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在生活裏)

[스크랩] 綠苑 李 文 浩선생의 일대기 - 기구한 인생 서사시[4편]

含閒 2013. 3. 21. 09:52

 

기구한 인생 서사시

 

-밤의 길이 1,300 m

 

 

綠苑 李 文 浩

 

 

              훈련과 야간 행군

 

                        1951년 7월

      직장에서 소집한 20여명을 태운 목탄차

      힘겹게 터덜거리며 郡 소재지에 도착

      머리를 박박 깎고 저녁 식사 후 열차를 갈아타고

      얼마를 갔는지 어딘지 모를 곳에 내려

      인원을 더하여 행군하기 시작했다

       

       

      낮이 되면 나무 그늘에서 쉬고 밤에는 가고

      7월 중순께 영변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방 하나에 사오 명씩 배치 받아

      인민군 복으로 갈아입고 저녁식사 후

      토론회를 가졌다 아니 사상 교육이 시작되었다

      2,3 일간 사상교육과 제식훈련을 마치고

      아식 보총*을 지급 받았다

      밤에 간단한 분해 결합과 조준법 그리고 사격법

       

       

      다음 날 아침 탄환 세발씩을 지급 받고 사격을 했다

      표적에 총알이 맞았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일주일 동안 어깨가 아팠다

       

       

      *아식 보총: A식 쏘련제 보병소총

       

       

       

      도망자 사형집행

       

      1951년 7월

       

       

      사격을 끝낸 오후 마을의 좀 넓은 곳에

      이백 여명의 신병이 집합했다

      단상에는 빨갛고 크게 “도망자 재판”이란

      글이 붙었고

      군관(장교)들이 오륙 명 앉아있었다

       

       

      이윽고 개정이 선언되고 전선 도망자가 등장하고

      각본대로 재판은 진행되어 선고가 있었다

      “총살형”이라며 단상 뒤로 끌려가고

      한참 후 “탕”하는 외마디 총소리가 들렸다

      도망병은 이렇게 사형되니 도망갈 생각 말라고

      두 명 세 명 나와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후에 들으니 총소리만 내고

      사람은 다른 부대로 보내졌다고 한다

       

       

      인생과 순간

       

       

      인간은 사랑의 극치에서 잉태되고

      산고의 절정에서 태어나

      순간순간의 징검다리 딛고

      요단강을 향해 가고 있다

       

       

      한 발작 헛딛는 순간

      평생 구축한 명예도 재산도

      생명도 잃게 된다

      순간은 바늘 끝보다 작아도

      그 곳은

      인간과 자연이 생존하는 무한한 터전이다

       

       

      邊境없는 구석구석에선

      사건들이 끊임없이 순간순간 일어난다

      흑점폭발 流星 지진 인위적인 재앙

       

       

      순간에 사라질 지구를 붙들고

      순간을 살지만

      그 순간은 우리들에겐

      영원이다

       

       

       

      중공군과 함께

       

      1951년 7월

       

      총 세 발 사격을 끝으로 우리의 훈련은 끝나고

      야간 행군으로 전선으로 전선으로 발을 옮겼다

       

       

      가는 길에 병참 보급품을 뻰따이에 올려놓고

      역시 전선으로 향하는 중공군을 만났다

      그들은 마치 흔들리는 뻰따이의 리듬에

      보조를 맞춰 춤추듯 흥겹게 달리는 듯 빨랐다

       

       

      동이 트기 시작하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노라면 뒤 따라온

      새로운 중공군의 한 떼가 지나가며 잠을 깨운다

       

       

      그래도 잠이 들었다 싶으면 호루라기가

      아침 식사하라고 깨운다

      식사하고 교양시간 그리고 또 식사

       

       

      다시 어두워지면 행군을 거듭하면서

      마식령을 넘었다

       

       

      *뻰따이(遍袋) : 중국인들이 천 평 같은 것을 한 쪽 어깨에 메고 물건 나르는 기구

       

       

      첫 공습을 받다

       

