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스크랩] 전해 내려오는 野談 - 悲戀哀史 樂浪公主와 好童王子 (2-2)

含閒 2012. 7. 16. 13:01

 

 

전해 내려오는 野談 - 悲戀哀史

樂浪公主와 好童王子 (2)

 

 

危機一髮

시시각각으로 닥아오는(다가오는) 운명앞에서 탈출을 결심한 아슬라는

무관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허리에 장검을 차고나자 그는 창곁에서

고구려의 하늘을 우러러 보며 경건하게 조국통일의 합장을 올리는 것이었다.

어느 절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쇠북소리!

분명히 날이 밝기 시작하였다.

쇠북소리에 소스라쳐 놀라는 아슬라는 날뛰는 표범마냥 창밖으로

뛰어나가기가 바쁘게 자명고실 가까운 거리에 우뚝 솟은 고루(高樓)로

뛰어 올랐다.

먼동이 트는 하늘아래 훤하게 밝아오는 허공에는 어느듯 가랑비도

자취를 감추고 지금까지 어둠속에 자태를 감추었던 모든 것들이

복병(伏兵)했던 군사인양 머리를 들고 알숭 달숭(알쏭 달쏭)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루(高樓)에서 굽어보면 서(西)쪽에 울창한 고목들--- .

고목 옆에 가파른 바위절벽--- .

바위절벽 위에 웅장한 자명고실--- .

자명고실 밑에는 감옥(監獄)--- .

절벽밑으로 흘러가는 대동강(大同江)--- 동쪽에 모란꽃 핀 모란봉--- .

강변에 닻줄을 내린 나룻배 몇척--- .

시시각각으로 분명한 자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풍경을 눈에 불을 켜고

쏘아보는 아슬라의 머리속에는 바야흐로 결행해야 할 무서운 계교가

번개질을 하자 그는 칼집에 손을 대며 스스로 소리없이 외치는 것이었다.

이제 자명고를 찢어 버리고 공주와 함께 저 배를 타고 황해(黃海)바다로

빠져 나가야 할 운명의 시간은 왔다.

지금 고구려 군사들은 낙랑과의 국경에 집중하여 신기 자명고를

두려워하며 왕검성으로 진군할 계략을 세우고 있을 터이지--- .

내가 이제 자명고를 찢어버리고 낙랑을 탈출하여 진군(進軍)을 앞둔

우리 고구려군사 앞에 불쑥 나타나면 그들은 얼마나 반가워 날뛸 것이냐?

그들의 사기는 얼마나 떨칠 것이냐? 그때에 이몸은 마상(馬上)에 몸을

날려 선봉장(先鋒將)으로 비호같이 이 왕검성으로 달려들면 찢어진

자명고에 사기(士氣)를 잃은 낙랑군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무너질 것이 아닌가?

 

그때는 고구려가 통일되는 날--- .

오랑캐는 한나라의 속국으로 삼백년이나 종살이로 신음하던 우리 불쌍한

겨레인 낙랑사람들은 통일과 평화를 찾은 기쁨속에 얼마나 행복할 것이냐?

그렇지--- 통이리 되는 그날에는 이몸도 승전의 장군으로 그리운

궁성으로 다시 돌아가 어엿한 고구려 왕자로 탈을 벗고 공주앞에

나타난다면 그는 얼마나 놀라며 반겨줄 것이냐?

그리고 이몸을 잘못알고 흘겨보던 부왕도 그리고 최리왕도 그때에는---

.

아! 나에게 힘이 솟아난다. 그러나 저 자명고를 무슨 재주로

찢는단 말이냐?

아슬라는 이러한 공상으로 가슴을 설레며 공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마침 울창한 나무밑에서 손짓을 하는 여성이 있다.

허름한 옷에 죽장(竹杖)을 짚은 여인--- .

눈이 뚫어지도록 자세히 바라보니 그가 바로 기다리는 공주인 것이다.

아! 공주---

그순간 아슬라의 눈에는 불꽃이 뛰며 단숨에 고루의 층층다리를

뛰어내려 울창하게 하늘을 덮은 고목 아래로 달려갔다.

아슬라! 아슬라! 어서 저 배를 타고 도망을 치사이다

공주! 잠깐만---

어서 이길로 떠나야 해요. 어서--- 어서---

이제 파달장군이 이리로 달려올 것이야요.

지금 파달장군은 이몸을 찾고 있어요.

뒷문으로 간신히 빠져 이렇게 평민으로

변복을 하고 나오는 길이오이다.

자! 어서 어서---

공주! 잠간만--- 잠간만

어인 일이오니까? 아슬라! 아슬라!

공주! 이몸은 한가지 청이---

예? 청이? 무삼 청이오니이까?

자! 보사이다! 이 보자기!

이렇게 우리가 일생을 먹고살 수 있는

금은 보화를 지니고 나왔사와요

아니 그런 청이 아니오이다

그렇다면 무삼 청이오니까?

공실도 부왕도 버리고 따라가는 아슬라의 청이라면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올 몸! 자! 어서--- 아뢰어 주사이다.

공주! 진정 이몸을 생각한다면--- . 진정 이몸의 소원을

들어주시려면 저기 솟아오르는 햇님에게

손을 들고 맹세할 수 있겠나이까?

이말에 공주는 햇님을 우러러 눈을 스르르 감고 한손을 살며시 올린다.

공주! 놀라지 말고 들어주오. 고구려와 낙랑은 에로부터

한 나라 한겨레--- . 지금 우리 고구려의 국토 낙랑은 오랑캐

한나라의 앞잡이로 황송하오나 그대의 부왕 최리왕이 무고한

낙랑 백성을 노예로 삼고--- .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

우는데 왕실만이--- 그리고 한나라에 아첨하는 만조백관만이

주지육림(酒池肉林)에 풍악을 갖추고---

그만--- 그만--- 아슬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쩌란 말씀이오니이까?

