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삼도헌의 한시산책 151)

含閒 2011. 5. 18. 10:17

    

 

  

                                                             (해인사 농산정)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최치원(崔致遠 857-?)

 

                                          

          狂噴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하니 :

            층층 바위돌에 분출하고 겹겹 산에 포효하는 물이니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이라 :

            가까운 곳 사람의 말소리조차 구별하기 어렵네.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하여 :

           시비 가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서

 

         故敎流水盡籠山(고교유수진농산)이라 :

           일부러 흐르는 물더러 온 산을 돌게 하네.

 

 


   * 噴내뿜을 분 疊포갤 첩 吼울부짖을 후 巒이어진산 만 咫가까울 지 籠바구니 롱

 

 

  오늘은 이번 2011년 6월 11일(토) 서예세상 정기답사지인 해인사에 있는

  농산정을 읊은 최치원의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최고운의 이 시는 작가 스스로 농산정에 앉아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하고 자신의 입장을 이에 빚대어 노래한 것입니다.

  최치원은 유가로서, 불가로서, 도가로서 삼교를 융회관통한

  통일신라시대 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서예가입니다.

  농산정 앞에는 최고운의 글씨로 일컬어지는 전지 한 장 크기의 행초서가

  마애각서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되면 현장에서 탁본도 해 볼 생각입니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1구에서는 해인사 입구 매표소를 지나 수백미터 올라가다 왼쪽을 보면

   농산정이 보이는데 거기서 보는 자연풍광을 묘사하고 있지요.

   산골을 흐르는 물소리의 기세와 그 소리를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그가 서있는 공간이 작자가 바라는 현실 세계와 멀리 떨어진 깊고

   조용한 곳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직접 농산정에 서보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은 경치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2구에서는 미친 듯 성난 듯이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의 기세를

   묘사하고 있지요. 그 물소리는 마치 호랑이나 사자가 울부짖듯 하고

   너무 세차고 줄기차서 고요한 산골짜기를 소리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곁(咫尺間)에서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人語)조차

   알아들을 수 없을(難分) 정도이지요. 실제 해인사 농산정에 앉아보면

   실감이 납니다. 여기서는 산속 물소리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소리마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현을 함으로써, 1구에서 조성된 공간이 2구에서도

   세상과 담을 쌓고 있는 공간임을 재확인하고 있습니다.


    3구에서 작자는 자신에게 실망과 상처를 준 인간세상의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대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지요. 그래서 그는 항상(常)

   두려워한다(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목숨 걸고 따지는

   시비소리(是非聲)로 그 소리가 귀(耳)에 들리는 것(到)이 싫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인간의 시비를 따지는 소리가 고요한 산 속을 오염시킬까

   항상 두렵다는 작가의 다소 염세적인 태도가 보여집니다.


    4구에서 작자는 산골짜기의 물은 온 산을 둘러 흐른다고 전제합니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의 시비소리가 고요한 산에 이르는 것을 막기위해,

   조물주가 일부러(故) 흐르는 물(流水)로 모든 산(山)을 다(盡) 둘러서

   돌(籠)게 한 것(敎)이라고 보았던 것이겠지요. 여기서는 조물주가 계곡의

   물소리로 자연을 지키듯이, 자신은 무너져가는 신라사회의 혼란에서 오는

   온갖 부당한 현실속에서 자신의 순수한 이상을 지키려는 결의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작가탐구

 

 

     고운 최치원은 13세에 당나라에 유학한 뒤 귀국하였으나 6두품의 신분상

   한계를 절감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글을 쓰는 문인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모든 한문 문체에 능숙하였고, 우리나라 한문학의 비조로

   <<계원필경>>이라는 개인 문집을 내어 '동국문종'으로 추앙받고 있지요.

   말년에 해인사에 은거하면서 신선이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몰년을 모르지요...

   최고운은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서예가입니다. 그는 당나라 유학을 통해

   신라를 대표하는 문장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문장을 짓고 붓으로 글을 쓴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사산비명>으로 그 가운데 쌍계사에 있는 <진감선사비>는

   백미에 해당합니다. 답사 때 최고운에 대해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총총...

 

 

     이번 서예세상 답사(6월 11일)때 해인사를 찾아 농산정에 앉아보면

   최고운의 시심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몇 번 해인사

   농산정을 찾아 신선이 되어 가야산으로 들어갔다는 최고운의 흔적을

   더덤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최고운을 생각하면서 신선이 되어 봅시다. 단, 하루라도...

   신선처럼 마음이 쿨해지면 돌아와서 느낌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