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선택맹

含閒 2009. 4. 22. 14:36

선택맹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지금의 상태가 무척 행복하다는 한 독립영화 감독은 원래 중국이란 나라에 능통한 직업을
가지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중국 시장의 전문가가 되면
장래가 밝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으니까요.
그가 영화감독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쾌합니다.

중국어를 배워서 취직 잘하고 돈이나 잘 벌자고 생각했었지만,
그건 원래부터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돈보다 중요한 걸 찾지
못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잘 몰랐고,
거기에 전력투구까지 한 셈입니다.

나와 타인의 심리적 얼굴에서 그런 종류의 에피소를 접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결국엔, 자신이 선택한대로 결과를
얻지 못해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선택맹(選擇盲) 상태에
이를 수밖에요.

살다보면,
선택맹의 상태로 세월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혼자 생각에
화들짝 놀라는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