그러니까 만백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는 두나라가 옛날같이

하나로 통일 되어야 할 것이며--- . 두나라가 통일되기

위하여는 --- 저--- 저---

그러니까 어쩌란 말씀이오니이까?

모란꽃같이 새뽀얀 공주의 얼굴은 삽시간에 창백하여져 상기한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아슬라의 얼굴만 애소(哀訴)하듯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어떠한 불길한 선고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공주!

그러니까 어쩌란 말씀이오니까?

그러니까 공주! 자-- 자--- 자명고를---

이말이 떨어지자 무슨 불길한 예감이 떠오른듯 한걸음 두걸음

아슬라에게서 뒷걸음을 한다.

아슬라는 공주에게 애소나 하는 듯이 한걸음 두걸음 따라가 오들 오들

떨고 있는 공주를 힘껏 포옹하여 버린다.

이때 불쑥 울창한 나무밑으로 살금 살금 걸어오던 파달장군 일행이

이 놀라운 광경에 흠칠 놀라며 고양이 새끼같이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살금 살금 걸어와 고목뒤에 숨는다.

이런 눈치를 채지못한 아슬라는 마침내 무서운 말을 뿜고야 말았다.

공주! 자명고만 없다면 나라는 통일되오

그러니 어쩌란 말씀이오니까?

자명고를 이칼로---

아슬라는 허리에 찬 칼집에서 쑥 비수를 빼니 예리한 칼날이 번끗한다.

예? 아슬라! 이 무삼 짓이요? 이몸더러 자명고를 찢으란

분부이시오니이까?

그렇소 나라의 통일을 바란다며는---

낙랑의 신기 자명고를? 아슬라---

그대의 사랑이 진정이라면--- 공주님---

낙랑의 국보인 자명고를?

공주가 고구려의 궁성에서 고구려의 왕자와 어엿한 백년가약

을 바라신다면---

예? 아슬라! 그러면 그대가 고구려의 왕자란 말이요.

그러면 그대가 불구대천의 원수--- . 왕자--- 호--- 호--- 호동

이란 말씀이오니이까?

그렇소, 이몸은 틀림없는 고구려 왕자호동! 공주! 공주!

이 몸을 용서하오

공주는 눈알이 뒤집힐듯 무서운 눈으로 아슬라를

노려보며 뒷걸음을 한다.

아슬라는 두팔을 벌리고 뒤따라간다.

아슬라! 나에게로 가까이 오지마오. 소리를 지르겠소. 원수!

원수! 왕자호동!

공주! 공주!

에잇 고약한자! 거짓 사랑으로 이몸을 농락하고--- 이몸으로 하여금

자명고를 찢게 한 후엔 이몸을 헌 신짝처럼 짓밟아 버리고

그리고는 혼자만 홀몸으로 도망을 치려는 자!

공주! 공주! 아니오이다

이몸을 거짓 사랑으로---

공주! 공주! 이옴은 진정으로 공주를 사랑하오

뻔뻔한 거짓말---

어서 이칼로 자명고를 찢어주오

이몸에게 가까이 오지마오. 나의 원수! 소리를 지르겠소.

이손을 놓아주오. 사람을 부르겠소

공주! 자명고를 찢고나서

이길로 배를 같이 타고 고구려로 떠나갑시다

거짓말--- 거짓말---

고구려 궁성에서 어엿한 백년가약(百年佳約)을---

뻔뻔한 거짓말---

이몸의 부왕은 반겨줄 것이오이다

거짓말--- 거짓말---

공주! 하늘을 두고 맹세하오. 저 해를 두고 맹세하오.

이몸은 진정으로 그대를---

아! 아슬라! 아슬라!

목숨보다도 그대를 더 사랑하오. 공주!

아! 아슬라! 왕-- 왕-- 왕자님--- . 그것이 진정이오니까?

무서운 원수를 노려보며 한걸음 두걸음 뒷걸음을 하며 분노와 증오심에

불타는 눈동자는 어느덧 애처러운 눈동자로 변하여 버리고

그눈에는 구슬같은 눈물이 방울 방울 흐르며 아슬라의 품속에

그 얼굴을 파묻고 느껴우는 것이었다.

아슬라는 마치 산고(産苦)을 치른 산모(産母)인양 진땀을 흘리며

가슴이 터지도록 힘껏 공주를 껴안는 찰라--- .

이놈아 꼼짝말고 섰거라. 고구려왕자 호동!

청천벽력같은 고함소리가 터지는 순간 벌떼같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

파달장군의 일당은 왕자 호동의 가슴에 포승을 지우고야 말았다.

이렇게 불의에 기습을 당하고 보니 천하에 검술을 떨치는

호동이라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칼집에서 칼을 빼지도 못하고 원통하게 그는 아람드리 고목에

강아지새끼처럼 비끌어 매여달리는 것이다.

호동을 바라보는 공주!

공주를 바라보는 호동!

놈들은 다음 순간 호랑이나 사로잡은 사냥꾼처럼 미칠듯이 날뛰며

제마다 목구멍이 터지도록 악담을 퍼부며 곤장으로 미친 개 치듯

후려 갈기기 내기상을 하였다.

저놈을 죽여라

저놈의 눈알을 빼어라

아하하하--- 그 맛이 어떠냐? 공주님 울지말고 저놈의 저꼴을

좀 보사이다. 아하하하--- 통쾌한지고--- .

자 우리의 원수 고구려 왕자 호동!

신기 자명고를 찢으러 온 자! 공주님을 농락한 뻔뻔한 놈!