       

      1951년 7월

       

      저녁노을이 비끼고 어둠이 바야흐로 깔릴 무렵

      마식령을 넘어 고무공장 아가씨들의 고장

      신고산 턱 밑인 안변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갑자기 중천 하늘이 환해지더니

      어디서 날아왔는지 비행기가 나타나

      길 양 섶에 일렬종대로 행군하는 우리에게

      기총소사를 마구 퍼 붓는다

       

       

      반사적으로 길 옆으로 뛰었다 싶었는데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리며 사지를 굽혀 펴보니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보니 나는 언덕에서 곤두박질을 하여

      논에 머리를 박고 발은 아직 언덕 위에 있었다

      공습이 끝나고 대열을 정비한 후

      인원 파악을 하니 많은 사람이 없어졌다

       

      일부는 부상하고 또 일부는 그 사이에 도망을 쳤다

      공습도 빠르고 도망도 빠르고.

       

       

       

       

      3. 밤의 길이 1,300m

       

       

      *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강력한 친공 78여단에 수용되다

       

       

       

      기발한 병과 분류

       

       

      1951년 8월 초

       

      회양을 지나 신안 근처 어느 숲 속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지고 있어서

      우리 행군이 시작하기에는 이른 시각

      집합 호루라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집합한 대오 앞에 대위 하나 일장 연설 후

      “여기 삽질 자신 있는 동무 나와!”한다

      몇이 나가니 “동무들은 공병, 저 동무 따라가”하고

      또 “핀셋이 무엇인지 아는 동무?”하니

      이번에도 몇이 나가니 “동무들은 군의병”

       

       

      “뻰찌 쓸 줄 아는 동무!” 우물쭈물하다

      보병으로 분류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옛”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동무는 통신병, 저 동무 따라가!”한다

       

      이렇게 통신병으로 분류되어

      인민군 보병 제2사단 통신대원이 되었고

      빛바랜 누런 색 군복 입은

      속 푸른 붉은 군대가 되고 말았다

       

       

       

      참사현장

       

       

      1951년9월

       

      내가 배치받은 부대는 이동 중에 있었다

      저녁에 부대가 이동하기 시작하면

      전화선과 전화기를 철수하여 부대를 쫓아가서

      전화선을 포설하고 전화기를 달아주어

      통화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이동중인 통신부대의 임무였다

       

       

      어떤 날 전화선과 전화기를 메고

      밤새 부대를 찾아가니 새벽이 되었다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우고 밥을 지으려는데

      애앵하고 경비행기 한대가 한바퀴 돌고

      사라지기도 전에 새까만 비행기가 나타나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한다

      얼른 불을 끄고 폭격을 피하는데

      폭탄하나가 눈앞에 보인다

       

       

      전투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럴 때 그 폭탄은 내 머리 위에 떨어지게 되어있다

      죽었구나 하고 올려다보니

      둥실둥실 머리 위를 지나간다

       

       

      근처 어딘가에 떨어졌을 터인데 폭음이 안 들린다

      저녁이 되어 부대가 떠난 후

      전화기를 철수하려 가니

       

      중화기 중대가 네이팜* 탄에 맞아

      새 까맣게 탄 시체, 시체

      차마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아, 전쟁의 참혹함이여!

      염라대왕조차도 눈물 흘리며 조문하였으리라

       

       

      마음속으로 영혼들을 위로하며

      현리를 거처 이포리로 향하였다

       

       

      *네이팜탄: 고무를 잘게 썰은 불붙은 조각이 몸에 와 붙어서 계속 타는 순 인명 살상용으로 제조된 무서운 폭탄

       

       

       

       

      일선 도착

       

      1951년 9월 말

       

      긴 여정이었다

      6월 14일 집을 떠난 지 백 여일

      3일간의 훈련을 제외하고 밤에 밤을 이어 백일

      드디어 본대에 도착하였다

       

       

      조선 인민군 보병 제2사단 17연대

      이 17연대는 김일성 근위대였다며

      사기가 충천해 있었고 자부심도 강했었다

       

