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스크랩] 전해 내려오는 野談 - 悲戀哀史 樂浪公主와 好童王子 (2-1)

含閒 2012. 7. 16. 13:01

 

 

전해 내려오는 野談 - 悲戀哀史

樂浪公主와 好童王子 (1)

 

 

 

왕자의 몸으로서 그 무슨 야릇한 운명이기에 그리운 고국과 궁성을

등지고 적국인 낙랑으로 망명을 해야 했으며 또 불구대천의 원수인

낙랑왕 최리(崔理)의 딸인 낙랑공주와 불의의 사랑을 맺게 되었던가!

이런 이면에는 필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곡절과 비련애사가

숨어 있으리니 이제 그 눈물겨운 이야기의 한토막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邪戀의 犧牲

한(漢)나라 오랑캐의 등을 믿고 고구려 국경을 침범한 낙랑군을 일거에

무찌르고 승전고를 울리면서 서울로 개선한 청년장군 왕자호동의 인기는

고구려 방방곡곡에 애국과 환희와 동경의 상징으로서 떨치게 되었다.

그가 궁정으로 개선한 후 승전의 기쁨이 넘치는 궁성에서는 낮이면 왕자의

승전기념으로 활쏘기와 말달리기가 벌어져 장차에 이룩할 낙랑국 통일의

기운을 더 한층 높이게 하였고, 밤이면 승전잔치가 벌어져 문무백관과

함께 고구려 명문의 어여쁜 딸들은 꽃단장 고이하고 절색호남인

호동왕자의 눈에 들기를 염불이나 하듯 갈망 하였다.

 

왕자를 하늘처럼 연모하는 수많은 여성중에서 그를 연모하고 달래어

보고 유인해 본 나머지 마침내는 무서운 간계로써 그를 궁성에서

추방하려는 요부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일세에 미모를 자랑하던

제이왕비 월선궁(月仙宮)이다.

 

왕비에게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두가지 비밀이 있었다.

하나는 궁녀의 소생인 서자(庶子) 왕자호동을 없애버리면 자기의 소생인

어린 왕자가 태자가 될수 있다는 왕위에 대한 욕망이고, 다른하나는

어린 왕자가 태자로 승진함에 있어서 방해가 되는 왕자호동에 대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불타는 불의의 정욕이었다.

왕비와 왕자와의 치정, 생각만 하여도 하늘에서 금시 벼락이라도

떨어지고 만세에 웃음꺼리가 될 추하고 무서운 탈선이었건만 왕비에게

있어서는 어린 왕자의 태자 승진은 고사하고 온 천하를 다 주어도

바꿀수 없는 것이 호동에 대한 도적 사랑인 것이다.

아! 내가 미쳤나 보다. 그는 어린 왕자의 적이 아닌가?

나는 원수로 미워해야 한다. 그를 궁성에서 추방만 하면 나의

어린것은 태자가 되고 마침내는 고구려의 왕위에 오를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 왕비는 어느날 밤 대무신왕과 동침하는 자리에서

호동은 행실이 나빠서 자기에게 이상한 눈치를 보내는 것이 하도

수상하더니 필경 위기일발에 욕을 면하였으니 이대로 두었다가는

신성한 왕실의 오명은 고구려의 역사를 더럽힐 것이라고 속삭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눈알이 뒤집힐듯 놀라기는 했으나 호동에 대한

애국심과 송죽같은 절개를 믿는 그는 이런것은 필시 호동이가 태자가

됨을 시기하는 왕비의 참소로 돌리고 도리어 왕비의 실없는 이야기를

책하였던 것이다. 왕이 왕자호동을 믿고 사랑하는 반면 왕비에 대한

왕의 사랑은 오로지 그 육체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그는 왕에 대한 원망보다도 호동이가 더 한층 미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왕자가 낙랑군을 무찌르고 개선한 후에는 호동의

무훈과 인기는 승전고 소리와 함께 온 천하에 퍼졌고 왕실에서는

호동왕자를 태자로 봉하자는 소리가 나날이 높아 갔다.

이런 소식 저런소식 모두가 왕비에게는 두통꺼리인데다가 요즈음

그의 귀에까지 날아 온 또 하나의 소식은 고구려 명문이며 정승인

막리지(莫離知)의 딸과의 혼담이다.

 

어느날 밤 왕비로 부터 호동의 행실에 대하여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꽃다운 청춘의 왕자의 심정을 잘 알았다는듯이 어여쁜 처녀와의

혼례로써 왕비와의 치정관계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아름다운 사랑의

전술이었으나 일이 이렇게 되면 갈수록 왕비의 고민은 더욱 커갔고

그의 질투심과 복수심은 불길일듯 하였다.

이처럼 태자에 대한 계승문제와 호동에 대한 불의의 편사병

(片思病:짝사랑병)으로 나날이 여위여 가는 왕비의 모습울 바라보는

왕은 고구려의 명의를 모두 불러 들여서 갖은 명약을 다 써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왕비의 미모와 어린 왕자를 극진히 사랑하는

노왕은 급기야 왕비의 소원대로 왕비궁에 별거를 시켜 정양케 하였다.

금과 옥으로 현란하게 장식한 별궁에서 어린왕자를 재워 놓은 왕비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누워보고 앉아보고 실내를 오락 가락 거닐어 보다가

마침내 그 심정이 폭발되어 시녀를 불러 호동에게 편지를 띄웠다.

긴급한 사연이 있으니 급히 와달라는 것이었다. 이제야 때는 왔다.