저놈의 살더미를 오리 오리 오려내고

저놈의 앞가슴에 열두구멍을 뚫어라

 

아니되오. 아니되오. 그대들은 물러나오

파달에게 이러한 명령이 떨어지자 공주의 애소는 들은체 만체 놈들은

피묻은 곤장을 팽개치고 창검으로 호동의 가슴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여 눈물만 머금고 있던 공주는 이순간 고목으로 달려가

호동의 앞에 당황히 팔을 벌리고 창칼을 제지하는 것이었다.

아니되오. 아니되오. 아슬라는 이몸의 낭군이로소이다.

차라리 그칼로 이몸의 가슴을--- 자---

공주님 비켜나 주사이다

잔인 무도한 처사! 천벌을 무서워 하오소서.

상감마마에게 사뢰지도 않고 이 무삼 짓이오니이까?

파달장군님--- 장군님---

저놈은 오늘밤 잔치에 술안주감이로소이다.

이몸은 오늘밤 공주와 혼례를 할 몸

예? 파달장군 그 무삼 말씀이오니이까?

상감마마께서 --- 아하하하--- 그러니 자- 비켜나 주사이다

아니되오, 아니되오. 장군님---

오늘밤의 즐거운 사랑 잔치에 저놈의 피를 축배로 하고

이몸 의 가슴이 후련할 것을--- .

그때에 상감마마에게 사뢰기로 하리다

장군! 소원이로소이다. 아슬라의 생명을 살려 주오소서.

저렇게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째리지 마소서

공주님! 진정 그러시다면 이몸에게도 소원이---

먼저 소장의 소원을 저놈이 보는 앞에서 풀어주시겠나이까?

아슬라를 살려 주오신다면---

소장의 소원을 풀어 주오신다면---

예--- 예--- 장군--- 장군---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염불이나 하듯 손을 모고(모우고)

파달에게 애걸하는 것이다.

공주--- 그러시다면 저놈에게 이렇게 말하여 주오. 공주는

오늘밤 파달장군과 백년가약을 맺고 한평생을 낭군에게 바칠

것을 하늘을 우러러 합장하시며--- 시원한 소리로 저놈의 귀

에도 이몸의 귀에도 분명히 들리도록 공주님 소장의 소원이로

소이다. 저놈 앞에 가까이 가서 저놈의 귀에 들리도록---

공주는 가슴이 덜컥 내려 앉고 소름이 끼쳤다.

순결한 마음과 몸을 스스로 바친 사랑하는 낭군 앞에서---

이부를 섬긴다는 그 말을--- 하늘이 알면 금시 천벌이 내릴 말을---

내 어이 내입으로 한단 말인가?

공주는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며 고개를 들어 호동을 바라보았다.

선지피 방울이 흐르는 그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말없이 공주를 바라보는

호동은 터지는 아픔과 분노속에서도 고목처럼 태연하였다.

이신보국(以身報國)을 천추에 자랑하는 고구려 무사도(武士道)의 정신을

한몸의 추태로 인하여 더럽힐 것을 생각하는 비장한 결심에서 였으리라.

실상 소리를 지르며 추한 발악을 한것은 모진 매를 맞는 호동이가

아니라 비겁한 기습으로 호동을 박승지우고 추잡한 욕설과 야수적인

만행으로 승리를 자청(자처)하고 날뛰는 파달일행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파달장군의 만행은 공주로 하여금 더욱 악감과 증오감을

일으켰건만 그러나 어이하랴!

호동을 살리기 위하여는 표리가 부동하건만 파달이 시키는대로

아니하고는 못 백일(못 배길) 공주이기도 하였다.

호동의 앞에까지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놓은 공주는 품속에서 수건을

끄내어(꺼내어) 들고 다시한번 호동의 얼굴을 우러러 보았다.

그렇게도 풍채좋던 그의 얼굴에는 선지피가 흐르고---

머리칼이 얼굴에 흩어지고--- 옷이 갈래 갈래 찢어지고---

이 광경을 사랑어린 눈동자로

바라보는 공주는 복바치는 설음(설움)에 흐느껴 울면서

왕자님! 야릇한 운명의 장난이오이다. 이몸은 그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친몸! 이몸은 임(님)을 위하여---

지아비 를 구하기 위하여--- 저 파달장군에 시--- 시--- 시집은---

 

공주! 이몸은 고구려의 어엿한 무사! 공주는 백년가약을

맺은 나의 아내어늘 죽으나 사나 지어미와 지아비는 한마음

한몸됨이--- 천명이어늘--- 고구려 왕자 호동이가 지어미를

팔아 구차히 목숨을 건졌다는 오명을--- 그리고--- 그리고

--- 낙랑의 공주가 이부를 섬겼다는 그 오명을--- 천추에

남 길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후세의 웃음꺼리가 될 것을 원치 않으신다면--- 공주!

피를 씻고 머리를 가다듬어 주었다.

공주님! 무엇을 하나이까? 어서 그논에게 선고를---

호동를 연모하는 공주의 태도에 질투심에 불타는 파달장군은

칼집에 손을 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소리에 고개를 돌린 공주는 오만한 그 태도에 발칵 증오와 분노심이

복바쳐 그를 노려 보았으나 어찌할 방도가 없는 노릇이 아닌가?

예사 일 같으면 부왕에게 사뢰 천하에 대사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공주의 숨은 힘도 있건만--- 그러나 이 일만은 부왕이 아무리 공주를

금이야 옥이야 위한다기로 어쩔 방도조차 없는 일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된 공주는 파달을 흘겨보는 눈으로 살며시 웃음까지 억지로

지어보이면서 호동에게로 다시 돌아선 것이다.

이몸을 옥같이 부서지게 하소서

공주!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사랑 저승에서나 맺어보사이다.

자! 이놈들아! 나를 죽여라. 나의 고기를 먹어라.

