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근
전 방송통신위 상임위원
얼마 전 미국 CIA가 주도한 빈 라덴 제거 작전이 성공했다. 이러한 대테러작전이 성공한 배경에는 정보기관의 통신감청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이 숨은 뒷얘기다. 불법인 도청과 합법적 감청에 대한 엄연한 차이를 알면서도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을 막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미국·영국·독일·호주 등 선진국은 1980년대 말 냉전 종식 직후 디지털 정보시대 도래를 예견하고 테러·마약 등 새로운 국가안보 위협요인 증대에 대비할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선진 각국은 그 대처 방안으로 국제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휴대전화 등 첨단 통신 감청을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서 1990년대 중반부터 통신업체 협조 의무화와 관련 예산 지원, 투명한 절차를 담보하는 법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북한의 각종 도발과 사이버 침해에 노출돼 있고 심지어 테러조직과 마약 등 국제범죄의 경유지가 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안보와 치안이 불안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보기관의 대테러작전과 법 집행기관의 치안 능력 확보를 위한 법제도가 낙후된 채 장기간 방치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다. 선진국이 가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보할 때다.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관련법이 지연되고 휴대전화와 첨단 통신이 북한의 무력도발과 테러·범죄 집단에 해방구처럼 방치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국가는 외부의 적과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할 책무가 있다. 누구도 이러한 국가의 노력을 막거나 호도해서는 안 된다.
현행 통비법도 사실은 모든 종류의 통신수단에 대한 감청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다. 문제는 정보기관이 장비를 개발하고 이를 직접 운영해 도청을 함으로써 생긴 적폐를 청산하면서 합법적 감청의 길을 준비하지 않는 우를 범한 데 있다. 이제 법 집행기관도 이러한 모순을 확인함과 동시에 국회의 입법 지연으로 인한 범죄 수사 역량의 결핍을 스스로 채워 나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휴대전화의 감청에 필요한 기술적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안보와 치안에 대한 위협은 그 대응을 한시도 늦출 수 없다. 결코 ‘강 건너 이웃의 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형태근 전 방송통신위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