 

사랑의 승리냐?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마지막 승부이다.

이렇게 생각한 왕비는 설합을 열어 깊이 간직하여 두었던 비수를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품속에 넣고는 잠자는 어린 왕자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며

눈물에 젖은 손길로 쓸어보다가 무거운 걸음을 창곁으로 옮겼다.

꽃향기 무르익을 반월궁(半月宮)의 달밤은 어느듯 깊어 후원의

꽃동산에서는 새소리도 벌레소리도 끊어져 밤은 죽은듯이 고요하였다.

이때 아무런 곡절도 모르는 왕자 호동은 시녀의 전갈로써 연성 기침을

하며 터벅터벅 걸어 오자 조심스러이 왕비궁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실내는 캄캄하였다.

어마마마 저를 부르셨나이까?

쉬! 내가 불렀어

어이하여 불을 안키시나이까?

쉬! 대왕께서 옆방에 주무셔

어이하여 이 밤중에 저를 부르셨나이까?

그대가 보고 싶어서 불렀어 자! 이리와

왕비는 마치 어린 소녀 모양으로 달빛에 어린호동의 얼굴을

동경하듯 바라 보다가 호동의 손을 왈칵 잡아 당기며

자기의 침상으로 강제로 이끌고 가고야 말았다.

어머니 왜 이러십니까?

어머니? 나는 그대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십니까?

이거 왜 이래, 이러기야? 그대는 나의 심정을 알터이지.

잠시라도 그대 없이는 나는 못살 몸이야.

자! 나를--- 나를---

어머니! 어머니! 이몸은 어머니의 아들이 올시다

듣기싫어, 그대만 나를 생각하여 준다면 내 일생을 그대에게

바치겠어. 그대가 만일 원한다면 고구려를 탈출하여

어느곳이나 먼나라로 도망이라도 칠테야. 설사 죽어서 지옥에

가는 한이 있드래도 나는 그대의 사랑을 받고 싶어

 

왕비는 정욕에 허덕어리며 마치 나무에 서린 배암처럼 두팔을

왕자의 허리에 감고 쓰러지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였으나

억센 힘으로써 뿌리치는 찰라 호동의 옷에 매여 달린채 침상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이때였다.

모든것을 단념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왕비는 불현 듯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기가 바쁘게

도적이야, 도적이야 하고 비명을 질렀다.

죽은듯이 고요한 밤중에 비명소리를 들은 무관과 시녀들은

모두가 불을 켜 들 사이도 없이 왕비궁으로 달려 들었다.

옆방에서 깊은 잠에 취한 왕도 비명소리에 깜짝놀라 등불을

켜 들고 뛰어 들기가 바쁘게 웬놈이냐고 뇌성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등불이 침상 앞으로 가까이 갈때에 그들의 시야에 나타나는

광경은 실로 놀라운 장면이었다.

머리를 헝크리고 침상에 누워서 비수를 든 왕비와 왕비의

품안에서 빠져 나오는 사나이였다.

왕은 칼을 빼어 들고 단칼에 사나이의 목을 치려다가 문득

그 얼굴을 쳐다 볼때 눈이 뒤집힐듯 놀라며 八자 수염은 푸들푸들

떨기만 하다가 아니 이것이 웬말이냐? 네가 호동이가 아니냐!

오늘도 나의 침실로 숨어 들어 이몸에 욕을 보이려다가 나중에는

이칼로 저 어린 왕자까지, 아, 대왕마마! 이칼로 이몸을 죽여주사이다.

존귀한 왕실을 천추에 더럽히고 천륜을 배반한 저 왕자와,

그 어이 같은 하늘 아래서 사오리까,

자! 어서 이 칼로 이 몸을 죽여 주사이다.

저 어린 왕자도!

이것이 왕비의 요사스러운 흉계임을 모르는 여러 사람들은

입을 딱 벌리고 뜻하지 아니한 도적의 얼굴을 바라보자 제마다

눈을 부비며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시작한다.

일도(一刀)에 도적의 몸을 치려돈 왕은 씰룩거리며 도적의

얼굴을 쏘아 보다가 비명같은 욕설을 탄환처럼 대체 퍼부었다.

네 이놈! 이꼴이 대체 무엇이냐? 내 일찌기 네놈의 행실에 대하여

추잡한 소문을 들은바 있었으나 도리어 애꿎은 왕비를 책하였더니

그것이 필시 정말이고나. 미련한 놈! 못난 놈! 바야흐로 태자가

되어 천하의 절색가인과 혼례를 맺을 몸이 그래 넓은 천하에

하필 계집이 없어 네 어미를? 나의 안해를? 에이 왕실을 더럽히고

천륜을 배반한 놈! 내눈 앞에서 썩 사라져라!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왕은 칼을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맥이 풀려 쓰러지고야 말았다.

왕비궁을 나선 호동의 앞길은 캄캄하였다.

일조일석에 왕자의 몸에서 역적 보다도 더 추한 누명을 쓴

호동은 천하가 넓다하나 하루밤의 잠자리를 의지할 곳조차 없었고,

사람을 만나기조차 무서워지는 몸이었다.

그의 발길은 저절로 연무장(演武場)으로 향하였다.

연무장은 높은 산상인데 아침해가 솟아날 때부터 서산에 해가

질 때까지 고구려의 젊은 무사들이 호동왕자의 지도로써 고구려

통일의 기치 밑에 말달리기와 칼쓰기 활쏘기를 훈련하는 곳이었다.