나의 피를 마셔라. 네놈들 오랑캐가 낙랑 삼백년에 국토를 먹고

무고한 내나라 백성들의 피를 빨아 먹는것처럼--- .

자! 나를 씹어 먹어라. 자! 나를 어서 죽여라

이것이 세상을 하직하는 왕자의 소리다.

이것이 세상에 남겨 두는 고구려 무사의 넋이기도 하였다.

옆에서 八字 수염을 실룩거리며 치를 떨고 파달장군은 급기야

분노가 폭발되자 칼을 왈칵 빼여올리고 호동의 목을 치려는 것이다.

공주는 불현듯 파달의 손에 매어 달리며 옥신각신하더니 간악(奸惡)한

힘에 노곤하게 지치어 공주는 애처럽게도 땅에 쓰러지고야 만다.

자! 원수 호동아! 이제 네 소원을 풀어주마.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그 사랑은 내가 네놈을 대신하여 이어줄 것이니

공주는 내게 맡기고 마음놓고 가거라

이렇게 악담을 배앝고(뱉고) 다시금 칼을 올리때 어디선가 요란한

경종(警鍾)소리가 천지를 뒤흔든다. 다음순간 북문(北門)쪽으로 말을

달려 오는 병부사(兵符使)가 고함을 지르며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찢어진 自鳴鼓

이 소리에 깜짝 놀라며 그 쪽을 바라보는 파달은 당황히 칼을 멈칫하고 섰다.

화살 같이 말을 달려온 병부사는 말에서 내려 서며

고구려 군사의 내습을 아뢰는 것이었다.

병부요--- 병부! 고구려 군사가 왕검성으로 진격을 하고 있 소,

어서 자명고실 문을 열어제치오

뜻하지 않은 병보에 눈알이 뒤집힌 파달장군은 홍두깨처럼 뛰는 가슴을

헐덕거리며 마상에 높이 앉은 병부사를 향하여 소리쳤다.

병부사! 그것이 정말인가? 고구려 군사가 왕검성으로 몰려 온다고?

그렇소! 우리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이다. 왕검성의 운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 저 군사들은 무얼하고 있는거요?

저 자명고는 어찌된 것이요

병부사의 뜻하지 않은 말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눈초리로

병부사의 얼굴만 쏘아 보던 파달장군은,

그런데 그대는 누구란 말인가?

이몸은 얄루성에서 온 병부사! 그런데 저놈은 누구란 말이오니까?

저 고목에 포승을 진 놈이---

저놈이 바로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요

야! 뻔뻔한놈! 그러면 어째서 저놈을 아직까지도

저렇게 살려 두었단 말씀이오니이까?

그래서 소장이 저놈의 목을 막--- 치려던 길에---

파달은 다시금 잊어버렸던 호동을 노려보며 칼을 번쩍 올린다.

경종소리가 점점 소란하게 울린다.

잡아라. 잡아라

성문쪽에서 고함치며 달려오는 군사들의 소리인양하다.

아! 저소리 어느듯 고구려 군사가?

그렇소 우리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요. 저놈은 이몸이 단칼에

처리할터이오니 장군께서는 어서 자명고 문을--- . 그리고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잠시 존귀하신 몸을 한(漢)나라로 피하소서

으--- 응---

이렇게 대답대신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파달장군은 바위언덕으로

당황히 뛰어 올라 호령을 하는 것이었다.

이 병신놈들아--- 고구려군사가 저렇게 달려드는데 게서 무얼하고

육갑을 하는 것냐? 어서 이길로 성문으로 달려 가라.

성문을 지키라, 성문을 성문을---

자명고실 파수와 고목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군사들은

겁을 집어 먹으며 성문쪽으로 흩어져 간다.

낙랑의 신기로 감추어 있던 자명고문이 파달의 열쇠로 인하여

찌르릉 찌르릉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린다.

그때에 나타나는 자명고의 위용(偉容)--- 으리으리한 자명고--- .

불상같이 말없이 앉은 자명고--- .

낙랑국의 수호(守護)로 하늘이 주었다는 전설과 미신을 가진

이 자명고는 과연 적군이 국토를 침범할 때엔 뇌성벽력같이 저절로

울릴만한 어딘가 범하지 못랄 위용이 어린 북이 아닌가.

숨결 가쁜 시간이었다.

귀중한 생명이 좌우되는 아슬아슬한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호동은 금시 목이 떨어지려는 순간에 비로소 숙원이든 자명고를

박승을 지고 바라보게되는 이 야릇한 운명!

공주는 바야흐로 황천갈 호동의 품에 매여 달려 울고 병부사는

창을 호동의 가슴에 겨누고 파달장군의 행동만 바라본다.

파달은 호동을 바라보며 높다란 바위언덕을 한걸음 두걸음 내려온다.

이때였다.

호동의 가슴에 창을 겨누고 섰던 병부사는 별안간 칼로 박승을 선듯

베어버리고 호동의 무릎앞에 꿇어 엎드리고 고개를 든다.

왕자님--- 이몸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아! 그대가 누구란 말인가? 사다한! 사다한---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상감마마의 어명을 받들고 밀사로 온 몸! 왕자님을 모시고

환국(還國)하라는 어명--- 왕자님을 구하려고, 자명고를 찢으려고--- .

이렇게 변장을 하옵고---

이말을 들은 공주의 뜻하지 않은 기쁨은 호동의 놀라움보다도 컸다.

공주! 이기회에 저 저--- 자명고를---

예--- 예--- 자명고는 소녀의 손으로

공주는 품속에 지닌 비수에 손을 대어 본다.

병부사는 창을 들고 파달을 기다리며 섰다.

공주를 껴안은 호동!

호동을 껴안은 공주!

