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통계청장 경질에 주목한다

含閒 2018. 9. 3. 20:51

[시시비비] 통계청장 경질에 주목한다

최종수정 2018.08.30 11:50 기사입력 2018.08.30 11:50


[시시비비] 통계청장 경질에 주목한다
 
숫자는 힘이 세다. 인간은 대체로 추상적 사고에 약한 편이어서 숫자는 구체적이고 명료한 인상을 준다. 많은 경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과학적' 아우라를 비치기도 한다. 3대 목표, 7가지 법칙, 10대 신화 등 책 제목이나 광고 문안 등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당연히 쓰임새가 많다. 

우선은 비교의 잣대로 쓰인다. 야구에서 3할 타자가 2할 타자보다 유능하다고 보는 것은 타율이란 숫자 덕분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자를 가리는 것도 유효 득표 '수'다. 최근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를 기록했다는 것은 단순히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로 떨어졌다는 사실에 더해 정권의 행보에 의구심을 갖거나 불만족스러워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징표로 읽힌다.

미래를 점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국은행은 28일 8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99.2로 한 달 전보다 1.8포인트 하락해 17개월 만에 처음으로 100 밑으로 떨어졌다고 발표한 것은 앞으로 우리 경제 전망을 비관하는 이들이 많다는 '빨간 불'이다.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증좌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숫자는 비전 제시를 위해서도 쓰인다. 결국은 허망한 약속으로 끝났지만 '연 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달성'이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747 공약'은 얼마나 멋졌던가. 그의 당선에는 이 근사한 공약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숫자는, 그리고 이를 낳는 조사와 통계는 만능이 아니다. 전수(全數)조사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조사 표본과 문항의 설계나 조사방법,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낼 수도 있고, 그 의미도 달라질 수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사장과 직원 5명의 '평균' 급여가 월 1750만원인 업체에서 최저임금을 못 받는 이가 있을 수 있다. 사장은 1억원, 직원들은 100만원씩 받는다면 그렇다. 월 평균급여가 1000만원이 넘는다는 것은 급여 총액을 직원 수로 나눈 '산술평균'에 따른 것이지만 이 업체가 고임금이라고 할 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허점을 없애기 위해 '중앙값' '최빈값'이란 개념이 있지만 같은 자료로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오죽하면 19세기 대영제국의 영화를 이끌었던 명재상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통계"라 했을까. 이는 '새빨간 거짓말, 통계(대럴 허프 지음)'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이 책의 원제는 '통계로 거짓말하는 법(How to Lie with Statistics)'이다.

때문에 각종 민간업체, 다양한 정부기관이 온갖 종류의 조사, 통계를 만들어내는 마당에 이를 이용하고 '장악'하려는 유혹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의 경질은 주목되는 바가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것으로 평가됐던 그가 역대 청장의 평균 임기에도 못 미치는 취임 13개월 만에 경질된 이유가 석연치 않아서다. 지난 5월 계층 간 소득분배가 악화됐다는 '1분기 가계소득 경향'이 경질의 빌미가 됐던 것일까. 그래서 일부에서 우려하듯 정부 입맛에 맞는 통계를 '가공, 생산'하기 위해서 '코드 청장'을 임명한 것일까.

1990년 외청으로 독립한 통계청은 현재 직접 작성하는 통계가 60종, 각 부처가 작성하는 통계를 승인해주는 것이 385개다. 이 정도면 정부 정책의 조감도를 마련하는 막중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진단이 잘못되면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정책의 성패를 가를 수도 있는 통계청의 '작품', 신임 통계청장의 행보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