호동은 연무장의 바위옆에 섰는 고목에 보국통일(報國統一)이란

네 글자를 새겨놓고 고구려의 산야를 굽어 보며 합장한 후

급기야 원수의 나라인 낙랑국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고

밤 사이에 국경으로 달리는 몸이 되었다.

 

낙랑하면 그 이름만 들어도 우선 신기(神器) 자명고(自鳴鼓)가

있다는 것과 또 천하의 절색이라는 최리왕의 무남독녀인 낙랑공주의

존재가 신화처럼 뭇 사람에게 동경심을 이르키는 나라이다.

 

公主와의 奇遇

연무장에서 사냥꾼으로 변복을 한 호동이가 고구려 국경을 넘어

낙랑땅의 어느 국경의 산악에 올랐을 때는 어느듯 먼동이 트고

아침해가 밝아오는 것이었다.

험상한 산골짝 길을 낙랑의 파수군사에게 기어 가며 간신히

피신해 온 호동은 지칠대로 지쳐 바위위에 쓰러진채로

한잠을 자고 나니 어느듯 해는 중천에 떠 올랐다.

문듯 옆을 바라보니 거기에는 웅장한 절이 있고 절벽 아래를

굽어 보니 거기에는 진달래 핀 바위밑에 신선같은 샘물터가 있다.

호동의 눈앞에 율동하는 대자연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금시 하늘에서 선녀라도 내려올 듯한 선경이었다.

풍류를 종아하는 호동은 그가 항상 품속에 지니고 다니는

피리를 끄내어 들고 온갖 새의 노래와 온갖 꽃의 향기에 화답하여

아름다운 곡조를 불기 시작 하였다.

이때 황홀한 피리소리에 귀를 쫑깃하고 절의 문을 열고 살금 살금

걸어나오는 꽃같은 처녀 한쌍이 있었으니 하나는 천하에 이름높은

낙랑공주였고 다른 하나는 그의 시녀 샛별이었다.

두 처녀는 절벽위에서 백학과도 같이 높이 앉아 피리를 부는 선인같은

모습을 우러러 보면서 절벽아래로 다달았을 때 호동은 무슨 인적소리에

소스라쳐 놀란듯 피리를 입에서 떼고 들펀들펀 사위를 살펴 본다.

공주와 시녀는 당황히 샘물터의 꽃속에 숨어 들어 호동의

일거일동을 엿보고만 있는 것이다.

 

호동은 활을 메고 일어서서 큰 기지게를 한후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 저 남쪽에 낙랑의 산야가 보이는구나. 저 산과 들을 넘고 넘어

천리길을 가면 낙랑의 왕검성(王儉城)이 있을 터이지---. 아! 원수의

자명고! 자명고만 찢으면 고구려가 통일될 것을---. 그렇지, 자명고실의

열쇠를 낙랑공주가 가지고 있다 하니 공주와 가까이 하면 좋은 수도

있으련만 그러나 하늘의 별따기지---. 아! 피로하다.

오늘은 저 절에 가서 하룻밤의 잠자리를 청하여 보리다

이렇게 중얼거리며 절앞으로 간 호동은 스님 계십니까. 스님 계십니까

불러 보며 몇번이나 옷깃을 바로 잡는다. 안에서 목탁소리가 뚝 멎으며

백의를 걸친 승려가 당황이 나오더니 호동의 아래와 위의 행색을

흘겨보며 입에 손을 대고

쉬! 웬 사람이요?

소인은 지나가던 사냥꾼으로 하룻밤의 자리를 청하러 왔나이다

아니 될 말씀! 지금 우리 절엔 대왕님께서 행차하여 불공을 드리고 있소.

어서 다른 암자로나 가보시요

하고는 두말도 없이 안으로 사라진다.

대왕께서 행차라니 그러면 최리왕이 왔단 말인가?

그렇지 최리는 필시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품고

국경의 진지를 순찰 나왔구나.

이런 생각이 돌자 호동은 금시 칼집에 손을 대며

이 기회에 원수를 갚으려고 문쪽을 노려다보다가

자명고를 찢기 위하여는 그에게 충성을 가장하고 공주에게는 사랑을

가장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는 생각이 머리위에 벙긋하자

그는 빙그레 미소를 띄우며 샘물터로 한걸음 두걸음 발걸음을 옮기었다.

호동은 바위위에 피리를 얹어 놓고 그리고 샘물을 뜨려하니

표주박이 없다. 앞뒤를 두리번거리다가 그는 하는 수없이

느티나무 잎사귀를 하나 따서 둘둘 말아 표주박을 만든 후

물을 떠서 마시려 하니 입까지 닿기전에 물이 주르르 흐른다.

이때 꽃속에서 간드라진 웃음소리가 난후 꽃같은 여인이

수집은듯 고개를 돌리고 표주박을 살며시 내여 미는 것이었다.

꽃속에서 나타나는 미지의 여인은 이땅에서 사는 여인이라는니보다

어느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선녀와도같이 황홀하였다.

표주박을 사이에 두고 주고 받는 떨리는 손과 손--- .

말없이 바라보는 눈과 눈에는 숨은 정열의 불꽃이 뛰었다.

호동은 공주를 바라 보다가 샘물을 마신후 표주박을

돌려 주고는 말없이 한걸음 두걸음 걸어 간다.

저--- , 저--- , 잠간만---

공주는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견디지 못하여

재빠르게 달려 가며 간신히 말을 건네었다.

무삼 일이오니까?

호동은 가는 길을 멈추어 뒤돌아 서며 다시 공주를 바라 본다.

저--- , 저--- , 그대는 누구시며 어느곳에 사시온지?