이광경에 놀라 날뛰는 표범처럼 달려온 파달은 눈에 불을 켜고 소리를

질렀다.

네 놈이 웬 놈이냐? 이게 무삼 짓이냐? 에잇---

아하하하--- 못난놈--- 소장은 오랑캐의 고기를 먹으러 왔다.

이몸은 파달장군의 피를 마시러 왔다

파달의 칼날이 허공에 번쩍이는 순간 그의 가슴에는

호동의 예리한 칼이

그리고 공주의 비수는 자명고의 한 복판에 박히는 것이었다.

쓰러지는 파달!

찢어지는 자명고!

잡아라, 잡아라, 고구려의 염탐을 잡아라

이렇게 소리치며 낙랑의 군사들은 이제사 여기저기

흩어져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위기일발의 아슬 아슬한 탈출을 앞두고

공주는 자명고를 찢고는 그만 맥이 풀려 그아래 쓰러진것이 아닌가?

이광경을 본 호동이가 그리로 달려가려하나 때는 벌써 늦다.

그곳에는 수많은 낙랑의 군사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었기 때문이다.

왕자님! 어서 저말을 타고 강변으로 빠져나가소서.

그리고 배를 타고---

그대는? 그리고 저 공주를--- . 어이한단 말이냐?

공주는 이몸에게 맡기소서

잡아라, 잡아라, 죽여라 죽여라---

어서 어서--- 왕자님---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으로 공주를 남긴채 호동은 다가오는

사지(死地)에서 말을 강변에 달리어 다달아 나룻배에 뛰어올랐다.

화살이 날아오고 강변으로 군사가 달려든다.

호동은 그리운 공주와 사다한을 남긴채 본의아닌 배를 혼자 타고

노를 저으며 대동강 물결을 차고 떠나는 것이었다.

왕검성을 멀리 떨어진 강상(江上)에서 바라보니 자명고실 옆에서 수많은

군사를 상대로 용감하게 칼싸움을 하던

장사(壯士) 사다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전사! 분명히 --- . 전사한 것이다. 사다한은 생명을 건져주고

대신 만족하게 죽은 것이 아닌가? 고구려의 용감한 무사의 주검이여!

그는 이렇게 중얼거릴 때 문듯 자명고실 옆

절벽위에 섰는 한 여인을 찾아 내었다.

손을 젖고 섰는 여인!

모란꽃을 뿌리며 홀로 섰는 여인!

그여인이야말로 그의 그리운 낭군인 왕자 호동의 앞길을 축원하는

낙랑공주의 애처러운 이별의 모습인 것이었다.

국경 산악의 밤은 깊어만 간다.

바로 맞은 편에 낙랑의 산악을 바라보는 고구려 국경의 산상에 집결한

고구려 대군은 낙랑 진격의 영만을 기다리며

오늘도 불안속에 하룻밤을 꼬박 새는 것이었다.

산골짝마다 고목(古木)아래마다 날이 밝으면 판가리 싸움터로 생명을

걸고 나설 수많은 군사들과 군마(軍馬)들이 창검을 옆에 세워 놓고

결전전야(決戰前夜)의 잠을 부르는 것이다.

허나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생명을 기약할 수조차 없는 그들이 말없이 돌베개에 누워---

조국의 땅에 누워 이사통일(以死統一)을

맹세하는 비장한 눈과 눈에는 제마다 색다른 환상들이

별나비처럼 오고 가는 것이다.

고향에 두고온 그리운 처자!

낙랑의 신기 자명고!

호동장군의 실종(失踪)!

한번 칼을 들면 고구려 호반 이란 그 이름만 들어도 적군의 간장을

서늘케 한다는 용감무쌍한 고구려 군사였건만 이번 싸움에서만은

어느 싸움에서나 선봉장이었던 호동장군이 자취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낙랑에 자명고 있다는 소리에 제마다 마음 한구석에

불길한 예감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이렇게 불안한 마음에서 어느 호반들은 승전의 축배로써 마련된 큼직한

술독에서 연성 바가지 술잔을 들이키고는 그냥 큰 절이나 하듯

꼬꾸라지는가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여인의 머리채를 가슴에 얹고

눈물이 글성 글성한 호반도 있는 것이다.

전쟁 전야에 있어서 이러한 불안과 불길한 예감이란 일찌기 연전연승의

전통을 자랑하는 고구려 군사에게선 그 그림자조차 엿볼 수 없던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전의 전야에 군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보니 군사들보다도 불안감에서 눈에 불을 켜게 된 것은

그들을 인솔할 장군들인 것이다.

어느 절벽위 정각에선 맥빠진 군사들의 이러한 광경을 굽어 보던

몇 장군들이 작전계획을 둘러싸고 두가지 의견이 대립이

제마다 큰 입에서 불을 뿜기 시작하였다.

군사의 사기란 천군만마보다도 강한 힘이라고 병서(兵書)에도

지적하였으니 좀 더 때를 기다림이 지당한 줄로 아뢰오

지당하오나 부당한 말씀--- . 사다한이 낙랑궁성으로 떠나간지 어느덧

달포에 가까우니 우리 어찌 왕자님의 생환을 기약하리요.

듣자하니 오랑캐 파달이가 한나라에 청병하여 고구려를 정벌하려는

야망을 귀공(貴公)도 아신다면 그 어찌 진격의 지연을 고집한단 말이요?

아니되오. 장군! 승산이 없는 싸움은 망국의 싸움!

무엇이? 그대는 고구려 사람인가? 오랑캐의 앞잡이냐?

나라를 망치려는 당신이야말로 천추에 고구려 무사도를

더럽힐 망국의 장군임을 알으라

이렇게 옥신각신 싸움을 하는 동안에 결전의 음산한 밤이

훤하게 밝게 되자 급기야 낙랑통일의 진격을 준비하라는

전고(戰鼓) 소리와 소라 나팔 소리는 널려진 고구려 군사에게

무서운 긴장과 흥분을 뿌리며 방방곡곡에 전파되었다.

