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문 대통령 사과·해결 약속에 유족 “눈물 날 정도로 반가워”
ㆍ‘잠들지 않는 남도’ 함께 불러…전국 분향소에도 시민들 발길
“독재정권은 민간인 학살을 이야기조차 꺼내지도 못하게 했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4·3을 외면했습니다. 전국적인 추모까지 무려 70년이 걸렸습니다.”
제70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했고 명예회복 등을 약속했다. 유족들은 “쌓인 한이 녹아내렸다”며 반겼다.
‘슬픔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내일로’를 주제로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제주도가 주관한 이날 추념식에는 대통령 내외와 4·3 유족, 여야 지도부, 국회의원, 각계 인사 등 1만5000여명이 참석했다. 추념식이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1분간 제주도 전역에서는 4·3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추념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도민들도 4·3 영령을 추념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로 올해 처음 진행됐다.
양윤경 4·3유족회장은 “대통령의 추념사는 하나하나 정성을 다한 말씀이라고 느껴졌다. ‘4·3의 진실은 분명한 역사의 사실’이라고 선언한 부분에서 아픈 역사가 위로됐다”며 “유족회는 앞으로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미해결 과제를 해결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4·3 미해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개정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 희생자의 이름만 새겨진 3800여기의 표석 앞에서 유족들은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잃은 이순자씨(75·경주시)는 “스물일곱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말했다. 이씨 아버지는 1950년 제주읍 용강리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에게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 이중흥 4·3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대통령의 추념사에 대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고 말했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주민 150명도 행사장을 찾았다. 북촌리는 4·3 당시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사람이 희생된 마을이다. 1949년 1월17일 하루에만 354명이 희생됐다. 이 때문에 북촌리는 거의 모든 집이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 윤인철 북촌리 이장(54)은 “국가가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과를 표했다. 70년의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이장의 조부도 1949년 그날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추념식을 찾은 시민 중 상당수는 이날 북촌리의 4·3기념관 옆 ‘너븐숭이’를 찾아 학살지를 둘러보며 희생자의 넋을 위로했다. 이곳에는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들의 시신이 묻힌 돌무덤 20여기가 남아 있다.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이날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20여개 도시에서 분향소를 운영했다. 오전 10시부터 추념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분향소를 방문해 헌화·묵념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대한불교조계종은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영산재를 봉행했다. 4·3을 의미하는 오후 4시3분엔 시민과 배우로 구성된 403명이 43분간 무언극을 펼쳤고, 이후 ‘제주에 띄우는 편지’라는 제목의 음악회가 이어졌다. 4·3 범국민위는 오는 7일 광화문광장에서 ‘제주 4·3항쟁 70주년 광화문 국민문화제’를 열 계획이다.