이몸은 사냥꾼의 몸집인데 어찌 정처가 있아오리까.

하늘에 떠 도는 구름과도 같이 오늘은 서쪽 내일은 동쪽 산이나

들이나 자는 곳이 사냥꾼의 집이로소이다

집이 없다고요? 오호호--- 어찌면---

안녕히 계십시오

저--- 저 그대의 이름은?

제 이름은--- 저--- 저--- 아슬라---

아슬라? 아슬라! 아슬라---

호동은 하룻밤의 잠자리를 얻고자 암자를 찾아 떠나 간다. 공주는

떠나가는 호동을 안타까이 바라보며 혼자 말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저렇게 잘 생겼을까? 아무리 보아도 범상한 사나이는 아니야.

샛별아 너는 어떻게 보았니? 하는 것이었다. 시녀 샛별은 아양을 떨며

대장부다운 그 풍채와 어글어글한 그 눈 키가 후리후리 큰데다가

활을 멘 그 자태, 어찌보면 어느나라의 장군과도 같고 또 어찌보면

나이가 젊고 수줍은듯한 높은 인품이 어느 나라의 왕자와도 같은

기상인가 하옵니다 네 눈이 바로 보았다. 그이가 사냥꾼이 아니고

어느 나라의 왕자였다면 얼마나 좋을가--- .

어이하여 저렇게 잘난이가 이런 험상한 두멧골에 사냥꾼으로 태여 났을까?

천하에 인물이 잘났다는 고구려 왕자 호동도 저만치는 못 생겼을거야

공주님은 언제나 고구려 왕자 호동 호동--- 하시는양이 아무리 보아도

좀 이상해요. 오호호-- 공주님!

그런 철없는 소리 마러라. 호동은 우리 낙랑국의 원수이며 부왕의

원수가 아니냐. 호동왕자하면 말만 들어도 이가 갈린다

공주와 시녀는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샘물터로 가서

그옆 바위 위에 앉으려 할때 놀라운 것을 보았다.

 

그것은 호동왕자가 잊어버리고 간 피리였다.

공주는 무슨 보배를 다루듯이 조심 조심 들어서 품에 안아 보고

볼에 비벼보며 그 사나이는 이 피리를 놓고 갔으니 다시 올터이지.

샛별아 너는 잠간 비켜 주어, 나는 꽃속에 숨어서 그가 와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기로 할테야 하는 것이었다.

샛별은 방긋 웃으며 절안으로 들고 공주는 꽃속으로 살금 살금 들어 간다.

풍악을 좋아하여 가야금을 잘 하는 공주는 피리에도 능하여

호동이가 불던 그 곡조를 따라 부는 것이었다.

이때 피리를 찾으러 샘물터까지 터벅 터벅 온 호동은 꽃속에서

흘러오는 피리소리에 놀라운 표정으로 어리둥절하여 서 있을 때

꽃속에서 살며시 솟아나는 것은 미소를 띄운 공주의 활홀한 얼굴이었다.

공주는 꽃속에서 나와 피리를 내어 밀며 대장부의 피리에

소녀의 입술을 대였아오니 저 샘물로 깨끗이 씻어

드리리오리다 하고 샘물터로 사뿐 사뿐 걸어간다.

아--- 아--- 아니오이다. 그냥 주소서

왜 그럴까요?

글쎄 왜 그럴까요?

피리를 사이에 두고 긴사이 말없이 바라만 보는 왕자와 공주의 손은

파들 파들 떨고 있었고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들은

서로 수줍은 그 무엇을 애원하듯 불꽃만 뛰고 있었다.

이처럼 서로 누구인지도 모르게 알게 되고 급기야 정이 들고

사랑의 싻이 트게 된 공주는 부왕 최리에게 아슬라란 사나이를

등용할 것을 간청하니 완고한 왕도 금이야 옥이야 사랑하는

무남독녀인 공주의 소원인지라 한마디로 허락하여 궁성의 무관을

삼으니 공주와 호동의 기쁨은 한이 없었다.

다음날 낙랑의 국경진지를 순찰하고 왕검성으로 돌아가는 최리왕

일행의 행렬에는 번들하게 낙랑의 무관복으로 마상에 앉은 늠름한

호동왕자가 유달리 보였고 그 옆에는 꽃수레를 탄 공주가 있었다.

이리하여 무슨 신화와도 같이 공주와 샘물터에서 인연을 맺게된

왕자호동은 자명고를 찢은 후 낙랑왕 최리를 없애버리고 고구려를

통일해야겠다는 무사다운 결심과 함께 눈앞에 보이는 아리따운 공주의

모습을 바라 보면서 왕검성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漢將의 짝사랑

최리왕 일행이 낙랑국경을 순찰하고 돌아온 왕검성은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 준비와 호화로운 잔치로 떠들썩하였다.

낮이면 날마다 싸움터로 떠나는 군사들을 위하여 연무장에서

활쏘기와 칼쓰기가 벌어지고 밤이면 한(漢)나라에서 파견된

파달장군(巴達將軍)을 위하여 잔치가 벌어졌다.

그런데 궁성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공주(公主)궁에까지 흘러 들어왔다.

오랑캐 장군 파달은 낙랑공주와 백년 가약을 맺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나라에서 원병이 오게되어 고구려를 정복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공주궁에서 시녀 샛별에게 이런 뜬 소문을 듣게 된 공주는

넋을 잃은듯 그 자리에 맥이 풀려 쓰러졌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얼굴! 파달장군!

