격은 다혈질에 급했고, 딸은 차분하고 낙천적이었다. 딸은 형편이 어려워 캐디백을 메고 따라오는 아버지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씩 골프에 대해 알면서 아버지의 잔소리도 늘었다.

2008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처음 우승을 했지만 김보경의 가장 역할과 아버지 김씨의 캐디 역할은 변함이 없었다. 체계적으로 레슨을 받지 않으니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후배들은 치고 올라왔고, 김보경은 자신의 골프가 어디가 문제인지 알 수도 없었다. 선수 딸과 캐디 아버지의 갈등은 최고점으로 치달았다. "2년 전엔 최악이었어요. 답답했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다행히 레슨 전문 프로를 한두번 만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치면서 고비를 넘겼어요."

아버지와 딸은 고향인 부산에 살아,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대회장으로 움직인다. 골프장이 많은 경기도에 이사 올 형편도 안 된다. 남들이 다 하는 외국에서의 동계훈련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이날 김보경의 우승에 아버지 캐디 김씨는 '보기 드문 결정적인 조언'을 해줬다. "9번홀(파4)에서 두번째 샷을 4번 아이언으로 하려고 아이언을 꺼내려는 순간, 아버지가 '7번 우드를 잡아라'라고 권유하셨어요. 반신반의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 우드를 쳤고, 180야드를 날아가 하마터면 홀에 들어갈 뻔했어요. 이 홀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어요." 김씨는 "딸이 우승해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쁘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묵묵하게 못난 아빠와 같이 생활해준 것이 정말 고맙다"며 딸을 고마워했다. 김씨는 아직 심장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보경은 이날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 스프링스 골프장(파72·6496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날 3라운드에서 버디 4개에 보기 1개를 곁들여 3타를 줄이며 합계 10언더파 206타를 기록해, '슈퍼 루키' 김효주(18·롯데)를 2타 차로 제치고 생애 두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상금 1억2000만원을 받은 김보경은 시즌 상금 랭킹 6위(1억5500만원)로 올라섰다.

마지막날 동타로 우승 경쟁을 시작한 김보경과 김효주는 10번홀까지 동타를 유지하다가 김보경이 14번홀(파3), 16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김효주를 제쳤다. 김보경은 "이번 대회 시작하기 전날 우승 재킷을 입는 꿈을 꿨는데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기뻐했다. 아버지 캐디 김씨는 말없이 짐을 챙겼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천/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nihao@hani.co.kr

 

 

[취재파일] 처녀 가장 김보경, 5년 만에 우승컵 번쩍

레슨 한 번도 안받고..골프 '문외한' 아버지와 통산 2승 따내

SBS | 김영성 기자 | 입력 2013.06.03 10:18

 

"집 식구들 밥 안 굶기려면 제가 열심히 뛰어야지요..체력이 될 때까지 뛸 겁니다"

"초등학교 때 골프 시작하고 지금까지 누구한테 정식 레슨 받아 본 적 한 번도 없어요.. 그냥 혼자 하루 종일 연습 하다보니 골프에 대한 눈이 뜨이더라구요.."

"캐디 백 메시는 아버지는 골프를 한 번도 쳐 보신 적이 없는 분이세요..그렇게 9년을 함께 해 오셨어요"

경기도 이천의 휘닉스스프링스 골프장에서 끝난 E1 채리티 오픈에서 '슈퍼루키' 김효주를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오른 김보경은 다른 우승자들처럼 들뜨거나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자수성가한 27살 처녀 가장 답게 우승 인터뷰도 아주 담담하고 의젓했습니다.

김보경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아가씨'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삼촌이라고 불렀던 아버지의 후배 권유로 동네 실내 연습장에 가서 골프를 처음 접했답니다. 실내연습장 사장에게 기본적인 스윙을 익히고 정식 레슨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골프장 그린피가 없어 중학교 2학년 때까지 2년간 필드에 나간 게 10번도 안 되고..그렇다보니 100타를 깨는 데도 2년이 넘게 걸렸답니다.

동네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했던 아버지는 경제 형편도 안 좋고 딸의 골프 재능도 별로인 것 같고..해서 골프를 그만두라고 했지만 김보경은 한 번 시작한 건 끝을 보는 성격이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종일 골프 연습만 했답니다. 퍼팅이 안되면 3~4시간씩 퍼팅만 하고 샷이 안되면 잘 될 때까지 그 샷만 죽어라..했다는 겁니다.

열심히 하다보니 스코어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초에 처음 100타를 깨고 탄력이 붙어 80대 타수에 진입했고.. 내친 김에 부산 지역 대회에 나가 3등을 하고 나니 아버지도 딸의 재능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아버지에게 병마가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대수술을 받고 가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은 점점 어려워갔고 김보경은 이 때부터 혼자 모든 걸 해결했습니다.

돈이 없어 남들 다 가는 동계 전지 훈련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돌봐주신 연습장 사장님 덕분에 연습은 무료로 원 없이 했다네요..

집안 생계를 자신이 해결해야 했기에 고 3때 프로로 전향하고 이듬해인 2005년 본격적으로 투어에 뛰어들었습니다.

데뷔 첫 해 상금 2900만원을 벌었고 2006년부터는 스폰서도 생겼습니다. 그래도 돈을 아껴야 했습니다.

전문 캐디를 쓸 수도 있었지만 그 비용이 아까워 골프의 '골'자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캐디 백을 메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마침 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돼 아버지도 선뜻 받아들이셨습니다.

처음엔 답답했습니다.

클럽이 어떻게 다르고 그린 경사는 어떻게 읽는 건지 전혀 모르시는 아버지와 실전에서 의논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했습니다..시간이 약이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보신 아버지도 골프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김보경은 데뷔 4년차였던 2008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아버지와 호흡을 맞추며 초대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생애 첫 우승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다시 신설 대회인 E1채리티오픈에서 아버지와 또 한번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인고의 세월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법도 했지만 이 무뚝뚝한 부산 아가씨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아버지는 뒤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귀띔해주었습니다.

김보경은 자기 스스로를 무미건조하고 단순하고,감정 기복이 없다고 평가합니다.

아마 그래서 중요한 승부처에서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갖추게 된 건지도 모르지요.. 정식 레슨 한 번 안받고 골프를 독학으로 해서 우승을 두 번이나 했으니 공부로 따지자면 사교육 한 번 안받고 자기 주도형 학습으로 서울대에 입학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보경에게, 그동안 레슨은 안 받았더라도 혹시 골프의 멘토는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답은 아주 단순하고 명료했습니다.

"그런거 없십니더.. 중계 보고 누구 따라하고 그럴 시간에 연습 1시간이라도 더 하는 게 나아예.."

순간, 인터뷰 시간을 너무 오래 빼앗았다는 생각에 미안해졌습니다.
김영성 기자yskim@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