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居(산거)-李仁老(이인로;1152-1220) 한시 감상
2004/05/13 19:04 |
산에 살며-李仁老(이인로)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 봄은 지났는데 꽃은 아직 남아 있고
天晴谷自陰(천晴곡자음) : 하늘은 개었어도 골짜기는 어둑하구나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 두견새 한낮에도 구슬피 우니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 비로소 깨달았소, 내가 깊은 산에 사는 걸을
<감상1>-오세주
이 시의 작가 이인로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다. 그리하여 그는 절에서 스님에게 키워졌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 환속하여 당시의 문인인 오세재, 임춘 등과 활동했다.
무신인 정중부의 난(1170년)이 일어나자 다시 절에서 난을 피한 후, 환속하여 118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쳤다. 그는 시와 글씨로 이름을 남겼다.
먼저 1, 2구를 보자
春去花猶在(춘거화유재) : 봄은 지났는데 꽃은 아직 남아 있고
天晴谷自陰(천청곡자음) : 하늘은 개었어도 골짜기는 어둑하다
“春去(봄은 가다)”에서 미루어 볼 때, 시간적 배경은 늦봄이거나 초여름이다. 마찬가지로 “谷(골짜가)”에서 미루어 볼 때, 공간적 배경은 山이다.
여기에 처음 등장하는 사물은 꽃(花)이다. 꽃은 계절과 아주 밀접히 관련되어 존재한다. 봄꽃은 봄에 피고, 여름 꽃은 여름에 피는 것이다. 봄꽃이 가을에 피는 일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정상은 아니다. 아마도 곧 죽어버릴 것이다.
1구에서 “春去(봄은 가다)”와 花猶在(꽃이 아직도 있다)“의 연결에 전절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봄은 갔는데“ 봄에 피어야할 봄꽃이 ”오히려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일반적 예상이나 상식과는 다르다는 뜻일 것이다. 작가의 이 표현이 기쁨의 표현일지 불만의 표현일지는 이 시 전체의 문맥에서 밝혀질 것이다.
2구에서는 공간적 배경이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즉, 하늘은 맑게 개이고(天晴) 골짜기에는 그늘이 진다(谷自陰)는 것이다.
2구의 연결도 전절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이 맑게 개였는데(天晴), 오히려 골짜기에는 그늘이 진다는 것이다(谷自陰). 물론 이 표현은 그 만큼 “골짜기가 깊다”는 표현이다. 그것이 작가에게 무슨 의미가 있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일까. 이것은 이 시의 내면적 의미와 관련 될 것이다.
작가는 하늘이 맑게 개였는데도 그림자가 드리운 깊은 골짜기가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작가가 이전에는 오랫동안 이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1, 2구에서, 결국 골이 깊은 골짜기의 늦봄에 꽃이 핀 날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설정되었다. 그리고 그 배경이 작가에게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3, 4구를 보자
杜鵑啼白晝(두견제백주) : 두견새 한낮에도 구슬피 우니
始覺卜居深(시각복거심) : 비로소 깨달았소, 내가 깊은 산에 사는 걸을
3 구에서는, 날아 움직이는 새가 등장한다. 1, 2구에서 조성된 시간과 공간에서, 봄이 지났는데도 피어있는 꽃과 하늘이 맑은데도 그늘진 골짜기를 낯설어 하는 작가에게 결정적으로 두견의 울음소리(杜鵑啼)가 들려온 것이다. 그것도 한낮(白晝)에 말이다.
4구에서는, 한낮에 들리는 새소리에 의해 자기가 지금 사는 곳(卜居)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深) 산골임을 비로소 알겠다(始覺)는 것이다.
3구와 4구의 의미적 연결은, 3구는 4구의 원인이 되는 구절이다. 곧, 한낮에 우는 두견새 소리로 내가 세상과 떨어진 깊은 산속에 산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즉, 두견새 소리로 인하여 좀 생소하게 느껴지는 1,2구의 현상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제야 실존의 자신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왜 그럴까. <깊은 산 숲 속에서는 두견새의 소리는 늘 들을 수 있지만, 도시나 시골 고을에서는 봄이나 가을의 이동시에만 두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현상적 생물학적 사실과 망한 고국 촉나라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촉나라 충신의 넋이 두견새로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문학적 의미로서 <망국의 한이나 사랑을 잃은 사람의 심정>을 표시한 내포적 의미로 인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낮에 우는 두견새 소리는 <자기가 집착하는 곳에서 밀려난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환기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인로는 조실부모하여 스님에게 양육되는 성장기를 거쳤다. 그러나 어떠한 인연으로 세상살이를 하게 되었고, 세상에 나온 그는 문자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그의 세상살이는 마땅히 그 당시 지식인의 목표인 과거시험을 보고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 이러한 목표는 좌절되고 다시 산 속에 숨어사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좌절된 꿈을 확인 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두견새 소리였던 것이다. 자신의 현실은 <세상에서 도망 온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1,2,3,4구를 종합하자
산속 생활이란 지루하다. 특히 세상살이를 경험한 사람에게 산 속 생활이란 정말 단순하고 지리한지도 모른다. 특히 세상적인 욕심과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는 지옥과 같을 지도 모른다. 매일 하는 일이란 것이 봉우리와 봉우리를 오가고, 사방 푸른 나무와 풀, 몇 날이 지나도 사람 만나기 어려운 단순하고 지루한 생활이다.
이러한 한적한 생황에서 늦게 핀 꽃에도 관심이 가고, 골짜기의 그늘에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면 때로는 자신이 왜 이러한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두견새 소리는 갑자기 잊어버린 지난 세상살이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좌절된 뼈아픈 자신의 처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둑한 골짜기 그늘을 세월이 지나도 잊어지지 않는 자신의 근심을, 봄 늦도록 남겨진 봄꽃을 좌절되었지만 포기하지 못한 자신의 꿈과 동일시하는 무의식의 끈을 언어로 표출한 것이다. 그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 자신이 세상과 너무나 먼 깊은 산골에 와 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 어쩌면 산 속이 깊어 하늘이 맑아도 골짜기의 그늘이 깊다고 표현한 그 만큼 이인로의 좌절된 꿈이 높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이시는 <현실 참여가 좌절된 지식인의 내면 의식이 자연을 소재로 표현된 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그 시대 지식인의 대표적 정서이다. 마음 속에 걱정이 있는 사람은 잠을 자도 잠들지 못하는 것처럼, 세상에 미련이 있는 사람은 산에 살아도 이미 산사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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