       

      연대 통신대 선임하사는 함경도 출신이었지만

      사람이 좋았고 어떻게 보았는지 잘 대해주었다

      통신대에는 칠 팔 명의 일등병 이등병뿐

      고참병이 안 보였다

       

       

      비밀스럽게 말하는 바에 의하면

      가칠봉*이라는 산이 있는데

      연대에 보급품을 나르는 길이 하나뿐이어서

      국군이 수시로 그 길에 포를 쏘아

      통신선이 끊어지고 그럴 때마다 연결하러 가던

      통신병이 전사하기 때문에 고참이 없다며

      자기들도 곧 한 사람씩 그곳으로 나가야 한단다

      틀림없이 죽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과연 당장 한 사람을 보충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또 한 사람 죽었다는 이야기이다

       

       

      며칠 지내다 보니 먼저 온 친구들은 줄어들고

      신병들로 보충되고 있었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 연대본부는

      조금은 후방인데도 식량보급이 안 좋아

      부락에 나가 농민들이 심고 떠난 감자나 콩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배를 채울 때가 더러 있었다

       

       

      그 곳에 가면 죽는 것도 죽는 것이지만

      배는 또 얼마나 고프랴 등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닦는 나에게

      그것을 남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분대장

      아, 드디어 내 차례가 온 것이다

       

      *가칠봉: 강원도 고성과 양구군 군계에 있는 1,242m의 산

       

       

       

      죽음의 파견대

       

       

      1951년 10월 9일경

       

      우선 수류탄 두개 기병총*과 몇 발의 탄환

      그리고 허리에 띠는 개인 붕대 몇 개를 지급 받고

      어두운 길을 분대장 따라 간 곳은

      비탈에 바위를 의지하고 움푹하게 패인 곳

      일종의 참호에서 한 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동무에게 물어보며 일을 배우라 하고

      분대장은 황급히 돌아갔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포탄이 떨어질지 모르니 말이다

       

       

      그 병사는 연대본부에서 잠깐 보았던 친구이며

      이 곳에 있던 친구는 여기 와서 사흘 만에 전사했고

      자기도 그리고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이라 했다

       

       

      이곳 임무는 계속 전화통화를 듣고 있다가

      포탄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어지면

      즉시 출동하여 통신선을 복구하는 것이라 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까운 곳에서

      포성이 요란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감청하고 있던 통화소리가 끊겼다

       

       

      고참은 통화 되는가 확인하고 있으라며

      포탄소리가 난 쪽을 향해 쏜 살 같이 나갔다

      약 오륙 분 후 통화가 복구되었고

      잠시 후 그이도 숨을 몰아쉬며 돌아왔다

      봤지 동무, 이것이 여기의 임무요

      하고 몇 마디하고 있는데

      또 포탄 소리와 함께 감청 하던 통화가 끊어졌고

      우리는 이런 이곳 임무를 되풀이하며

      다음 교대자를 기다리며 죽음을

      기다려야 했다

       

       

      *기병총: 소련 코삭 기병들에게 지급되었던 소총보다 약간 짧은 총으로 기술병과 사병들께 지급한 총

       

       

       

      사보타주

       

       

      1951년 10월 10일경

       

       

      이 파견대에 온지도 몇 일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

       

      첫 포탄이 떨어지고 최소한 십오 분쯤 후에

      다시 포탄이 떨어진다

       

       

      국군에서는 시간과 위치를 정해 놓고

      포를 발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복구하러 나갔다 오 육분전에 복구가 안 되면

      돌아와 숨었다가 다음 포탄이 떨어진 다음에

      복구하러 나가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복구 안 했다고 누가 뭐라 하랴

      아니, 말할 수가 없지 않은가

      복구가 늦었다고 어찌할 것인가

       

       

      그리하여 매번 복구하러 나가지 않고

      두세 번에 한번씩 복구하러 나가곤 하던 어떤 날

      고참과 함께 나가는데

      포탄소리도 없이 둘이 다 쓰러졌다

       