잔인무도한 파달! 자기의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그 목숨을 파리새끼 한놈보다도 쉽사리 없애어 버리는 파달이가 아니던가?

그가 이몸의 낭군(郞君)이 되다니?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 치는 노릇이다.

오랑캐의 아내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좋을 거야!

그는 품속에 간직한 비수에 손을 대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운 아슬라의 얼굴이 동동 떠오른다.

간밤에 저 창밖 접동새 우는 능금나무 아래서 말없이

바라보며 힘껏 포응해주던 아슬라의 그 얼굴!

늠름한 그 풍채! 어글어글한 그눈!

자명고(自鳴鼓)가 보고싶다던 그 북소리같이 궁굴은 그 음성!

그 진실한 마음! 순결한 사랑! 아! 아슬라! 아슬라!

나는 어찌해야 좋단 말이냐!

공주는 흩어진 머리를 가다듬으며 고개를 간신히 들고 샛별을 불렀다.

별실의 문이 열리며 샛별은 능금 하나를 들고 나왔다.

공주는 능금을 받아들고 칼로 구멍을 파서 종이쪽지 하나를 감쪽같이

숨겨 넣는다.

샛별아 이것을 오늘밤도---

공주님 아이 어쩌나--- 이 밤중에---

귀여운 샛별 나의 심정을 알터이지, 오늘밤도 이것을 아슬라의 방(房)

앞 능금나무에다 달아매고 오란 말이야, 눈에 뜨이지 않도록 조심해---

샛별!

공주님!

샛별!

공주님 제손을 꼭 잡아 주사이다. 그러면 무서움이 덜릴 것만 같아요

샛별

공주는 잡고 창을 열고 바래 준다.

으앗!

다음순간 비명을 지르며 공주와 샛별이 실내로 뛰어들 때

정원(庭園)의 나무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공주와 샛별은 들창 안에서 머리칼을 하늘에 올린채 바르르 떨며

사라지는 그림자를 흘겨볼 뿐이다.

저놈이 필시 무엇을 감시하는 꼴이고나

필시 그런가 봐요. 어제밤도 저 나무 뒤에 어떤 그림자가 있었어요.

달빛속에 흐릿하지만 파달장군의 시종(侍從)일시 분명했어요

옳지! 그런 꼬락선이야--- 비겁한 자들---

공주님!

샛별! 인제 아니가도 좋아!

공주님! 저는 인제 무섭지 않아요. 저 밉살스러운 놈을 생각하니

웬일인지 제게 힘이 생겼어요

샛별! 샛별!

샛별은 공주의 부름에 댓구도 없이 창문을 뛰어나가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공주는 창곁에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며 아슬라의 얼굴을 그려본다.

밤하늘에 뜬 조각달은 아슬라의 눈섭같고 반짝이는 별들은

영채나는 그의 눈동자와도 같이 아름답게 보였다.

샛별이 능금나무에 달아놓은 능금속 글월을 보고 잠시 후이면

달려올 아슬라를 생각하니 여태까지 흐렸던

마음은 가신듯이 사라지고 금시 꽃밭이 되었다.

공주의 가슴엔 한줄기 희망의 무지개가 뜨고 그 마음은

견우(牽牛)를 맞이한 직녀(織女)처럼 한없는 기쁨 속에 설레기 시작하였다.

그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밤 하늘을 우러러 사랑의 축복을 빌었다.

허공에는 아슬라의 얼굴--- 그리고 억센 두 팔뚝--- 포근한 품속--- .

공주는 이러한 환상을 그려보다가 물결치는 숨결 속에서

석경(石鏡)앞으로 뛰어가 꽃 단장을 하기에 바빴다.

이때였다. 왈칵 문이 열리며 샛별이 뛰어 들어온다.

샛별! 어찌 되었니?

공주님--- 저--- 저---

어서 어서---

되었어요. 감쪽같이 능금나무위에 호호---

아이 좋아--- 이몸은 천하를 얻은것 같구나--- 아- 이밤이 어쩌면

이렇게 즐거울까?

공주는 어쩔줄을 모르고 둥실 둥실 학무(鶴舞)를 추기 시작한다.

이때에 문이 열리며 들어온 최리왕은 주연(酒宴)에서 얼근히 취한

눈으로 이 광경을 보자 뜻하지 않은 기쁨에 어쩔줄을 모르며

야- 아! 내 집에 경사로다.

낙랑왕실에 경사로다.

귀여운 내 딸이 춤을 추다니---

너는 그렇게도 이밤이 즐거우냐?

암! 그럴터이지---

공주는 비밀히 간직한 연서(戀書)라도 남의 눈에 뜨인 처녀처럼

부끄러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자리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앉아 버렸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어느새 기쁜 소식

이 네 귀에까지 날아온 모양이지--- 하하하---

인제 네게 말하거니와 천하에 명장인 파달장군과 혼약을

맺을 것을 나는 쾌히 승낙했지--- . 왕실에 경사로다 애햄---

예? 아바마마!

인제 머지 않아 나는 왕중왕(王中王)이 될 몸이야--- .

글쎄 파달장군이 너와 혼례만 치르면 漢나라의 십만 대군을

보내 준다는 구나, 그렇게 되면 고구려 서울을 쳐들어가기 쯤이야

--- . 왕자 호동이란 놈이 제 아무리 영걸이라 하지만

어림 이 있을소냐 따라지 목숨이지--- 아하하-----

나는 공주 덕분에 왕중왕이 되렸다 으하하하--- .

자! 고개를 들고 이것을---

황홀한 진주 목거리!

