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총리 두번 ‘관운의 전설’ 대통령만 못해본 한덕수 몰락

含閒 2026. 1. 22. 09:43

총리 두번 ‘관운의 전설’ 대통령만 못해본 한덕수 몰락

임정환 기자2026. 1. 22. 07:56
 
한 전 총리 76세 나이로 징역 23년 선고
20세 행시 합격…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
연합뉴스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만 20세 행정고시 합격.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석·박사 학위 취득. 청와대 비서관과 경제수석, 주미한국대사, 경제부총리, 두 번의 국무총리, 그리고 대선 출마까지. 76살 한덕수 전 총리가 걸어온 길이다. 대한민국 상위 1%조차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학력과 경력이다. 심지어 여권 대통령 후보로 나서며 대권을 꿈꾸기도 했다.

보수와 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중용돼 이른바 ‘관운의 사나이’로 불렸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그러나 칠순이 넘은 나이에 12·3 불법 계엄에 가담한 혐의로 21일 1심에서 징역 23년 중형을 선고받고 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법정구속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1949년생으로 전북 전주 출신인 한 전 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중이던 1970년 행정고시(8회)에 합격하고 이듬해 관세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경제기획원과 상공부(옛 산업통상자원부), 특허청 등을 거치며 꼼꼼하고 합리적인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행정의 달인’으로 꼽혔다.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과 통상산업부 차관을, 김대중 정부에서는 새로 출범한 외교통상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장관급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거쳐 2007년 38대 총리에 임명돼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를 지냈다. 이후 보수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한 전 총리의 관운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그는 주미대사로 발탁돼 3년간 대미 외교 통상 전문가로도 활약했다.

공직 사회를 떠난 후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에쓰오일(S-OIL) 사외이사 등을 지낸 그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건 윤석열정부 들어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발탁되면서다. 진보와 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중용됐던 백전노장의 귀환이자 이미 총리를 지낸 인사가 또다시 총리로 기용되는 파격인사로 놀랍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진보 정권 총리를 지낸 한 전 총리 카드를 꺼내 들었고, 한 전 총리는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이후 여야 대립이 극심한 가운데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도 세웠다.

승승장구하던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정 운영을 맡았으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같은 달 27일 국회에서 한 전 총리 탄핵소추안도 통과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대통령이 탄핵된 뒤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까지 탄핵소추돼 직무가 정지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5월엔 무소속으로 대선에도 뛰어들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밤중 벌인 초유의 대선 후보 강제 교체 작업의 당사자도 한 전 총리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란 특검 수사가 이어지자 한 전 총리도 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이후 재판 과정을 거쳐 특검팀은 지난해 11월 26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전날 이진관 부장판사는 “한 전 총리는 1970년 공무원 임용 이래 50년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국무총리 등에 재직하면서 다수의 표창과 훈장을 받았다”면서도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인생 황혼기 불명예를 떠안게 되는 순간이었다.

임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