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사연을 보고 여러분들은 왜 250이 바보, 머저리가 되었는지 알고 사용하시길 바란다. 주변에 모르고 사용하는 한족들 있거든 친절히 설명해주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아, 물론 나도 다음부터는 250원에 뭔가를 사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오래전 한 인간이 있었다. 누구? 다음의 백과사전을 참고하시라.
소진 [蘇秦, ?~?]
중국 전국시대 중엽의 유세가. 소진이 일개 서생 출신으로 지모변설로써 공명부귀를 얻어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 연형책을 썼던 장의와 함께 전국시대 책사의 제1인자로 병칭되고 있다. 그의 동생 소대, 소여도 역시 유세가로서 알려졌다.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사람. 장의(張儀)와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처음에 진(秦)나라의 혜왕(惠王)을 비롯하여 제후 밑에서 유세를 하였으나 채용되지 않았다.
강국인 진나라와 한(韓)나라 두 나라가 서로 교전하고 있어 산둥 지방의 제국들은 진나라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있던 때이므로, 연(燕)나라의 문후(文侯)에게 6국 합종(合縱)의 이익을 설득하여 받아들여졌다. 다시 조(趙)·한(韓)·위(魏)·제(齊)·초(楚)의 여러 나라를 설복하는 데도 성공하여, BC 333년 연나라에서 초나라에 이르는 남북선상(南北線上)의 6국의 합종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혼자서 6국의 상인(相印:재상의 인장)을 가지게 되었고, 스스로 무안군(武安君)이라 칭하여 이름을 떨쳤다. 이 때문에 동방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던 진나라는 십수년간 그 진출을 저지당했다. 그러나 그의 합종책은 장의 등이 헌책한 연횡책(連衡策:連橫策이라고도 함)에 패배하여 실패했다. 그 후 연나라의 관직에 있다가 다시 제나라에 출사했으나, 제나라 대부(大夫)의 미움을 사 암살당하였다.
소진이 일개 서생 출신으로 지모변설(智謀辯舌)로써 공명부귀를 얻어 그 이름을 천하에 떨쳤기 때문에 진나라를 위해 연형책을 썼던 장의와 함께 전국시대 책사(策士)의 제1인자로 병칭(竝稱)되고 있다. 그의 동생 소대(蘇代)·소여(蘇잿)도 역시 유세가로서 알려졌다. 진에 대한 것은 《전국책(戰國策)》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으나,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점이 많아 후세에 와서 억지로 뜯어맞춘 것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이 소진이라는 사람이 암살을 당했는데 당시 범인을 잡을 수가 없었단다. 원래 똑똑한 사람은 적이 많은 법인가 보다. 그래서 당시의 수사기관에서 하나의 계책을 생각해냈는데.......
이 소진이라는 사람이 적이 많았다는 것을 이용해 방을 붙였다. [마땅히 죽을 인간이 죽었다. 소진을 죽인 사람에게 마땅히 상을 줘야 한다. 누구든 나오게 되면 1000원을 주겠다.]당시 돈으로 1000원이면 대단히 큰 돈 이었다.
다음날 소진을 죽였다는 사람이 4명이 나타났다. 죽은 사람은 하나인데 왜 4명인가 하고 묻자, 그 중의 하나가 대답하길, 4명이니까 4등분해서 250원씩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넘들은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살인죄로 처형되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바보의 대명사로 250이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끝으로 나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 사무실 한족선생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중국에서도 유래를 알고 싶었으나 잘 알지 못한 내용을 스크랩하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