너를 극진히 위하는 파달장군이 한(漢)나라에까지

불원 천리 하고 사람을 보내어 마련해 온 보물이로구나.

자! 이것을 사양말고 받아라.

혼례의 예물로 보내온 것이로다

아바마마--- 저--- 저---

자! 저렇게 풍악소리가 들려온다. 파달장군이 별궁잔치에서

공주를 기다리고 있단 말이어든---

. 자! 내가 친히 목거리를 걸어주겠노라!

아바마마--- 아바마마--- 아니오이다

공주는 걸어 준 목거리를 베끼려하나 효도(孝道)의 길에 벗어나

부왕의 분노를 살 것이 두려워 하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맡겨둔다.

아! 고울시고 고울시고 하늘나라 선녀인가 꽃동산의 공작인가!

앞맵시 보아도 고울시고 뒷맵시도 고울시고---

자--- 나의 손에 의지하여 사뿐사뿐 걸어가자---

아바마마--- 그러하오나---

그러하오나 부끄럽단말이지? 으하하

아직도 성례를 이루지 않은 몸으로서 그 위에 뭇 사내들의

주연(酒宴)에 얼굴을 들고 나서겠아오리까?

으- 응 그러고 보니 그말도 지당하도다.

왕실에서 예의범절로 다스린 몸인지라 기특한 말이로다.

내가 취중에 막말을 한지고---

그러면 밤이 깊었으니 태몽(胎夢)할 꿈이나 꾸면서 잘 자도록

해라 아하하하---

공주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 리없는 왕은 너털웃음을 연상 터치며

활개를 치며 문을 나간다.

다음 순간 공주는 찢어지고 터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허둥지둥 창 곁으로 간다.

조금까지도 별이 반짝이던 하늘은 금시 변하여 우르렁거리며

부실부실 비를 뿌려주기 시작한다.

이 빗방울 속에서 어둠길을 헤치고 아슬라가 올터이지--- .

아! 이 안타까운 심정!

땅을 쳐야 시원할까? 통곡을 해야 시원할까?

오랑캐와 혼인을 아슬라가 안다면 그 얼마나 낙심할 것인가!

아니 그것은 아니될 말이야--- .

아니 나는 죽어도 싫어 싫어---.

단 하루라도 아슬라의 곁을 떠나서는 못살 몸이야.

그러자니 어이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지--- 그렇지---

아슬라가 오면 그를 달래어 이궁실을 빠져 나갈까?

평민으로 가장하여 어떻거나 그를 따라 인적이 없는 산중으로 ---

이렇게 중얼거리며 허공을 바라 볼때 문을 두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아슬라가 왔구나---

이 비를 맞으면서---

혹시 누가 보지나 않았을까?

그렇지 불을 꺼야지---

문을 두다리는 소리에 불현듯 설레는 기쁨속에 달려가

문의 빗장을 끌려 놓고는 등불을 꺼버리는 것이었다.

이윽고 서서히 문이 열리며 캄캄한 어둠속에 사나이 그림자가 나타난다.

공주는 애타는 그리움에 팔을 벌리며

기다렸어요. 무척 기다렸어요.

달도 뜨지않은 비오는 밤이오이다.

등불도 이렇게 꺼버렸사와요.

자! 이리로 가까이--- 어서--- 어서---

오! 그리운 님이여!

나를 그처럼 기다렸다구?

날더러 가까이 오라구?

그럴터이지 이히히--- 공주! 공주!

아니 그대가 누구란 말이오니까? 아니 아니--- 이손을 놓아요---

으아!

나야--- 나야---

아니--- 아니---

나야--- 나--- 그대의 낭군인 파달이야---

으아 파달장군--- 이 밤중에 어이하여 오셨나이까?

쉬! 쉬! 큰소리를 내지말어---

공주! 그대는--- 나의 아내가--- 아냐?

나는 이렇게 그대를 미칠듯이---

어서 이손을 놓아 주사이다.

어서 돌아가 주사이다

나는 못가! 못가! 비 내리는 이 한밤을 그대와 함께---

소리를 칠 테야요---

무어? 소리를 친다구?

너무 하오. 너무 하오--- .

공주! 공주!

그럼 내가 싫단 말이요?

그렇다면 어이하여 등불을 꺼버렸소?

그렇다면 누구를 기다렸단 말이요?

그 놈이 누구란 말이요?

에-잇---

듣기 싫어요. 어서 돌아가 주사이다

그대의 정부가 누구란 말이야?

당장에 이 칼로--- 그놈을---

장군은 남의 일에 상관치 말아요

상관치 말라구?

나는 대왕께서 허락한 미래의 남편이야. 어째서

상관이 없단 말이요?

미래는 모르오나 현재는 혼례를 하지 않은 몸!

어서 돌아가 주사이다

공주! 이러기야? 정말 이러기야?

이 손을 놓아요. 싫어요. 싫어요

소리를 칠테야요

나는 미칠듯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으아! 샛별! 샛별!

파달은 질겁을 하여 손을 놓고 공주를 노려본다.

공주는 이 기회를 타 파달의 손에서 뛰쳐 나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친다.

샛별은 자는듯 아무런 해답이 없다.

파달은 죽은듯이 고요한 캄캄한 방안에서 인적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망두석 처럼 서 있다.

침묵이 흐흔다. 샛별은 나오지 않는다. 파달의 눈에는 불이 켜졌다.

육체는 고기를 앞에 놓은 짐 처럼 공주를 향하여 떨고 있다.

