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차(韓茶)운동의 선구자 예용해 선생과 하동세계 茶엑스포
- 기자명김회경 기자
- 입력 2023.08.01 13:25
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차문화 연구가)
[경남=뉴스프리존]김회경 기자= 지난 5월4일부터 6월30일까지 한국 차문화의 고향인 하동에서 ‘하동세계茶엑스포’가 개최됐다.
현암 최정간(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하동세계차엑스포는 세계차문화 역사상 최초이자 차(茶)분야 대한민국정부공인 국제행사였다.
엑스포기간동안 국내외에서 100만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통일신라시대 하동차 시배지와 그후 조성된 차밭 일원과 행사장을 찾아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서 하동이 세계차문화의 메카로 그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필자도 또한 ‘한차문명의 동전’ 저자로서 성공적으로 끝난 이번 행사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다.
(재)하동세계차엑스포 조직위원회(위원장 박완수, 경남도지사, 하승철 하동군수)가 맹활약한 결과 31일간의 대장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2023 하동세계차엑스포는 다양한 콘텐츠로 글로벌 ‘K. Tea’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동세계차 엑스포.(사진=현암 최정간)▶하동차 시배지를 국내언론 최초로 한국일보에 보도한 예용해
2023하동 세계차엑스포를 마치면서 문득 하동 차와의 인연에서 잊을 수 없는 한차운동의 선구자 한분이 떠올랐다.
하동 차 시배지를 국내언론 최초로 한국일보에 개재한 지운(之云) 예용해(芮庸海1929~1995)선생이다.
예용해 선생은 경북 청도군 이서면 대전리에서 출생해 평생을 언론인으로 우리나라 차문화운동과 민속문화연구자로 살다가신 언론문화계 거목이셨다.
선생은 6.25전쟁 때, 대구일보 종군기자로 총알이 빗발치는 낙동강 전선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을 기록했다.
종전 후 한국일보가 창간되자 장기영 사장이 직접 한국일보 창간 멤버로 스카웃했다.
예용해 선생은 한국일보 재직 중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독자들에게 알리고자 다른 일간지와 달리 편집국장을 설득해 1면에 문화유산 발굴 기사를 개재했다.
당시 한국일보가 문화유산 기사와 각종 문화기사 그리고 인간문화재 시리즈 기사가 가장 많이 개재된 품격 있는 신문이 되기까지는 예용해란 우리 문화의 거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예용해 선생이 남기신 우리 차에 관한 글들은 유량(劉喨)한 가락으로 노래한 한국 차문화의 아가(雅歌)다.
아무도 차를 주목하지 않은 시절 방대한 사료를 인용하고 철저한 현장답사를 거쳐, 1963년 1월1일부터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신년특집으로 연재한 ‘차를 따라서’는 한국언론 100년 사상 우리 차에 대한 한국인이 쓴 전문적인 글이다.
그러나 이때 만해도 차를 마시는 층이 지금과 같이 대중화되지 못했던지라 선생의 글은 독자들의 큰 호응을 끌지 못하고 10회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중단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선생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 서울에서 하동의 쌍계사 일대 신라시대 차 시배지 취재차 오려면 교통편이 불편해 1박2일이 소요됐다고 했다.
이러한 선생의 집념에 의해 하동이 우리나라 차시배지로 최초 언론에 보도가 됐던 것이다.
그후 20년 세월이 흐른 1983년부터 우리차문화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생은 다시 한국일보 지면에 ‘차를 따라서’라는 제목으로 그해 연말까지 11회에 걸쳐 연재를 하니 숨어있던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음은 선생의 ‘차를 따러서’ 첫구절이다.
“선인들이 차를 마시기는 신라 때인 듯 하니 퍽 오랜 이야기이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우리네 생활은 차마시기를 잃었다. 차는 중국에서 비롯되어 널리 세계로 퍼진 것이다. 동으로는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 신라에서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차는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올의 맑은 흐름으로 우리 생활 가운데 흘러 내려왔다. 지금은 그 흐름이 끊기려하고 있는 것이다. 햇볕 따사롭고 물 맑은 우리나라 남쪽 산에서는 아직도 향기 높은 차들이 자리하고 있다. 때로는 세계의 여러 부강한 나라가 차를 즐기고 더러는 다도라고까지 해, 떠드는 일과 우리의 오늘을 생각한다. 차로해 마음의 향기를 다시 가꿀 수가 있는 것이 아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극낙정토에서 예용해 선생은 2023하동세계차엑스포 개최를 보고 학춤을 덩실덩실 출 것이다.
