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참스승 김성준 前 진주교육대학교 총장님이 그립습니다.
- 기자명김회경 기자
- 입력 2024.05.28 10:55
현암 최정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
[경남=뉴스프리존]김회경 기자= 5월의 진주남강은 강남꽃보다 더 푸르다. 웅휘로운 지리산 천왕봉에서 내린 영천(靈川)은 온갖 봄꽃들과 함께 촉석루앞 논개 혼이 서린 의암(義岩)을 휘돌아 나간다.
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경남교육의 참스승이신 조정(照亭) 김성준(金成俊 1935~2019) 前 진주교육대학교 총장님이 서방정토세계로 홀연히 떠나신지도 벌써 5주기가 지났다. 필자는 직접적인 학은(學恩)을 입은 제자는 아니지만 사나이대장부로서 가야할 호연지기를 가르쳐주신 인생여정의 스승이셨다.
요즘처럼 바깥세상이 요란할수록 가신 님이 더욱 그리워지고 있다. 진주는 예부터 충의와 교육의 고장이다. 저유명한 고려와 거란전쟁에서 대첩을 거둔 강민첨 장군(963~1021), 거란에 볼모로 잡혀가 끝내 조국고려를 위해 충절을 지킨 하공진(?~1011)장군이 있다.
조선전기 K컬쳐와 학문의 아이콘인 강희안(1419~1464). 조선역사상 가장 뛰어난 교육의 선구자 남명조식(1501~1572),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대첩을 거둔 수많은 영웅들, 의기 논개, 1892년 진주민중항쟁, 동학농민혁명,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 형평사 운동 등 도도한 역사의 물결을 통해 무수한 충의열사와 문인교육자들을 배출했다.
또한 진주는 근대 우리나라 민족교육의 요람있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진주얼이 깃든 수많은 교육기관을 통해 국가 동량(棟樑)들을 길러내오고 있다. 한국역사에 있어서 진주역사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보석과 같은 결정체다.
호방한 기개로 낙육영재(樂育英才)하다
김성준 총장님은 호방한 기개로 평생을 후학양성의 외길을 걸어오셨다. 젊은 시절에는 진주시내 여러 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다. 이때 우리나라는 모두가 허기진 시절이였다. 서부경남일대에서 진주로 유학온 많은 학생들의 눈빛만은 밤하늘 별빛보다 더 초롱초롱하였다. 김총장님은 이들에게 늘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교사로서 주머니가 얇은데도 불구하고 배고픈 학생들과 눈물의 자장면을 함께 먹으면서 동고동락한 자애로운 분이셨다. 혈기방장한 제자들에게 아무리 어렵더라도 비굴하게 살지말고 정의롭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하였다.
이후 우리국가의 미래는 초등학교 교사양성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신 후 1965년부터 진주교육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특히 학생들에게 충의의 진주정신과 남명조식선생의 교육철학인 경(敬), 의(義) 사상을 초등학교 교육에 잘 적용할 것을 역설(力說)하셨다. 이것이야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열린실천 교육정신이었다.
김 총장님의 교육철학은 가르침을 최고로 삼는 ‘교학위천(敎學爲天)’과 영재를 길러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낙육영재(樂育英才)였다. 이제는 세월이 흘렀기에 김 총장님의 호방하고 정의로운 기개가 담긴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느 해 진주지역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모 인사가 있었다. 당시 지역유지들이 축하연을 열어주었다. 이 자리에는 지역 원로들이 참석하였다.
그런데 이 축하연에서 당선인의 오만불손한 언동에 참석한 지역 원로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김 총장님은 당선인 얼굴을 자세히 보니 진주 모 고등학교 시절 잠시 담임을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바로 그에게 크게 호통을 치셨다. 그는 혼비백산하여 자리를 떴다. 이러한 소동이 있은 후 김총장님이 고교시절 은사도 몰라본 국회의원 당선인을 크게 혼냈다는 소문이 진주지역 사회에 순식간에 퍼졌다.
이처럼 김총장님은 경(敬)과 의(義)를 모르는 무례함과 불의에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참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김총장님의 이러한 호방하신 기개는 경남 교육계의 전설로 남아있다.