다음 순간 그는 다시금 애욕의 악마로 변하여 공주를 향하여 간다.

샛별--- 샛별---

공주는 샛별을 부르며 등에 불을 켠다.

파달은 달려와 불을 죽이고 공주의 허리에 두팔을 감는다.

이 순간 공주의 손에는 허공에 매어달린 설렁줄<처마 끝에 달아 놓고

사람을 부를 적에 흔들어 소리를 내는 종이나 방울을 울리도록 잡아

당기는 줄.(招人鐘)>이 잡혀진다.

육중한 파달의 품속에 들어 쓰러지는 찰나 설렁(줄)은 소란한 소리로

왈가당 절가당 밤의 적막을 뒤흔들었다.

샛별! 샛별---

공주는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파달은 손바닥으로 공주의 입을 막으며 짐승같은 야욕을 채우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설렁줄소리에 달려든 공주궁(公主宮)의 호위호반(護衛虎班)들은 예리한

창을 들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공주님! 공주님! 어이한 일이오니이까?

호반들은 연성 떠들석 하였다.

호반들은 떠들지 마라 파달장군께서 부르신 것이야.

상감마마와 더불어 행차하셨다가 별안간 몸이 편치 않으셔서---

잠시--- 이렇게---

그렇지-- 그렇지--- 에헴--- 아야야야--- 아이 두(頭)야 아이

통(痛)이야--- . 아야 내--- 저--- 호위병을 불렀도다. 애헴---

한(漢)나라에서 오신 존귀한 국빈이시니 조심히 모시고 가라

예-이- 에-

설렁줄의 초인종소리와 호위병의 등장에 개망신을 하게 된 파달은

눈알이 뒤집힐듯 질겁을 하여 간(肝)이 콩알만하며 마치

병인(病人)모양으로 얼굴을 땅바닥에 파묻고 엎어져 있었으나 뜻밖에도

공주의 말이 이런식으로 나오게 되니 그는 도리어 호통을 하며 되살아

일어나는 것이었다.

공주님! 자고 가라는 말씀은 참으로 고마운

말씀이오나 우리가 혼례를 치를 때까지는 에헤

헤헤--- 저--- 저---

예의 법도를 지켜야 하오.

에헴--- 그러면 안녕히---

이놈들아 자! 가자!

그러면 안녕히 가사이다. 호반들은 장군을 조심히 모시라

파달은 위기일발로 개망신을 면하고 여러 호위병에게 부축되어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꽃피는 첫사랑

왕실에서 예의 범절과 교양이 높은 공주는 원수에 대하여도 하늘같은

넓은 아량으로 꽃핀 정원에까지 부슬비를 맞으며 바래어 주었다.

공주는 그제사 수건을 내여 이마에 흐르는 진땀을 닦았다.

이때에 고목(古木)뒤에서 어른거리던 그림자가 나타난다.

아아! 공주는 질겁을 하며 달아나려 할때

나요! 나! 능금을 들고 왔소이다

아! 아슬라! 아슬라! 무척 그리웠사와요, 무척 기다렸사와요

공주는 사랑앞에는 예의도 수줍음도 없다는듯

아슬라의 품속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흑흑 느끼며 우는 것이었다.

고목위에서는 능청맞게 접동새가 울어 주었다.

공주는 아슬라의 손을 이끌고 공주궁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캄캄하였다.

공주는 불을 켜려고도 하지 않고 창 곁으로 가서

안타까운 심정을 애소하듯 두팔을 벌렸다.

호동은 수심에 잠긴 사람인양 멍하니

공주의 얼굴만 바라보고 섰는 것이 아닌가.

어이하여 말도없이 바라만 보는가요. 어둠속에 어리는 그대가 그리워.

헤매는 이손을 어루만져 주소서. 흘러간 그 옛날 진달래 핀 샘물터에서

샘물을 떠서 주던 손이오이다. 첫사랑을 바치려는 손이오이다. 아슬라!

아슬라! 공주! 공주! 나는 출진령(出陣令)을 받은 몸이요

예? 출진령?

그렇소. 내일이나 모래는 싸움터로 나가야 할 몸이라오

아! 아슬라! 아슬라!

내가 자명고 파수(自鳴鼓 把守)로 남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것도 다 허사였어요.

소녀가 부왕에게 사뢰어 자명고 파수로 간청을 하였지만

그것은 한(漢)나라 사람이 아니고는 안된다는 분부였사와요.

아슬라를 싸움터로 내어 보내려는 것도 필시

파달장군의 장난일꺼야--- .

우리 두사람 사이를 시기하는 파달은

아슬라를 출진케하고는 소녀와 혼례를 하자는거야요.

아! 아슬라 어이하면 좋단말야?

오! 하늘이여 어이 하오리까?

공주! 나는 싸움터로 나가선 안될 몸이야.

나는 그대의 곁을 떠나고 싶지않어 공주!

공주! 무슨 방도가 없을까?

오호라--- 아슬라--- 좋은 수가 있어요

좋은수가 있다고요?

예! 아슬라는 소녀를 위하여 싸움터로 나가 주어요

예? 싸움터로? 그러면 나가서 죽으란 말이요?

아니--- 아니--- 싸움터에서 큰 공을 이루고 이기고

돌아오 란 말이야요. 만일에 고구려를 무찌르고 전승 장군으로

개선 할 때에 소녀가 혼인을 손을 모아 애원한다면 완고하신

부왕 께서도 그때엔 허락해 줄 것이야요. 아슬라! 아슬라!