▶현암 최정간 하동 분청사기전서문을 써주다
필자가 예용해 선생과의 첫 인연은 촌동시절 경주의 생가 사랑방에서였다.
선친이신 석당 최남주 선생과 예용해 선생은 신라문화유산 발굴과 보존기사 취재 관계로 자주 경주를 방문해 선친의 지도를 받는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특히 선친과 예용해 선생은 경주 남산을 자주 답사했고, 그 중에서도 신라 충담사의 차유적지인 삼화령도 답사했다.
선친도 차를 즐겨 마셨기에 신라 차문화 유적지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후 1960년대 한국일보사 주관 ‘신라삼산오악조사단’이 경주일대 신라문화유산을 본격 조사할 때 예용해 선생은 선친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예용해 선생을 다시 뵐 수 있었던 것은 1984년 봄, 우리전통문화 진흥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필자에게 지원을 아까지 않았던 당시 한국일보 장재구 사장 방에서였다.
필자가 ‘한일차문화교류사’와 도자기 공부를 한다고 하니 매우 반갑게 맞아주시고 왜 그동안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꾸지람도 하셨다.
이때부터 상경할 때마다 찾아뵙고 우리차 역사와 옛다완에 관한 많은 교시를 받을 수 있었다.
선생은 1985년 봄날 한국일보 장재구 사장과 김성우 고문, 박용배 논설위원, 장명수 부장, 김수남 소년한국 사장, 이병일 도쿄특파원, 문창재, 박대부, 김훈 등 기라성 같은 한국일보 기자들을 인솔해 필자의 하동군 진교면 사기마을 새미골 도요지를 방문해 필자를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필자가 중세 일본 다도사에 있어서 이도(井戶) 다완의 가치란 강의도 한적이 있다.
이어 선생이 장강재 한국일보 회장께 추천해 1986년 9월22일부터 10월1일까지 한국일보사 주최로 서울 안국동 백상미술관에서 필자의 ‘하동분청사기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때도 과분한 추천사를 써주셨다. 또한 개막식에는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서양화가 권옥연, 청곡 윤길중(당시 국회부의장), 조경희 여사(수필가), 미카나기 주일대사, 정공채, 정두수 시인, 이미자, 남진, 나훈아, 진송남, 김수희 등 우리나라 문화예술계 많은 원로들과 주한외교사절들을 초청해 하동분청사기 재현의 미적가치를 널리 홍보해 주셨다.
▶일본속에 조선다완과 민속공예품들
1987년10월에는 선생님을 모시고 열흘동안 일본에 남아있는 조선다완의 흔적들을 찾아 도쿄, 교토, 오사카 지역의 박물관, 미술관을 답사했다.
일본 민예운동의 창시자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悅)가 설립한 일본 민예관, 도예가 하마다쇼지 미술관, 가와이간지로 미술관, 도쿄국립박물관등에서 만난 조선에서 건너간 이도다완을 비롯한 많은 조선다완과 조선민예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일본민예관에서는 선생께서 필자가 재현한 이도다완과 일본도자협회 기관지 도설(陶說)에 기고한 ‘이도다완의 생산지 연구’ 논문을 야나기무네요시의 아들인 관장에게 직접 소개하고 자주 교류하도록 조언을 해주었다.
이어 교토를 돌아 오사카에 도착해 쿠자쿠미술관을 방문해 하마다관장의 조선 다완수집품들도 정밀 조사했다.
이어 미야기 선생이 설립한 일본 공예관을 방문해 부인인 가와시마 관장의 환대를 받았다. 이곳에 전시된 일본 최고의 도예가들의 작품과 공예품을 감상하면서 예용해 선생으로부터 미를 보는 높은 안목을 배울 수 있었다.
관장실에 전시된 가와이간지로의 조선풍 항아리와 무나가다시코(최영림 화백스승)의 조선민화품의 판화가 큰 울림을 주었다,
예용해 선생의 업적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문화재 위원 재직 중에 우리나라에 인간문화재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우리의 전승공예들이 이렇게 오늘 날까지 면면히 살아 숨 쉬게 된 것도 선생의 헌신적 노력 때문이었다.
필자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은 선생의 자애로운 조선 선비적 인품과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높은 안목과 식견이다.
선생이시여! 도리천에서 하동차 많이 드시옵고 천계(天界)의 자유로운 다인(茶人)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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