하늘을 덮은 예리한 창검!

전고에 날뛰는 군마와 군기

결전을 맞으려는 눈동자--- 눈동자---

진격령이 떨어지려는 찰라의 침묵---

이제 낙랑통일의 진격령을 입에 담고 마상(馬上)에 몸을 실은 한 장군이

고구려 흥망의 운명을 지니고 대군앞에 나서는 것이다.

그는 허공에 창을 올리며 외쳤다.

용감한 고구려 군사여 보라! 여기를 보라! 항상 원수와의 싸움에서

선봉장이시던--- . 고귀한 왕자님의 몸으로 선봉장이시던--- .

호동장군은 오늘 싸움에 아니 계시다.

우리는 호동장군의 뒤를 따라야 한다

이때였다. 막 진격령이 내리려하는 찰라! 앞산 산마루를 넘어

쏜살같이 말을 달려오는 낙랑의 무사 한사람이 있다.

이 광경을 본 고구려 군사들은 일제히 활을 겨누고 눈에 불을 켰다.

긴장과 흥분의 시선속에서 고구려군사의 진지에까지 달려온 낙랑의

무사는 손을 저으며 선봉장(先鋒將)의 기치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모든 군사는 연장을 겨냥한채 넋을 잃고 바라만 볼 뿐이다.

선봉장 한사람이 창을 세우고 말을 몰아 달려가기가 바쁘게 낙랑 무사의

가슴패기에 창을 찌르고야 말았다.

와!

하고 진지에서는 목구멍이 터지듯이 고함소리가 터진다.

위기일발의 찰나였다.

마상에서 날쌔게 몸을 피해 선봉장의 창을 빼앗은 낙랑군사는 허공에

창을 휘두르며 외치는 것이다.

용감한 고구려 병사여! 나를 자세히 쳐다 보라!

이몸은 고구려 군사의 선봉자! 왕자 호동이다!

이 놀라운 말이 떨어지자 칼을 빼여들고 달려들던 몇 장군은 뜻하지

않은 호동장군의 출현에 얼을 잃고 서로 바라만 볼 뿐이다.

눈과 눈--- .

얼굴과 얼굴--- .

침묵과 환희.

솟아나는 눈물--- .

어느 장군은 마상에서 호동의 무릎에 엎드려져 복바치는 기쁨에 목놓아

울었고 어느 장군은 말에서 뛰어내려 머리를 땅에 떨어뜨리고 경배를 하고

나선 미친 사람마냥 땅을 치며 좋아서 날뛰었다.

감격과 눈물과 침묵속에 흐르는 긴장한 시간은 급기야 천지를 뒤흔드는

환호와 만세소리로 발칵 뒤집히고야 말았다.

만세! 만세!

호동장군 만세!

왕자님 만세!

낙랑의 군복으로 변장한 무사가 호동장군임을 알게된 고구려대군은 기쁨과

놀라움에 복바치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터져라 하고 만세를 불렀고

창검을 허공에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그 기쁨은 저승에서 어버이가 살아온 기쁨보다도 더 하였다.

그 힘이란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힘보다도 더 하였다.

빛나는 승전에는 반드시 용감한 군사가 있고 용감한 군사 앞에는

반드시 애국의 명장이 있어야 한다.

간밤의 불안은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먼동이

튼 동녘 하늘에는 비죽히 아침 해가 솟아난다.

호동장군의 실종으로 인하여 땅에 떨어졌던 군사의 사기는 호동장군의

출현으로 인하여 금시 적군을 훌떡 집어 삼킬듯이 펄펄 뛰는 것이다.

이 광경을 말없이 마상에서 바라보던 호동장군은 허공에 손을 저었다.

소란한 진지에는 금시 죽은듯한 침묵이 흐른다.

날개 돋은 용마(龍馬)를 타듯한 명장 호동은 불타는 가슴과 입에서

말마다 불을 뿜고 눈물을 뿜었다.

승전의 북소리와도 같고 사자의 울음소리와도 같았다.

용감한 고구려 병사여 들으라. 오랑캐 한나라에서 빼앗긴 고구려의

국토 낙랑을 이제야 통일할 날은 왔도다. 오랑캐의 종살이로 삼백년이나

갖은 학대를 받고 울던 그리운 낙랑의 동포와 얼싸안고 만나볼 날은

이제사 왔도다. 그대들은 아는가? 밀사로 간 사다한이가 왕검성에서

세운 천추에 빛나는 공로를! 이 낙랑의 신기 자명고가 찢어진 것을?

이말을 들은 고구려 군사들의 눈알은 기쁨에 발까닥(발칵) 뒤집히고

진격의 첫 발자국을 떼려는 그들의 어깨에는 날개가 돋히는듯 가뿐하였다.

만세! 만세!

자! 가자! 오랑캐를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러 가자! 우리의 후손들이

천추만대로 찬양할 고구려 통일의 역사를 만들러 가자!

자! 말고삐를 쥐어라.

창검을 억세게 쥐어라.

진격이다 북을 울려라.

우리는 벌써 이겼도다 자! 가자!

진격령이 떨어지자 사기 충천한 고구려군은

천지를 뒤흔드는 전고소리와 함께

호동장군은 선봉으로 낙랑의 국경산야를 넘어 일사천리로

왕검성으로 쏜살같이 달리는 것이었다.

 

 

 

슬픈 사랑

병부사(兵符使)로 가장한 사다한의 연극에 속아넘어간 낙랑의 왕실은

말벌이 둥지를 터친 것처럼 원한과 불안속에 떠들석하였다.

