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在生活裏)

엄마와 앵두

含閒 2007. 11. 8. 14:09

새벽편지에서 모셔 왔습니다.

 

나는 가난한 시골동네에서 자랐다.
봄이 되면 우리 마을은 춘궁기로 곤란을 겪었다.
보리밥은 그나마 여유 있는 사람 얘기였고
보통은 조밥을 먹었는데 그 좁쌀도 떨어져 갈 때쯤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계절은 호시절이라 산과 들에 꽃이 피고
앵두나무의 앵두는 빠알갛게 익어갔다.

우리 집엔 초가집 뒷마당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초등학교 3학년 때쯤이었을 게다.
그 해에는 가지가 끊어질 만큼 많은 앵두가 열렸는데
어느 날 아침 등교하는 나에게 엄마가 도시락을 주면서
오늘 도시락은 특별하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었다.

특별해봤자 꽁보리밥이겠거니 하고
점심때 도시락을 열었는데 도시락이
온통 빨간 앵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새 좁쌀도 떨어져 새벽같이 일어난 엄마가
땅에 떨어진 앵두를 주워 도시락을 쌌던 것이다.
창피했던 나는 도시락 뚜껑을 열어 둔 채로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들의 놀리는 소리로 교실이
떠들썩해지자 선생님이 다가 오셨다.

상황을 판단한 선생님은 "와 ~~~맛있겠다.
이 도시락 내 거랑 바꿔먹자!”라며
나에게 동그란 3단 찬합도시락을 건네셨다.

1단에는 고등어조림, 2단에는 계란말이
그리고 여러 가지 반찬과 쌀밥!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게걸스럽게 도시락을 비웠다.
먹으면서 왜 그렇게 서럽고 눈물이 나던지...
선생님께서도 앵두를 하나 남김없이 드셨다.

그날 집에 와서 도시락을 내던지며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도시락을 싸지 말지 왜 창피를 줘?”
엉엉 울면서 투정을 해댔지만 엄마는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를 했다.
“그래도 그 앵두 다 먹었네!”

나는 엄마가 밉고 서러워 저녁 내내 울다 잠이 들었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소리에 깨어났다.
문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내 도시락을 씻던 엄마는
옷고름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이셨다.
'울고 계셨던 것이다!'

찢어지는 가난에 삶이 미치도록 괴로워도
그 내색을 자식에게 보이지 않으시려고 울음마저
맘껏 울지 못하셨으니 그 한이 오죽하셨을까?
자식에게 앵두도시락을 싸줄 형편에 당신은
그 앵두라도 배불리 드셨겠는가?

엄마는 가끔씩 나에게 장난처럼 물으셨다.
“우리 강아지 나중에 크면 엄마
쌀밥에 소고기 사 줄 거지?”

이제 내 나이 마흔!
그때 나만한 아들을 키우는 나이가 되었다.
쌀밥에 소고기가 지천인 세상이고 그 정도 음식은
서민들도 다 먹는 세상이 되었건만
그토록 먹고 싶어 하셨던 엄마는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너무나 서럽고 눈물이 난다.


- 다음 아고라 ‘그리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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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고사하고 물려준 재산이 없다고
행패 부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입니다.

쌀밥에 소고기국을 드셔줄 엄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데...
오늘이라도 엄마에게 고백 하시기를.
‘엄마, 고마워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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