소녀 를 위하여 우리의 사랑을 위하여 고구려를 무찌르고

돌아와 주어요. 고구려의 왕자 호동을 뭇찔러 주어요! 아슬라!

아 슬라!

공주! 공주---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가 그렇게도 원수요!

그렇게도 밉소?

미워요. 원수야요. 아슬라 이칼로 어서 그놈의 목을 치고

돌 아와 주어요. 그때까지 소녀는 순결한 몸으로 죽자하고

기다 릴테야요. 어서 출진하여 승전장군이 되어 주어요.

어서 이 칼로 왕자 호동의 목을!

호동의 목을 ? 이칼로 아! 공주! 공주!

아슬라는 공주를 힘껏 껴안으며 야릇한 운명에 몸부림을 치는 것이었다.

창밖에서는 어느듯 닭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의 시간이 예나 이제나 다름없이 너무나도 짧았다.

하고자 했던 말을 다하지 못한 것을 트이는 동천 하늘은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얼마나 슬픈 아침인가! 비정의 아침은 왔다.

밤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반월궁(半月宮) 공주의 침실에서

원앙침(鴛鴦枕)에 검은 머리를 풀어 놓고 아슬라와 첫사랑의 꽃을 피운

밤은 그네들로 하여금 촛불없는 화촉(花燭)의 첫날밤이었다.

꽃이 나비를 맞이한 기쁨!

나비가 꽃속에 든 기쁨!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그들의 기쁨이 그 얼마나 아리따운 것이언만

그러나 어이하랴.

날이 밝으면 그들앞에는 무서운 운명이 그리고 무서운 얼굴들이

미친개(狂犬)처럼 짖고 물어뜯을 것이 아닌가?

꽃수놓은 비단요에 고스란히 누워 허공만 우러러보는 눈과 눈에는

기구한 운명을 탄식하는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내리는 것이었다.

간밤에 공주의 내실로 어떤 야심을 품고 왔다가 쑥스럽게도 소박을 맞고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던 파달--- .

게다가 아슬라와의 비밀을 알고 질투와 정욕의 불덩어리로 미친듯이

날뛰던 파달은 필시 그길로 부왕(父王)을 찾아 갔을 것이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그는 부왕앞에서 뭐라고 아뢰었을 것인가?

공주는 정부(情夫) 아슬라하고---

필시 이 게 귀에 담지도 못할 무서운 말을 징그러운 그입으로 뿜어

버리는 그순간 이말을 들은 부왕은 얼마나 놀랐을 것이며 얼마나 분노에

치를 떨고 있을 것인가?

날이 밝으면 팔자(八字) 수염을 푸들거리며 공주의 내실로 달려들

부왕의 무서운 그 얼굴!

무서운 두 눈!

무서운 그 말!

낙랑의 왕실을 더럽히고 외간 남자와 간통을 한 년이라고 뇌성벽력이

떨어지며 장검(長劍)을 빼어 올린 그 무서운 부왕의 모습이 눈에 훤하니

보이는 것이다.

부왕이냐? 사랑이냐?

사랑하는 아슬라에게 순결한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쳐버린 이제 와서

파달장군과의 혼인이란 생각만 하여도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아슬라와의 사랑이 그리고 꽃다운 그의 일생이 짓밟히기 않기 위하여는

오직 한길이 있을 뿐이다.

탈출! 궁성 탈출!

황홀한 은별관을 벗어버리고 그리고 금이야 옥이야 고이 고이 키워준

양친마저 버리고 아슬라를 따라 기다리는 사람도 없이--- 정처도 없이---

그리고 기약도 없이 떠나는 오직 탈출--- 한 길이 있을 뿐이다.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너무도 무서운 일이었다.

이생각 저생각에 느껴울던 공주는 아슬라의 품속에 얼굴을 파묻고야

말았다.

공주! 공주! 우지마오!

아슬라! 이몸은 갈길을 택하였사와요

갈길을? 어떻게?

낭군을 따라 궁성을 떠날 것을---

낭군을 따라 그러면 나를 따라 궁성을 떠난다고요?

공주! 공주!

아슬라는 애처러운 공주의 비장한 결심에 눈물겨운 마음으로 공주의

흩어진 머리를 고이 쓰다듬어 주며 백옥 같이 흰 얼굴에서 구슬같은

눈물방울을 씻어주니 공주는 살며시 눈을 감으며 보드라운 손가락에서

쌍가락지 한짝을 빼어 아슬라의 새끼 손가락에 말없이 끼워준다.

백년가약의 맹세로 하는 것이었다.

이때 죽은듯이 고요한 침묵을 깨뜨리고 문앞에서 강아지가 콩콩짖는

소리가 허공을 물어 뜯는다.

두사람은 불길한 예감에 벌컥 일어나 흩어진 옷을 주섬주섬 걸치고

약속이나 한듯이 창문으로 당황하게 달려가 왈칵 문을 열어제치고 창밖을

더듬어 보나 아무도 눈에 뜨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강아지만은 분명히 무엇을 본듯 한그루 고목(古木) 있는 쪽으로

향하여 콩콩 짖으며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날이 밝기도 전에 놈들은 왔구나! 이러한 예감이 든 아슬라는 의관을

정제하기에 바빴고 공주는 아무 말도 없이 불이야 불이야(부랴 부랴)

침실문을 열어제치고 내실로 재빠르게 나가버린다.

죽느냐? 사느냐?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최후의 막다른 시간은 이제 눈앞에까지

닥아(다가) 온 것이다.

 


이 미자 - 호동 왕자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설봉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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