고목아래 쓰러진 파달의 주검!

갈래 갈래 칼부림을 맞은 자명고!

게다가 호동의 탈출?

이 얼마나 놀라운 사변인가?

삽시간에 청천벽력 같이 하늘에서 떨어진 이 사변은 낙랑 삼백년의

보물을 한꺼번에 거느리고 간 셈이다.

이 광경을 본 낙랑의 문무 백관은 너무 어이가 없고 맥이 풀려 서로

입을 딱 벌리고 바라만 볼 뿐이었고 이 흉보(凶報)를 들은 전방의 무장한

낙랑의 군사들의 사기(士氣)는 더할 나위없이 땅에 떨어지고야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워낙 성미가 콩볶듯 하는 최리왕은 머리털 끝까지

왈칵 분노가 치밀어 자명고를 찢고 왕자호동을 도망시킨 죄로

그날로 당장 공주를 옥(獄)에 가두고 사형선고를 내리고야 말았다.

자명고가 찢어지고 보니 고구려를 정복하려던 불타는 영웅심은 흔들리기

시작하였고 왕검성 밖의 백성들은 왕실을 원망하는 소리가 나날이 높아 갔다.

게다가 하늘같이 믿고 있는 파달장군마자 하룻밤 사이에 황천의 객이

되고 보니 무슨 낯작(낯짝)으로 한(漢)나라에 고구려 정벌의 원병을

청한단 말인가?

왕은 앞날의 일이 걱정이 되었다.

왕검성을 탈출한 왕자 호동은--- 그리고 호동을 맞아 의기충천한 고구려

군사는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그대로 있을 것만 같지 않다.

왕은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왕검성을 뛰어 넘는 고구려 군사들 그리고 왕자 호동의 늠름한 무서운

얼굴이 불쑥불쑥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할 수록 원망스럽고 얄미운 것은 공주이다.

부왕을 배반한 공주!

낙랑을 배반한 공주!

원수와 불의의 정을 맺은 공주!

호동을 탈출케 한 공주!

옥중에서 울면서도 호동을 그리는 공주!

공주가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당장 목을 두토막으로 내어도

시원치 않을 무서운 죄상이었건만 그래도 공주의 사형을 결행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 날을 물림이 왕의 쓰라린 심정이었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공주의 사형을 왕이

친히 자기 칼로 결행할 것을 선포한 날이 아닌가?

낙랑 삼백년의 영화를 자랑하는 왕검성의 밤은

상가집마냥 죽은 듯이 고요하다.

왕은 잠자리를 걷어차고 미친듯이 창밖으로 뛰어 나왔다.

울창한 고목들이 오늘따라 무시무시하게 활개를 벌리고

자기를 흘겨 보는 것만 같았다.

흘러간 몇날전만 하여도 그 녹음 아래서 꽃같은 궁녀들과 풍악을 갖추고

꽃놀이의 술잔을 들던 이 울창한 고목들이건만 오늘밤은 그 가지마다

그 잎사귀마다 원한많은 낙랑백성들의 억센 주먹으로 변하여

성난 눈으로변하여 흘겨만 보는 것같았다.

왕은 달빛에 어둠길을 더듬어 가며 자명고실 밑에

자리잡은 옥으로 가까이 갔다.

날이 밝으면 황천으로 갈 공주의 얼굴이나마 마지막으로

한번 보리라는 어버이의 눈물겨운 마음에서였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 살금 살금 옥문 앞에까지 가까이 갔다.

고목에서는 접동새가 접동--- 접동--- 하고

그리운 임을 찾는듯 슬피 울어준다.

옥안을 살펴 보니 캄캄하다.

문듯(문득) 한구석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달빛속에 흐릿하게 나타나는 한 여인의 모습!

밤하늘의 뭇 별을 바라보며 합장(合掌)하는 거룩한 모습이 아닌가.

왕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날이 밝으면 저승으로 갈 몸이 저렇게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천지신명에게 뉘우치는 것이 아닌가?

왕의 어두운 마음에는 한줄기 광명이 비치는 것만 같았다.

몸은 비록 국법에 의하여 이승을 떠날지라도 저승에나마

좋은 곳으로 가리라는 신앙에서였다.

왕은 서러운 마음을 가다듬어 큰 기침을 하고는

침을 배앝듯 투박하게 말을 부쳤다.

이년아! 인제사 네 잘못을 뉘우치는가?

아바마마--- 불효한 이 딸을 용서하오소서

네 년은 나의 딸이 아니야. 나에게 일찌기 딸은 없었노라

아바마마--- 날이 밝으면 영영 헤어질 이몸---

제발 비옵나니 한마디 말을--- . 이몸이 저지른 죄를 용서하시고

이몸을 아가--- 라고 이몸을 딸이라고 한마디만 불러주어소서

아가라고? 내 딸이라고? 아하하하--- 이제 때는 늦었노라.

내 그대에게 물어 보노니 무슨 남길 말은 없는가?

무슨 하고 싶은 말이나 없는고?

아바마마--- 한가지 소원이---

어서 말해 보라. 황천으로 가는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면

무엇 이나 이루어 주겠노라

아바마마--- 불효 소녀는 호동왕자님과 백년가약을 맺은 몸

무엇이? 백년가약? 그래서---

이몸이 죽사오면 무덤의 비석에 고구려왕자 호동지처(好童之

妻)라는 이름 이름 넉자를 색여(새겨) 주오소서

에이--- 고약한 년! 요사스러운 계집--- , 황천가는 순간에

나마 이승에서 저지른 죄를 천지신명에게 뉘우치는

줄만 알았더니 에- 잇--- 호동지처라고?

이 천벌을 받을 계집아---

원수 호동이가 이 애비보다 중하더냐?