       

      일선에서 포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포탄이 멀리 날아가는 것을 말하며

      가까이 떨어지면 포성을 못 듣는다는 것이다

      등위가 뜨뜻해졌는가 했더니

       

       

      옆에 친구가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질렀다

      보니 팔꿈치와 팔목사이에 뼈대만 두개 남고

      살이 하나도 없이 피가 흐르고 있다

       

       

      연대에서 이곳으로 올 때

      개인 붕대 두개씩 허리에 차고 왔지만

      붕대생각은 못하고 옆에 풀을 뜯어 감으려 했더니

      그 친구가 허리에 붕대가 있다고 소리를 질러서야

      붕대로 동여 매어주고 빨리 연대로 가라고 했다

       

       

      이런 최전선에선 스스로 걸을 수 있어야 산다

      후송할 차량도 호송해 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사람을 후송 보내고

      새로 인원을 보충 받았다

       

       

       

       

      식사 기도의 뜻은?

       

       

      1951년10월11일경

       

      시시각각으로 나에게도

      죽느냐 후송이냐 둘 중의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 사람이 후송되고 한 사람이 보충되었다

      최전선 작은 호 속에서 맞는 보충병

      이제 당당히 고참병으로서 신병을 맞는다

       

      보충된 신병

      몸집 크고 우직해보이고 나이도 몇 위일 듯

      말투도 말 색깔도 까다로워 뵈고 구레나룻도 있고

      다시 말해서 첫 눈에 위압을 주는 그런 인상이었다

       

       

      대강 여기 현황을 말해주고

      살기 위해 요령을 피운다는 것까지 이야기해 주었다

       

       

      운반되어온 식사를 하려고 하는데

      이 친구 눈을 살짝 감은 후 식사를 시작한다

      여학생 따라 교회에 나갔기 때문에

      식사 기도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종교를 거부하는 공산치하의 특히 이 최전선에서

      저렇게 공공연히 하는 저 식사 기도

       

      이런 동무 왔다고 상부에 신고 해야 하는지

      신고 안 하면 도리어 나를 신고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빨간지 아닌지 떠보려는 것인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밀고’가 유지해준다

      만일 신고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신고하면

      나는 협조자 또는 동참자가 되어

      사형, 투옥, 강제노동수용소 또는

      그 정도에 따라 처벌이나 자아비판을 받게 된다

       

      신고 여부를 결정 못한 채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났다

       

       

       

       

      허를 찔리고

       

       

      1951년 10월 13일

       

      신고여부를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에게

      큰 소리로 힘차게 그리고 엄숙하게 보충된 신병이 말한다

       

       

      “동무 죽겠소. 살겠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신고를 안 했으니 너는 반동이니 죽이겠다는 말인지

      자기 신분을 알아차렸을 터이니 생명 유지를 위해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너의 약점을 잡았으니 내 말대로 하라는 뜻인지

       

       

      생사가 달린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동무! 동무도 알다시피 여기 있으면

      며칠 내에 꼭 죽소. 살길이 하나 있소

      남으로 가는 거요. 어떻게 할 꺼요!”하며 강조한다

      이 답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안 간다면 신고를 두려워 죽일 것이고

      간다고 하면 너는 반동이라고 죽일 것이고……

      쥐 군단에 둘러싸인 고양이가 적중에서도

      휴식은 필요하다며 휴식하면서 전략을 세웠다는

      어릴 때 읽은 ‘나는 고양이다’라는 저자 같이

      나도 순간의 머리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풍채에서 나온 그리고 식사 기도를 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렇다면 믿어야 한다

      결코 그는 이 체제의 동조자로

      나를 시험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확신하고

      명확히 대답했다 “남으로 가겠소”

      그러자 그는 그의 큰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좋소. 우리 함께 살러 남으로 갑시다.”한다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며

      서로 힘껏 끌어안았다

       

       

       

                          다음편을 기대해 주세요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靑波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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