호주명문 그리피스대학교와 진주교육대학교 자매결연
김성준 총장님은 1995년 2월 진주교육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글로벌 안목으로 진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에 착수하였다. 학생들에게 외국어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열악한 시청각 교육시설을 신축구비하였다. 또한 선진 외국대학교의 교육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그해 11월 호주 브리즈번에 위치한 명문 그리피스대학교와 진주교육대학교 간의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이후 진주교육대학교 교수들은 1년에 한명씩 그리피스대학교에서 선진교육시스템을 연구할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당시만해도 우리나라 지방대학교와 선진 외국 대학교간의 자매결연을 체결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여기서 필자는 그리피스대학교와 진주교육대학교의 자매결연 당시 추억을 회상해본다. 1995년 봄부터 1997년 초까지 호한재단(Australia-Korea Foundation)과 호주한국대사관(권병현 대사) 초청으로 2년간에 걸쳐 한국전통 도자기문화와 예술을 알리기 위해 캔버라 호주국립현대미술관, 멜버른, 시드니, 브리즈번, 아델라이드, 퍼스등 주요도시를 순회하면서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필자는 호주 출국에 앞서 김성준 총장님께 인사를 드렸고 총장님은 막 취임한 직후라 필자에게 호주순회전시회를 통해 진주교육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을 수 있는 호주대학교를 찾아봐달라는 미션을 주셨다. 태평양넘어 파란눈의 호주인들에게 한국의 전통분청사기 전시회는 한국문화의 신비로움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당시는 우리 대기업들이 호주시장에 처음 진출하던 시기였다. 우리나라 기업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먼저 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때만해도 호주인들에게는 한국문화와 예술은 생소했고, 중국이나 일본의 아류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호주인들의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시드니대학교와 그리피스대학교등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의 전통문화와 도자기예술에 관해 특강을 하였고 학생들의 반응은 기대이상으로 뜨거웠다.
호주의 유력일간지 ‘시드니모닝헤럴드(The Sydney Morning Herald, 약칭 SMH)’에서는 한국에서 온 “현암 최정간 분청도자기 전시회”란 내용으로 비중있게 다루었다. 전시회는 시드니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데이비드존스(David Jones)백화점 내 갤러리에서 개최되었고, 이 전시회 개막식에는 호주노동당의 거물 정치인이자 뉴사우스웰즈(NSW)주의 총리인 봅카(Bob Carr, 호주연방정부 외교부장관 역임)를 비롯한 정계, 문화예술계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여 축하와 한국도자기예술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는 즉석에서 봅카 총리에게 산수묵화 한점을 그려 선물하였다.
이러한 인연은 후일 봅카 총리가 연방정부 외교부장관이 되었을 때 한국과 호주의 설린관계를 유지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어 그리피스대학교 초청강연회와 전시회에서도 그리피스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필자는 성공적인 전시회의 여세를 타고 그리피스대학교에 재직중이던 한국인 정재훈 교수를 만나 김 총장님의 뜻을 전하고 진주교육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을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그후 실무적으로 진주교육대학교 박정수 교수와 수십차례 연락을 통해 마침내 자매결연이 성사되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필자는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총장실에서 자매결연식을 마치고 감격스러워하시는 김성준 총장님의 모습을 잊을수가 없다. 그후 김 총장님은 일본으로 눈을 돌려 아이치교육대학교와도 자매결연을 맺었다. 한편 학생들과 교수들에게는 장학금과 연구비가 필수적이므로 대학교발전기금 조성에 나섰다. 진주출신으로 일본 나고야 경제계에 큰별이 된 재일동포사업가 정환기 회장을 수십번 찾아가 설득하여 무려 260억이란 거금을 쾌척하게 하였다. 그 결과 “가정 정환기 장학재단”이 설립되었다.
김총장님의 이러한 업적들이 오늘날 진주교육대학교 발전에 초석이되었다.
아! 님은 가시고 못오시는 영광의 등촉(燈燭)이오 후학들에게는 유향만리(幽香萬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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