불의의 사랑이 저 자명고보다 중하더냐?

자! 이제 날이 밝았다.

네년이 죽을 때가 이제 왔도다. 그리고 이 아침에 낙랑군에

출진령을 내려 고구려군을 전멸시킬 것이다.

그리고 네년의 지아비라는 왕자호동의 목을-- .

이칼로 네년의 목을 치듯이--- .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왕이 칼집에서 칼을 빼여들고 미친듯이 날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자명고실쪽에서 무관 한사람이

예- 이

하며 뛰어나오기가 바쁘게 땅에 코를 박고 왕앞에 엎드린다.

이길로 문무백관을 이리로 오게하라.

국적인 낙랑공주를 이칼로 친히 목을 치고 짐이 선봉으로

고구려 정벌의 길에 나서겠노라

놀라운 왕의 말에 간장이 콩알만해진 무관은 자명고실 앞에

느러진(늘어진) 설렁줄(招人鐘)을 흔드니

요란한 방울소리가 왕검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공주는 머리를 단정히 가다듬고 다시 하늘을 우러러 합장을 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죄 많은 이 계집아이를 자비하옵신 품안에 받아주오소서

이몸의 지아비 호동님을 위험한 자리에서 언제나 건져주오시고.

소녀와 이승에서 다 하지 못한 인연

저승에서나 맺어지게 하오소서---

나라에 대사가 있을 때마다 울려오는 방울소리에 불길한 예감을 가진

문무백관들은 자명고실 앞뜰에 모여들어 서로 왕의 눈치를 엿보고

옥중의 공주를 번갈아 보았다.

왕은 칼집에서 칼을 번쩍 빼여(빼어)들고 뇌성벽력으로 호령을 하였다.

옥안에서 공주를 끌어내라

옥사장은 공주를 앞세우고 조심 조심 왕의 앞에까지 나왔다.

공주를 흘겨보는 최리왕!

왕을 눈물로 바라보는 공주!

그러나 공주는 태연하였다.

아무런 불안도 공포도 없는 모습이었다.

짐은 이제 국적의 목을 치고

이길로 고구려 정복의 영을 내리기로 하노라.

낙랑의 운명은 경들의 두 어깨에 지워졌나니 이제 한목숨

나라에 바치고 낙랑군의 선봉에 설 장군은 이 앞에 나설지어다

문무백관들은 고개를 떨어뜨린채 서로 눈치만 보고 아무 말이 없다.

어이 하여 말이 없는고? 추라장군은 어떠한고?

저--- 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몸은 이미 늙은 몸이오라---

늙었다고? 못난자!

그러면 백호장군은 젊었으니 짐을 위해 전공을 세울터이지

예--- 예--- 아뢰옵기 왕공하오나 저렇게 자명고가---

자명 고가---

자명고가 찢어져 승산이 없단 말인가? 에잇---

그러면 용마 장군은?

예--- 예--- 저--- 저--- 소장은 불타는 충성지심(忠誠之心)

금할길 없나이다

그렇지 그럴터이지--- 과연 그대가 충신이로고--- .

그러면 그대가 이번 싸움에 선봉장으로 고구려군을 전멸할지어다

상감마마--- .

그러하오나 이 몸에게는 늙은 어버이와 처자 가 달린 몸이오라---

무엇이? 처자가 달렸다고? 에잇 버러지 같은 것들---

간사한 것들--- 이것이 짐에 대한 충(忠)이란 말인고?

 

이때였다.

왕검성 밖에서는 낯설은 전고(戰鼓)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것이 아닌가?

전고소리는 점점 커지며 하늘을 진동하는 요란한 북소리로 변한다.

터지는 만세소리--- .

고구려 통일 만세!

아우성 소리를 지르며 여기 저기서 도망을 치는 군사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수라장을 이루기 시작이다.

왕은 도망을 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공주를 베인 칼로 자신도 낙랑 삼백년의 운명과 함께 하려는 비참한

결심이 눈앞에 벙끗하자 공주를 노려보며 칼을 번쩍 올렸다.

이때에 어디선가 낯익은 소리--- .

공주! 공주!

말발굽소리와 함께 터지는 숨결가쁜 소리였다.

칼을 받으려는 찰나 이소리를 들은 공주는

생명의 수호신(守護神)을 만난듯 부왕의 칼을

뿌리치고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아슬라! 아슬라! 왕자님! 왕자님!

공주! 공주! 어디 있소. 공주!

공주를 찾는 호동!

호동을 찾는 공주!

그러나 얄구진 운명이었다.

공주를 뒤따라온 최리왕은 공주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자기도 그 칼로 자결하고야 만 것이다.

고구려의 통일과 함께 낙랑 삼백년의 운명과 함께 쓰러진

최리왕과 공주의 주검이었다.

호동은 절벽 밑으로 걸어가다가 소스라쳐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절벽밑에 쓰러진 가엾은 여인!

공주! 공주! 내가 왔소. 공주! 왜 말이 없소?

호동은 공주의 시체를 흔들어 보고 안아보고 하다가 허공에 손을 저으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에이 소란하여라. 저 북소리 만세소리---

모두가 나에겐 통곡소리 같구나.

아침해여 뜨지마라 온갖 새여 노래마라, 아! 사랑의 선물로 꺽은

이꽃은 황천으로 가는 길에 제물이런가?

그렇지--- 이몸도 갈 때가 왔다!

고구려는 이제사 통일이 되어 만백성은 저렇게 좋아서

행복에 날뛰게 되었나니 이몸이 이제 구차히 살아서 무엇하랴.

호동은 예리한 칼로 가슴을 찌르고는

공주의 피흐르는 가슴위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끝>

 
김 광남 - 사랑의 낙랑공주

 

출처 : 演好마을
글쓴이 : 설봉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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